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장군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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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31일 07: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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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이게 왜 천원입니까?” 아줌마는 갑작스런 기습에 움찔했다. “아 물값도 있고, 또 물 끓이려면 전기세도 줘야 하고..” 우물쭈물 대답했지만 봉장군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아니?? 물값이 하면 얼마나 하고, 전기세가 하면 얼마나 하길래? 오백원짜리 컵라면을 천원에 팝니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상대는 쥐가 아닌 내공 100단의 휴가철 피서지 가게 아줌마였다. 아뿔싸,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아침부터 재수없게! 너한테 라면 안 파니깐 나가! 개시부터 재수없게!!!” 그리고는 진짜로 소금을 뿌렸다. -_-;

    피서지에서의 봉변

    대학 1학년 농활에서 돌아오다 하루밤 묵은 피서지에서 컵라면 한그릇 먹자고 들어간 가게에서 우리 일행은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하고야 말았다. 아니지, 봉장군과 동행한 이상 봉변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하나? 여하튼 봉장군 군은 그런 남자였다.

    도무지 변화구를 모르는 남자. 매사 돌아갈 줄을 모르고 불 같은 직구만 뿌려대는 그런 남자였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대학 새내기이던 97년 그것도 갓 입학한 직후인 3월이었다. 소비문화가 대학문화의 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한편으로 한총련이 96년에 이어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야 대학 들어 오기 전까진 학생운동에 엄청 관심이 많았으나 막상 들어오고 나서는 연애질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역시 잘생기면 얼굴값을 한다. 여하튼.

    그날도 역시 심드렁하게 교정을 거닐고 있자니 갑자기 저 멀리서 80년대 학생회장 같은 얼굴을 한 하얀 얼굴의 금테안경이 성큼성큼 걸어 나에게 다가왔다. 키는 175 정도, 눈이 부리부리하고, 콧날과 턱선이 반듯한 전형적인 선비형의 얼굴이었다.(오 그래! 생긴 게 마동탁이랑도 비슷하다) 첨 보는 얼굴이었지만 난 이놈이 나한테 무슨 얘기를 꺼낼지 관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안녕, 처음이지. 난 XX학회 봉장군이라 해. 나도 97학번이야 우리 잘 지내자”

    미숙한 새끼. 첨으로 인사 나누는 대학동기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하는 얘기가 기껏 이거냐? – “민중의 삶이 위기에 처했다. @#^%#^$@%^# 오늘 집회가 있는데 나가자”

    "대학은 무서운 곳, 조선일보 말이 맞아"

    역시나 대학은 무서운 곳이었다. 조선일보 말이 사실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데모를 해야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벌써부터 1학년이라는 새끼가 3월부터 잔뜩 독이 올라 집회참여나 독려하러 다니고 말야. 진짜로 운동권은 광신도 집단이 맞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선약이 있어서”라 하고 자리를 피했다.

    다음날 학교에 나왔을 때 학교 벽면이 온통 어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놈 이름으로 뒤덮혀 있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그 이름. ‘어제 김영삼 정권퇴진 투쟁에 참여했던 봉장군(97학번) 학우가 폭력경찰의 방패에 찍혀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라는 내용이었다. 깝치더니 쯔쯔.

    그리고는 3일쯤 지났을까? 처음 봤던 곳과 비슷한 곳에서 코에 붕대를 감고 눈이 멍든 ‘80년대 학생회장’을 다시 만났다. 첨 봤을 때의 기개는 온데간데 없고 애가 완전 축 처진 게 완전 데친 상추 꼴이었다.

    “코는 괜찮냐?”

    “(코맹맹이 소리로)웅 괭창아”

    “코는 그렇다 치고 눈은 왜 그런거야?’

    “마잤엉”

    “왜????????”

    당시 2학년에는 류희상이란 선배랑, 박상철이란 선배가 있었다. 나름 열심히 했던 선배들이다 보니, 어린 봉장군이에게 집회에 나가자고 권유했던 것 같고 방패에 맞기 전까지도 잘 다독거리며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급 신인 봉장군 데뷔전에서 난타 당하다

    근데 갑자기 봉장군이 툭 튀어나가더니 경찰에 끌려가던 다른 과 여학우를 구하려고 경찰한테 달려들더란다. 알다시피, 결국 봉장군 역시 ‘데우’ 맞은 끝에 경찰에게 채여갔고…

    코뼈가 부러진 애를 앉혀놓고 경찰은 배후가 누구인지 대라고 추궁을 했다 한다. (아직 1학년이긴 했지만, 80년대 학생회장 같은 그의 외모는 필시 경찰로 하여금 배후가 있다는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켰으리라 판단된다.) 매사에 강직한 봉장군은 죽어도 선배의 이름을 댈 수 없다고 결심했으나, 매 앞에 장사없는 법.

    허나, 그의 명석한 머리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말았으니!선배도 지키고 매도 덜 수 있는 굿 아이디어!!! – 성을 서로 바꿔서 대면 되겠구나!!

    “96학번 박희상이랑, 유상철이오”

    “이 색기가 장난치나! 박희상은 배구선수고, 유상철은 축구선수잖아!”

    어린 새끼가 어른을 갖고 놀려 한다고 안 죽을 만큼 맞았다 한다. 눈은 그때 멍들었다고 했다.

    더 웃긴 건, 이 얘기를 듣는 나는 웃겨서 뒤집어질 것 같은데, 이 얘기를 하는 놈은 흔히 그렇듯 무용담을 의기양양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듯 진지한 말투와 진지한 얼굴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녀석 진짜 진지한 녀석인데, 어설프게 변화구 던지다가 제대로 맞았구나 쯔쯔’ 어쩐지 불쌍했다.

    그 집회는 결국 열혈 ’운동권’ 봉장군의 데뷔무대이자, 은퇴무대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봉장군은 절대 집회에 나가지 않았다.(그럴 놈이 왜 나한테 집회에 같이 나가자고 그렇게 강경하게 얘기한거야? 응?) 직구만으로 고교 무대를 평정한 특급 신인이 데뷔무대에서 명실상부 ‘난타’를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1학기 내내 봉장군을 볼 수가 없었다.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왔고, 나는 과외를 했고, 재미가 있을 거 같아 농활에도 갔다. 운동권은 싫었지만 노는 건 좋았다. 헉, 사라졌던 봉장군 군이 농활에 와 있었다. 묻지도 않은 나에게 다가와 진지한 얼굴로 “이제는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며 진지하게 얘기해주었다.

    불 같은 직구만 뿌려대는 남자

    농활에서 이놈은 인민해방군처럼 일했다. 타고난 뻣뻣한 관절 덕택에 뭘해도 어설펐으나 여튼 기개만은 대단했다. 성과는 안 좋았지만, 열심히는 일했다. 간간히 쉬는 시간에도 절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농촌의 현실을 알겠다며 정자세를 하고 앉아 술 취한 영감님의 ‘여학생이 일본말로 온나노 각세이다’ 류의 주정성 발언을 경청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끄덕 해가며.

       
      ▲ 요즘 같은 세상 봉장군의 불같은 직구가 그립다.  
     

    그렇다. 도무지 변화구를 모르는 남자. 매사 돌아갈 줄을 모르고 불 같은 직구만 뿌려대는 그런 남자 봉장군의 치명적인 약점은, 직구 컨트롤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던져야 할 때 던지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매사 온 힘을 다해 직구를 던지는 남자가 봉장군이었다.

    마을잔치 때 마을 어르신들 즐거우시게 열심히 춤을 추라는 선배들의 얘기에, 온 동네 사람이 모여있는 마을회관 한가운데서 이장님댁 사모님과 격렬한 부비부비댄스(정말로 음란했다. 사모님 뒤에 붙어서 허리를 앞뒤로 씰룩씰룩 거리는데. 그걸 보고 있는 내가 다 정신이 아찔했다-_-;)를 춰서 좋았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던 것도 그의 제구 안 되는 직구 때문이었고(하마터면 팀간 집단난투극이 벌어질 뻔했다), 농활 뒷풀이로 간 바닷가에서 유일하게 찾아낸 문 연 가게에서 싸움박질을 하고 나온 것도 그의 제구 안 되는 직구 탓이었다. (농활대의 식량공급줄이 끊겨버렸다!)

    2학기가 시작되고. ‘슬럼프에서 탈출했다던’ 봉장군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변화구를 연마하러 2군에 가있는 걸까? 기숙사를 찾아가 보았으나 몇 주째 방에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룸메이트의 대답. 고향집에 전화를 해봤더니 서울에 있다고 했다. 주변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자주 갔다던 24시간 만화방에도 찾아가봤으나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또 그렇게 봉장군은 사라졌다.

    2학년이 되고. 누구는 공부를 시작한다, 누구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누구는 연애를 한다, 새로운 소문이 들려왔으나 봉군의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냥 그런 갑다 하며 1학기가 또 흘러갔다. 여름방학이 오고 농활을 또 갔다 오고.

    "쓴 게 먹고 싶다"

    잔뜩 친해진 2학년들은 10일간 부산여행을 가자고 작당질을 했다. 부산에 선후배 동기 등등이 많으니, 기차값 제외하고 일인당 10만원씩만 들고 가고, 숙식은 선후배 동기 집에서 빌붙어 해결하자는 전략이었다.

    놀랍게도, 출발하기 바로 전날 봉장군이 다시 학교에 나타났다. 정말 짧디 짧은 학교생활을 했지만 그의 갖가지 무용담은 그를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놨었고, 기대치 않은 스타가 복귀를 했으니 다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넌 또 어디로 사라질 테니, 다른 데 가지 말고 우리집에 가서 자자”

    자기도 여행에 따라 가겠다고 했지만, 시시때때로 증발하는 이놈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납치하다시피 우리집으로 끌고 갔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부산 도착. 당연히, 여행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 많던 선후배 동기는 연락이 되지 않거나, 대부분 서울에 있었다.-_-; 그때부터 험난한 노숙생활이 시작되었다. 잠은 비 안오면 광안리 바닷가에서 자고, 비오면 해운대 역에서 잤다. 바닷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배는 시커멓게 탔는데, 등판은 새하얬다. 밥은 하루 한끼.

    이런저런 죽을 고생을 한지 7일째쯤 되는 날 아침. 갑자기 봉장군이 입을 열었다.

    “쓴 게 먹고 싶다”

    허나, 밖에서 먹는 밥에 쓴 반찬이 어디 쉽던가? 게다가 하루 한끼와 라면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평소에 줘도 안 먹던 쓴 반찬이야말로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었다.

    나뭇잎을 따먹다

    “저깄는 나뭇잎이나 따먹지 그래” 누군가 심드렁하게 말하는 순간, 봉군은 “오!! 그래, 나뭇잎이 있었지!!!!!!!”하며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더니 나뭇잎(그것도 가로수잎!)을 골고루 한아름 따서왔다.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저것 우걱우걱 씹더니 갑자기 버럭 "이거다!!!!!!!” 하면서 어느 한 나뭇잎을 두 손 모아 들고 부르르 떨더니 그 나뭇잎만 골라서 먹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는데, 웃길려고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감동감동 받아서 진지한 얼굴로 이 짓을 한 거다. 이놈의 직구는 이렇게나 이상하다.-_-;

    여하튼 부산에서 생고생을 하는 와중에, 학교 좀 다니라고 내내 타일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2학기 개학을 하고 나서. 이놈이 열심히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안타까운 건 그 기간이 2주일 남짓이었다는 것. 또 다시 봉군은 2군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 역시 데모를 하네, 회사를 다니네, 뭐를 하네 하면서 학교를 제대로 못 나가는 나날이 이어졌고. 역시나 들려오는 얘기는 봉군의 소식이 아예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사시를 준비하게 됐다. 같이 공부하게 된 친구(나뭇잎이나 따먹으라 했던 바로 그 인간이다)와 스터디를 짰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만치 정말로 독하게 공부를 해보자 하고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설정되는 휴일까지도 없애 버렸다. 농담삼아, ‘봉장군이 돌아오는 날 그날 하루만 쉬자’ 하며.

    이래저래 독하게 공부를 한 지 일 년쯤 되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봉장군이었다. 공익으로 동작구청에 갔다 왔다고 했다. 사방으로 흩어져있는 동기들을 모았다. 고시생 처지였지만 그날만큼은 술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봉은 그 자리에서 “슬럼프에서 탈출했고, 이젠 맘 잡고 공부하겠다”라 했다. 다들 박수를 쳤다.

    아, 봉장군

    그로부터 몇 주 후. 친구 하나가 갑자기 봉장군에게 연락이 안 된다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또 다시 몇 주 후, 또 다른 친구 하나가 봉장군한테 전화를 했더니 왠 여자가 전화를 받더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 장난이 너무 심하다 했다. ‘봉 도련님 돌아가셨다’고 하고 전화를 뚝 끊더란다.

    나는 화를 냈다. 그게 장난이겠냐고, 계속 전화해서 뭔 소리인지 알아오라 했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계속 전화를 했는데 역시나 받지 않다가, 누군가와 통화가 됐는데 다시 그 여자가 받더니 화를 내며 ‘제발 더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하더란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시 며칠간 돌아가면서 전화를 하던 끝에 다시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여자가 아닌 봉장군의 고교 동창을 자처하는 남자였다.

    봉장군이 고시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다 뺑소니를 당했다 했다. 범인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했다.

    난 믿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그는 돌아올 것이다.

    용팔이의 패악질과 그리운 직구

    엊그제 ‘용팔이’(고객을 협박하여 물건을 강매하는 용산전자상가의 직원들-편집자)의 패악이 뉴스에 보도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용팔이의 패악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걔네들은 상인도 아니다. 범죄자다. 범죄 수준으로 불친절한 상인을 볼 때마다 봉장군 생각이 간절하다.

    용팔이가 뭔가? 깡패 아닌가? 장군이랑 깡패랑 붙으면 장군이 이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놈들은 봉장군한테 한번 걸려봐야 세상 무서운 걸 알 수 있을 텐데란 생각이 든다.

    타자의 머리로 날아드는 무시무시한 속도의 직구. 제구가 안되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봉장군의 직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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