• 부시, 대오각성? 국제적 사기?
        2007년 06월 06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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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1일 느닷없이 발표된 부시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장기 목표 설정’ 제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 제안은 전직 국무장관, 국방장관, 상하 의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국제 리더십 캠페인(US Global Leadership Campaign)’이라는 단체의 초청 강연에서 소개됐다.

    부시는 그 자리에서 2008년 말까지 지구적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장기 목표를 확정하기 위해서 인도와 중국을 포함하는 온실가스 대량배출 국가들과 일련의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제안에는 장기목표 뿐 만 아니라 각 국가별 중기 삭감 목표를 마련하는 것도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부시의 이번 제안은 그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대해 보여준 미국의 적대적 태도를 상기해 볼 때 정책 방향에 있어 근본적 전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선진 산업국들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 수치를 명시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끝내 거부해온 미국이 중기 및 장기 삭감 목표치를 설정하자는 제안을 한 것 자체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부시가 5월 31일 국제리더쉽캠페인 연설에서 온실가스 감축 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욕타임즈)
     

    부시는 2000년 10월 고어와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에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부재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지구온난화 문제를 현실 문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토의정서와 같은 구체적 부담을 명기한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실제로 이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근본적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교토의정서 비준 않고 물타기

    그랬던 부시가 이번 제안에서 “최근 수년간 과학적 성과를 통해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미국은 이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룰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상당한 변화라 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지 않은 이번 제안에 대해 기대감보다는 불신과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그간 지구온난화 문제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의 과정에서 보여준 부시 행정부의 행적들이 이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차원의 가장 중요 합의라 할 수 있는 교토의정서에 비준하지 않은 선진국은 미국 외엔 호주 밖에 없다. 최대 배출국들의 비준 거부로 발효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던 교토의정서가 러시아의 비준으로 2005년 국제조약으로 발효하게 되자 미국은 이번엔 ‘청정 개발 및 기후에 관한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Asia-Pacific Partnership on Clean Development and Climate)’이란 걸 제안했다.

    호주,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을 참여시킨 이 기구는 태평양 연안 6개국들 간 공해 감축 및 기후 변화 완화를 위한 청정에너지 기술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표방했으나, 유럽 등 교토의정서를 지지하는 많은 국가들과 환경단체들은 이를 교토의정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제안된 매우 기만적인 술책이라 비판해 왔다.

    독일 총리 감축안 거칠게 퇴짜 놓을 땐 언제고

    무엇보다 이번 부시의 제안을 신뢰할 수 없게 하는 직접적 계기는 최근 독일 메르켈 총리의 온실가스 삭감안에 대해 미국이 매우 거칠게 퇴짜를 놓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순번에 따라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을 맡고 있고, 6월 6일 개최되는 G8 정상회담의 주최국이기도 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로 오는 2012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 체제를 대체할 보다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 마련”을 설정하고 그 초안을 제시했다.

    그 핵심 골자는 첫째, 금세기 중 온도 상승치를 2°C 이내로 제한하고, 둘째,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방출량을 1990년 대비 50% 이하로 낮추며, 마지막으로 2020년까지 전력과 교통 분야의 에너지 효율을 20%까지 올린다는 것이었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는 물론 일본도 지지한 이 초안에 대해 격렬한 반대 의사를 담은 부시 행정부의 문서가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영국에 의해 폭로됨으로써 시급한 인류적 과제인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무책임한 행태가 또다시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발표된 부시의 새로운 제안에 대해,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접근을 기대한다는 메르켈과 블레어의 외교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외교 및 환경 정책 담당자들은 교토의정서 체제를 계승 강화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들의 비난은 더욱 가혹하다. 이번 미행정부 문서를 공개한 ‘그린피스 영국’의 존 소벤 사무총장은 “부시의 제안은 의무적 감축을 전제하지 않는 것으로서, 이러한 자발적 감축 방안은 전혀 실효가 없다는 지난 15년간의 경험과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며, 단지 미국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세계적 환경단체인 국제자연보전기금도 의무 감축 규정 없는 기후 협정은 발포를 허용한 평화협정과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발포를 허용한 평화협정

    부시 행정부의 제안 내용 중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중국과 인도의 참여와 역할을 강조한 부분도 논란의 대상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현재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4.5%를 차지해 24.3%인 미국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5.1%로 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 배출국인 인도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인다.

    기존 기후협약과 교토의정서에 의하면 선진 산업국으로 분류되지 않은 중국, 인도는 온실가스 의무 감축 대상이 아니어서, 부시 행정부는 이점을 자신들이 교토의정서를 비준할 수 없는 중요 이유로 제기해 왔다.

    하지만 현재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온실 가스가 최근 몇 년 내에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인공적으로 뿜어낸 오염 물질이 대기권에 축적된 결과라는 과학적, 역사적 사실을 전제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존 소벤의 주장을 빌리면 산업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다고 할 수 있는 G8 국가들이 그간 인류가 방출해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의 80%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책임과 함께 지금 현재에도 전 세계 방출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오염 배출자로 떠오르고 있는 개도국의 책임을 묻기 전에 선진 산업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실천을 선행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연 미국이 중국과 인도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도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기후변화 문제라는 환경적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오염 문제이나 당장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 사용권 혹은 경제 발전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 인도 끌고들어가는 건 정의롭지 못한 처사

    이런 견지에서 볼 때 2003년 현재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8(메트릭톤)인 미국이 각각 3.2와 1.19에 불과한 중국과 인도에게 함께 책임지자고 하는 것은 매우 부정의한 처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크고 또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세계 10위의 온실가스 배출국가인 한국 등이 앞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아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미국과 독일 간에 벌어진 떠들썩한 전초전으로 인해 이번 G8 회의에서 전개될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둘러싼 논의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부시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이 단지 세계 여론의 따가운 비판과 국제적 고립을 회피하기 위한 술책인지, 아니면 진정한 변화의 발걸음을 내 딛고자 하는 시도인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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