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만금 열면 경부운하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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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05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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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성장률에 관한 정치적 담론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후진국 정도가 아니라 상식을 벗어난 아주 이상한 국가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경제 운용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노무현의 경제운용보다 더 이상하지는 않았다. ‘2만 달러 경제’라는, 이런 목표를 정하고 여기에서 역산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잡는 나라는 존재한 적이 없고,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도 그랬던 적은 없다.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대통령 선거에서는 성장률이나 성장 목표가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노무현과 사실상 그의 아류라고 할 수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제적 담론 구조는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공통정=고성장주의자들

    외국에서도 아주 드물게 경제성장률이 논란이 되지만, 이 경우는 목표가 아니라 다른 정책들을 수행하면 어떻게 된다는 추정치 정도로만 얘기가 된다. 하지만 노무현도 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했고, 이명박도 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하는 중이다. 아류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에는 ‘저성장’이라는 표현은 없고, 고성장과 균형성장 시나리오라는 두 가지 표현이 보편적이다. 말은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고성장주의자들이고, 균형성장에 대한 목표를 제시한 후보는 아직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전면에 나온 적이 없다.

    "성장이냐 분배냐"와 같은 논쟁은 좀 바보 같은 논쟁이다.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분배’가 필요한 사람들이 ‘분배’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래서 결국 성장률과 같은 정량적 수치의 목표로 논쟁이 움직이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노무현이 2002년에 이런 프레임을 지겹도록 써먹었다.

    이명박은 시대 흐름을 읽는 능력에서는 노무현보다는 한 수 아래다. 그러나 50% 이상의 득표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입증된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2. 새만금

    정책의 눈으로만 본다면 30%의 득표를 목표로 할 경우 50% 이상의 득표를 원하는 전략보다는 훨씬 운신의 폭이 넓고, 상상력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새만금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들이 다 공감하는 문제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 새만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마 현실적으로 새만금 개발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50%라고 한다면, 해수유통을 통해서 갯벌을 살리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50% 정도는 될 것이다.

    30% 전략과 50% 전략

       
    ▲ ‘새만금 갯벌 평화기원제’ 참가자들이 염원을 담아 장승 및 조형물등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투표를 할 사람은 30%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이 30%가 민주노동당 지지지와 기계적으로 겹치지는 않는다.

    새만금에 대해서 지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는 ‘해수유통’이다. 내가 지금까지 검토한 바에 의하면 전라북도를 위해서도 해수유통이 더 나은 선택이다. 새만금을 개발한다고 있지도 않은 국제 수요들과 해운량 같은 것을 억지로 만들어서, 새만금 신항이나 한국판 디즈니랜드 같은 꿈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전북이나 부안과 같은 새만금 지역을 더 나은 지역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정부 내에서도 새만금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한 때는 거의 놀고 있는 군장산업 단지에 유력한 자동차 회사의 대규모 작업장을 이전시키고 전북과 일종의 빅딜을 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이걸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나치게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래서 자신의 공약이었고, 자신이 정책적인 출발점이었던 새만금 문제에 대해 해수부장관 시절의 판단을 뒤집고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된 셈이다.

    전라북도 내에도 새만금이 아닌 다른 방식의 발전 방안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아마 잠재적으로 30% 정도의 숫자는 될 것이다.

    이명박의 경부운하와 새만금 개발은 샴 쌍둥이 같은 것이다. 기술적인 논쟁으로 경부운하의 경제성의 근거가 된 ‘토사 판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그 엄청난 토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 정부 경제성 평가의 주요 비판 내용이다.

    새만금이 이명박을 살린다?

    그러나 새만금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새만금 갯벌 매립을 위해서 엄청난 토사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 천문학적인 토사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서해안의 무인도를 몇 개 없애면 된다는 극단적인 발상까지 등장한 적이 있었다. 경부운하에 대한 경제성 검토를 나도 한 적이 있었는데, 경부운하 건설 과정에서 나오는 ‘모래’의 1/8만 우리 나라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지만, 새만금과 연계시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부운하는 민간개발을 하겠다고 하지만 – 아마 네덜란드 업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 실제로 그 경제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강바닥의 토사 판매인데, 새만금은 국책사업이니까 여기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그 토사판매에 대한 인위적 수요를 만들어주면 경부운하도 운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발에 대한 경제성에 대한 비용편익 비율은 1을 넘길 수 있다.

    그래서 경부운하를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동시에 새만금의 해수유통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현재로서는 기술적 논쟁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는 이명박이지만, 조만간 새만금과 경부운하를 연계시킨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도 새만금 개발의 물질계정의 내용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철학적으로 경부운하와 새만금은 같은 사업이지만, 물질적으로도 이 두 개의 사업은 연계되어 있다. 시장에서 소화할 수 없는 막대한 토사를 공급하는 사업과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토사를 구할 수 없는 새만금 매립이라는 두 가지 사업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하면 두 가지 모두 사업의 경제성을 가지게 된다. 이 두 문제를 따로 떼어놓은 접근에서는 결국은 이명박의 경부운하에서 지게 된다.

       
    ▲ 운하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그런 이유로 새만금 방조제에 일찍이 이명박이 방문한 적이 있다. 아직은 경부운하 자체의 타당성으로 경부운하 논쟁에서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경부운하가 논쟁에서 밀리면 결국은 대선 후반부에서는 새만금과 경부운하가 하나의 축에서 연계된 사업으로 등장하게 된다.

    3. 생태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새만금의 철학은 크게 보면 ‘생태의 시대’와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라는 두 가지 철학 위에 서 있다. 며칠 전 노무현이 자신이 ‘균형발전’으로 건설 물동량을 충분히 확보했는데, 경부운하까지 하게 되면 오히려 과잉 건설사업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진실이다.

    건설사업으로 정권을 유지한 것은 역으로 박정희나 전두환이 아니라 YS와 노무현이다. 객관적 지표로 보면 그렇다.

    새만금의 두 가지 철학

    ‘새만금의 해수유통’은 짧게는 이런 박정희 시대에 대한 청산이고, 새만금을 결국 개발하기로 하면서 경제적 의미에서의 시대 정신과 노무현은 멀어졌다.

    여기에 "과연 지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이 한 가지 겹친다. DJ 이후의 분권이 결국 지역에서 토호세력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고, 이러한 토호들이 노무현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새만금을 정확히 얘기하면 ‘지역 숙원사업’이라기 보다는 ‘지역 토호사업’에 가깝다.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몇 개의 건설사는 1차 사업기간에 중앙건설사의 하청 역할도 제대로 못했는데, 기술이 별로 필요 없는 매립사업이 시작되는 2단계가 되어야 비로소 지역사업의 일부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래봐야 얼마나 지역에 남겠는가? 전북 전체 혹은 새만금 주변지역의 삶과 전주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건설-언론사의 이해가 다르다.

    이 토호들을 깨는 일에 관심 있는 대선 주자는 현재로서는 없다. 새만금의 해수유통은 정치적으로는 지역토호들과의 싸움에 가깝다. 정동영이 대표적이다. 정동영으로 대변되는 전북 정치인들은 이미 중앙형 토호가 된 대구경북 지역의 토호들에 비해서 규모가 적다는 것을 제외하면 토호 대변인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지역 숙원사업인가, 지역 토호사업인가

    시민단체들이 오랫동안 새만금 문제에 매달렸지만 결국 졌다. 환경시대가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니라, 사실 이 지방토호들과의 싸움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야말로 뒤통수 맞은 셈이다. 전북의 새만금을 살리는데 왜 삼보일배의 행렬이 서울까지 와야 하는가? 토호들과의 싸움을 위해서는 전국적인 힘이 필요했는데, 그 힘은 여전히 서울을 구심점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새만금이 살아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이번 대선에서 새만금은 한편으로는 생태적 의제이기도 하지만, 토호들과의 싸움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제이기도 하다.

    4. 연안 관리와 "바다의 시대"

    새만금은 사실 과거의 의제는 아니다. 여기에 달려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연안, 즉 가까운 바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나중에 대법원에서는 별 의미없는 지표가 되어버렸지만, 새만금 1심이 열렸던 행정법원에서 가장 전면에 떠올랐던 단어가 ‘기수역'(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이런 곳은 소금의 농도가 다양해서 여러 가지 생물들이 살 수 있다-편집자)이라는 말이다.

    이 기수역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지역이 살아야 연안바다의 생태계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갯벌 매립과 달리 새만금이 시민단체 내에서 그렇게 큰 논쟁으로 전면에 떠오른 이유는 이제 한강일대를 제외하면 서해안에 남은 마지막 기수역이 새만금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바다의 시대"라는 말의 의미는 ‘대양해군’을 의미하고, 그래서 멀쩡하게 자기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해놓고는 여기에 다시 해군기지를 놓아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주의 해군기지나 새만금 개발은 정책적으로는 전부 한 흐름에 놓여 있는 일들이다.

       
     
     

    반도 생태계 전제를 위협하는 해양 오염

    지금 우리나라 바다는 사실 심각한 위기이다. 새만금의 죽음으로 서해안의 기수역이 사라지게 되는 일들만큼 중요한 또 다른 심각한 위기는 산업폐기물의 해양투기이다. 남해안과 서해안 심지어는 동해안까지도 우리의 바다는 지금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오염되고 있고, 짧게는 우리의 식탁을, 그리고 멀게는 반도의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연안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근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이런 바다의 문제가 대선 의제로 올라올 수 있을까?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지금 이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감세니 증세니 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다가 날 샐 가능성이 높다.

    바다에 대한 논의 그리고 ‘근해 연안의 생태적 보존’ 같은 말들은 비어있는 논의다. 그리고 그 첫 출발점이 이미 온국민이 알고 있는 새만금이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우리나라의 좌파와 시민단체를 대표해서 이번 대선에 나선다면, 새만금 논의를 더 앞으로 끌고 나올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환경단체가 지금은 심각한 위기지만, 아직도 회원수는 당원수보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올 대선에서 자신의 입장을 선택할 때 가장 큰 지표는 ‘새만금’이고, 누가 "새만금에 해수유통"을 시켜줄 것인지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는 중이다.

    이명박은 내륙 시대의 문을 열고 싶어하고, 그 출구가 경부운하이다. 그 잘못된 출구를 막는 힘은 연안지역의 기수역인 새만금에 있다. 새만금을 열면 경부운하는 막힌다. 반대로 새만금을 닫으면 경부운하가 뚫린다. 경부운하의 경제성 평가의 한 가운데 들어가 있는 "강 바닥의 모래"가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경부운하와 새만금 개발을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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