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제성장 전략, 좌파정책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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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06일 06: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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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9일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들의 경제관련 토론회는 우리 사회 주류 경제담론이 얼마나 일천하고 시대착오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경연장이었다. 이날의 주요 쟁점은 이명박의 ‘한반도 운하론’이었는데, 이명박을 제외한 한나라당 다른 경선후보들은 환경문제에서부터 실현 가능성을 이유로 이명박을 맹렬히 성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판하는 박근혜나 비판받는 이명박이나 모두 시대착오적 ‘개발담론’의 사생아임을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박근혜야 ‘개발담론’의 아버지 박정희의 딸이니 두말할 나위 없고, 개발시대의 성공 신화인 이명박이니 사실 그들이 들고 나온 한반도 운하 ‘개발’과 열차페리와 같은 공약은 ‘개발담론’의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 지난5월 29일 오후 광주 5.18기념문화관에서 한나라당 경제분야 정 책비전대회가 열린 가운데 대권주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한나라 후보 경제토론회, 시대착오 경연장

    정작 걱정이 되는 것은 환경문제의 대두, 기술혁명, 세계화로 일컫는 21세기 경제환경 변화에 대한 이들 ‘주류’들의 일천한 인식과 대안이다. 즉 그들의 시대착오적 인식은 7% 성장은 고사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개연성이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들 정책은 땅값 상승이라는 ‘로또’의 꿈에 젖어 있을 지역 자산소유자에 인기 영합하는 정책, 즉 그야말로 <조선일보>가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던 대표적 ‘포퓰리즘’ 정책이기 때문이다.

    온 나라를 시멘트로 쳐발라 운하를 만들든, 물을 막아 놓고 물놀이를 하든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 찬 개발논리는 더 이상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 특별한 물류개선 효과도 없는 운하 건설을 위해 투입될 천문학적 투자는 구축효과(crowding effect)에 의해 건설 몇 년 안에 그 경제적 효력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의 근시안적 대안에서 얻을 것이라곤 전국적 땅값 상승과 죽어가던 ‘건설자본’의 생명 연장일 뿐이며, 잃는 것은 썩어가는 ‘환경’과 무기력한 ‘경제’일 뿐이다. 그들의 사고는 정확하게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기치로 새마을 깃발 휘날리던 박정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즉 세상 변한 줄 아직도 모르는 것이다.

    양식 있는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자본’과 ‘노동’ 투입량의 절대적 증대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산적한 문제의 해결과 질적 발전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더 높은 성장률이 아니라, 질이 다른 성장

    이런 인식은 한국 경제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90년대 중반 영(Young, 1994)과 크루그만(Krugman, 1994)의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연구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 투입량의 절대적 증가에 의한 요소투입형 성장전략이 역사적으로 종언되었음을 실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뒷받침이나 하듯이 우리경제는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맞이했고, 그 이후 경제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1991~97년 동안 평균 6.8%이었던 성장률이 2001~04년에는 4.8%로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운하’와 ‘열차 페리’ 등의 ‘개발경제’의 논리와 ‘박처리즘’을 가지고 경제성장률을 7%로 높이겠다는 것은 용감한 건지 아니면 무식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그야말로 혹세무민하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일테다.

    우리 경제는 이미 이들의 사고 수준을 뛰어 넘어 우리 경제가 성장을 멈추는 비수렴 함정(non-convergence trap. 경제의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기술 혁신 등을 소홀히 함으로 인해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후진국이나 중진국이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게 되는 상태-편집자) 빠지느냐 새로운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나라당 후보들 행태가 답답했는지 <조선일보>는 6월 2일 ‘한나라당엔 舊型 이코노미스트들밖에 없는가’라는 칼럼을 통해 ‘70년대, 80년대의 성공 법칙(法則)을 2000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한나라당 후보들의 현실 인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IT혁명 시대에 고작 ‘싸이질’만 하는 수준

    나아가 ‘공장을 짓고, 세금 좀 낮춰주면 소비가 살아나고, 토목 공사를 벌이면 내수 경기가 돌아갈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공약 대부분은 ‘정보통신(IT) 혁명’과 ‘글로벌 시장통합’이란 경제 환경 속에서 이들이 하는 거라곤 고작 ‘인터넷에서 싸이질’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적자본의 축적을 넘어 인적자본과 기술 축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단순 요소투입 성장전략에서 생산능력 자체를 향상시킬 수 있는 혁신주도형 새로운 성장전략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신성장전략에는 혁신과 지속가능한 산업정책, 사람 중심의 성장촉진형 재분배정책(growth-enhancing redistributions) 등이 포함돼야 되며, 이들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방식과는 달리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전략이 요구된다.

    질 높은 무상교육 실시, 최저임금의 인상, 실업자에 대한 실업부조의 도입 등의 진보적 정책들은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과 잘 부합된다.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인적자본에 대한 사회적 투자수준을 높혀야만 하는데, 진보적 정책들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장전략 성공 위해서 정부의 강력한 개입 필요

    또한 진보적 정책들은 노동자들이 소득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혁신을 위한 학습과 기술 습득을 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토대를 제공해준다. 강력한 재분배 정책으로 저소득층을 물론 전 시민이 원활히 인적자본 축적할 수 있게 할 것이며,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환경 개선은 인적자본 투자 효율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적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이와 아울러 경제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정책 등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자.

    한편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박근혜, 이명박의 ‘개발담론’에 기반한 경제정책들이 ‘시대착오’적 이라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외부충격에 의한 시장 ‘혁신론’(FTA의 배경논리)은 그 방향을 아주 잘못 잡은 것이 된다.

    노무현이 신봉하는 ‘시장’은 기술과 인적자본에 대해 과소투자를 하고 있다고 교과서에 실릴 정도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과소 투자는 대표적 ‘시장실패’의 사례이다. 최근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훈련이 잘된 경력사원을 채용함으로써 청년실업률이 상승하는 현상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제관련 토론회는 박정희의 개발담론이 더 이상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이제는 그만 역사에 묻혀야 할 과거임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다만 그 흘러간 ‘역사’가 ‘미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현재’가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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