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라'고 해라
        2007년 06월 05일 10: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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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정규직과 임금을 똑같이 받는 거야?"
    "우리는 300명 미만이라서 해당이 안 된데."
    "관리자들이 우리는 하청회사의 정규직이지, 비정규직이 아니라잖아. 아무 상관 없어."

    4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3공장. 7월 1일부터 비정규직 차별이 금지된다는 방송 뉴스를 본 노동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얘기를 나눴다. 지난 3일 노동부는 ‘차별시정안내서’를 발간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과 근로시간,경조사비 등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에서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하지 못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었다.

    3공장에서 아반떼 신차(FD)의 배터리 밑에 ‘어쓰선’을 장착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박종평(25) 씨는 "텔레비전을 본 동료들이 300명 이상이 돼야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을 준다는 얘기를 했다"며 "이 얘기로 하루종일 어수선했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하청회사는 주야간을 합쳐서 60명이다.

    2002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6년째 아반떼를 만들고 있는 그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울산공장에는 2만 8천명의 정규직과 1만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같은 라인에서 혼성으로 작업을 한다. 한마디로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끼고 있는 것이다.

       
     
     

    간접고용은 차별시정 대상에서 제외

    하청노동자인 박종평 씨의 시급은 3,904원이고,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정규직 조합원은 6,800원 가량 된다. 정규직의 57% 수준이다. 단체협약에 따른 학자금의 경우 차이가 더 크다. 정규직은 자녀 2명에 대해 대학등록금까지 지급하지만 비정규직은 전혀 없다. 단체협약에 보장된 내용 모두를 합하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0% 수준이다.

    노동부가 발간한 ‘차별시정안내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근로시간, 휴일 및 휴가, 재해보상 등에서 정규직과 차별이 사라진다. 또 단체협약에 따른 상여금, 자녀학자금, 경조사비 등도 차별을 받지 않게 된다. 비정규직이 차별이 발생한 3개월 내에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1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노동부가 얘기하는 비정규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단시간노동자, 기간제노동자)과 파견노동자를 말하고 있고, 도급업체나 불법파견은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1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불법파견이라고 법원에서 최종적인 판정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그 때서야 사용자들은 직접고용 의무가 생기고, 그 때부터 차별의 대상인 ‘비정규직’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는 불법파견을 합법도급으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고, 이럴 경우 1만명의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의 정규직으로 분류돼 차별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 1만명 비정규직 차별해소 불가능

    그렇다면 기아자동차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계약직 노동자들은 임금과 근로조건의 차별이 해소될 수 있을까?

    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노동자 A씨가 차별시정을 받기 위해서 첫 번째 넘어야 할 장벽은 회사의 탄압과 계약해지라는 협박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회사를 고소할 권한이 없고, 오직 비정규직 본인에게만 신청권이 있기 때문이다.

    짤릴 각오를 한 A씨의 두 번째 장벽은 동료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중에 정규직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이미 경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군과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면 차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분리, 운영할 것을 회원사에 지침으로 내린 바 있다.

    다행히 회사가 ‘멍청해’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동료가 있어도 그와 임금형태가 똑같아서 비교가 가능해야 한다. 세 번째 장벽이다. 정규직 동료가 연봉제고, A씨가 시급제 또는 일급제이면 비교평가가 불가능해 차별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또 업무 실적과 회사에 대한 공헌도가 다르다고 하면 마찬가지다.

    네 번째 장벽은 차별적 처우가 발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7월 1일부터 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9월 30일까지 신청하지 않으면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신청이 불가능해진다.

    승소할 확률이 10%?

       
     
     

    네 번째 장벽까지 통과해도 5심제라는 무시무시한 장벽이 남아있다. 차별시정 절차는 지방노동위원회(최소 3개월) → 중앙노동위원회(최소 3개월) → 행정법원 → 고등법원 → 대법원까지 5심제이기 때문에 5년의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 회사는 김앤장 변호사들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A씨는 수천만원을 들여서라도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타 김성희 소장은 "5심제도이기 때문에 대부분 고용관계는 종료될 것이고, 차별이 있다고 판정이 나더라도 차별을 했다고 처벌받는 건 없고 1억원의 과태료만 내는 것"이라며 "개인이 결단을 해서 몇 년을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버텨서 이겨도 별 의미가 없는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여섯 번째 장벽은 그래도 승소할 가능성이 있느냐다. 현재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신청시 인정율은 20% 수준이며, 부당노동행위는 10% 정도다. 사무계약직 A씨가 인생을 걸고 5년을 싸워서 차별을 시정받을 확률이 10%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차별시정을 끌어내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은 "결국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으로 둔갑시키고 합리화하는 기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하며 "노동부의 안내서를 인정할 수 없으며 비정규시행령과 차별시정안내서 폐기투쟁을 강력히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정규노동센타 김성희 소장도 "정부 통계에서도 외주화가 늘어나고 있고, 간접고용 노동자가 확대되고 있어서 노동조건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가 그걸 조장하는 법과 시행령을 만들어놓고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들어 성공적인 사례로 호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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