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직자 정치 금지한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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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31일 07: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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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4월 23일 있었던 회의를 통해 “정책연구원 개별적 차원의 대선후보 진영에 대한 지원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이런 결정을 한 데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당내 경선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중앙당 부서의 중립을 표방한 것일 수도 있고, 각 캠프의 과다한 지원 요구로부터 연구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근무 기강과 체계를 잡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금지는 금지다.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며 간부인 정책연구원들이 다른 당의 예비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을 터이므로 당내 특정 경선후보에 대한 지원을 금지한 것은 정책연구원들의 선택의 자유 전체를 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블레어나 미테랑을 좋아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내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보안법의 논리와 같다.

    특정 후보 지지나 투표 행위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자신의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의 권리와 분리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책연구원의 특정 후보 선호를 용인한다면, 자신의 자유 의사에 의한 지원활동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형평성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이번 결정에 의해 중하위 당직자인 정책연구원들은 ‘공식적으로는’ 후보 지원을 못하게 되었지만, 몇몇 고위 당직자들은 선거운동에 바빠 회의에도 안 나올 지경이고, 당대회의 민중경선제 부결을 뒤집는 선전활동과 정치공작까지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누구는 자기 좋은 사람 도와주는 것도 안 되고, 누구는 당대회 결정까지 부정하는 고도의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불평등의 당이어서는 곤란하다.

    민주노동당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인식이 있을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까지 주장하는 당이니, 이번 “금지”가 악용되지는 않은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우리 운동은 사람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의 확립에 의존한다. 당 대표니까, 정책위 책임자니까 괜찮아, 라는 논리는 운동이 아니라 종교다.

    민주노동당의 결정이 현실에서의 불편함이나 곤란함을 모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각 후보캠프에서 정책연구원에 대한 지원 요청이 있을 시 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정책위 차원의 공식적 정책지원을 한다”라는 업무 조정 규정에서 멈췄어야지 권리 제한 규정인 “금지”로까지 나아가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라는 변명은 정치악법이나 국가보안법의 발생 원인과 동일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나오고,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이 세상만사다. 어떤 경우에든 일탈은 원칙의 부정이 아니라 현실에의 적응으로부터 나온다. 원칙은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불편과 비효율과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는 참여연대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여연대의 임원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농수축협 직원과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률과 제도를 비판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와 농수축협과 건강보험공단과 정부는 “국민의 공복, 시민의 대표, 농민의 심부름꾼이 특정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한다.

    “당의 집권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정책연구원이 특정 예비후보를 거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의 사고는 특정한 조건에서는 권리가 제약되거나 유보될 수 있다는 대한민국 지배자들의 철학과 완벽히 일치한다.

    노동권과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없다. 고대 로마에는 노예의 표준 노동시간 규정이 있었고, 조선에도 서구 근대법에 버금가는 인권 규정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일반적으로만’ 인정하느냐, 어떤 조건에서도 불가침의 권리로서 수호하느냐 하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고대에는 더 많은 제약과 유보가 있었고, 근대 자유주의와 이론 사회주의는 그런 제약이나 유보가 없는 전면적 보장을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은 알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노동자는 노동자고,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람은 사람이다.

       
     
    ▲ 무엇을 하든 노동자는 노동자고,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람은 사람이다.
    Construction Workers lunching on a crossbeam, 1932.9.29 / Charles C. Ebb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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