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식 연설에 질린 사람들에게
    2007년 05월 28일 04: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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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접하는 다른 방식도 많이 있을 텐데 굳이 연설이라는 자료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언뜻 보면 연설이란 게 연설자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풀어놓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연설의 문구들 사이에 연설자보다 더 강렬한 잔상으로 살아 있는 것은 사실 그 현장에서 함께 가쁜 숨을 내쉬며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대중이다.

연설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그들의 박수소리(또는 야유)가 숨어 있다. 그리고 연설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의례적인 기념사처럼, 지루한 낭독이 끝나면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 모습 그대로 굴러갔을까? 아니다. 거기에는 말로는 온전히 옮기기 힘든 어떤 결단이, 행위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 『혁명을 꿈꾼 시대』장석준, 살림출판사
 

장석준의 네 번째 책은 20세기에 있었던 24개의 연설을 다룬다. 『혁명을 꿈꾼 시대(살림)』에는 우리와 20세기라는 동시대를 살았던 그러나 대개는 지금은 사라진 혁명가들의 연설을 담고 있다. 그 이름들 속에는 레온 트로츠키, 안토니오 그람시, 넬슨 만델라와 같이 낯익은 이름들도 있고, 헬렌 켈러 같이 낯익으면서도 낯선 이름들도 있다.

장석준은 이 책에서 20세기의 역사를 인물과 연설을 통해 조망할 뿐 아니라, 그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사회주의자’를 발굴해 낸다. 사회주의자라 알지 못했던 미국 사회당의 혁명적 좌파 헬렌 켈러의 활동이나 독일 사민당 출신의 총리로만 알려졌던 빌리 브란트의 “훌륭한 독일인이라면 민족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언명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정의하는 것처럼 장석준은 ‘전쟁과 혁명의 시대’로 규정한다. 그리고 책의 구성도 이런 규정에 따라, ‘전쟁을 넘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 ‘제국주의를 넘어서’, ‘인종주의를 넘어서’, ‘파시즘을 넘어서’, ‘남성 중심 사회를 넘어서’, ‘자본의 세계화를 넘어서’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장마다 그 화두에 해당하는 서너 명씩의 연설이 게재돼 있다.

『혁명을 꿈꾼 시대』는 읽기 쉽다. 누군가의 연설마다에는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친절하게 소개돼 있고, 또 그 앞에는 젊은 ‘21세기’군과 늙수그레한 ‘20세기’씨가 그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21세기’군은 분명히 독자임직 하고, ‘20세기’씨는 아마도 현재나 미래의 장석준일테다.

“20세기 – 1차 세계대전이 끝난 건 민중들이 평화를 외쳤기 때문이야.
21세기 – 전쟁이 일어나는 걸 막지는 못했지만 그걸 끝낼 수는 있었군요.
……
20세기 – 핵무기 보유 논리와 테러리스트의 논리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네.
21세기 – 핵무기 보유국은 결국 ‘큰’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얘기네요.”

24개의 연설을 한 23명의 사람을 고른 사람이 당연히 장석준이므로 그의 취향이 대강은 드러난다. 버트런드 러셀, 유진 뎁스, 레온 트로츠키, 살바도르 아옌데, 안토니오 그람시, 로자 룩셈부르크, 우고 차베스 같은 이들을 꼭짓점으로 하는 다각형을 그리고, 그 무게 중심을 찾아보면 장석준의 다음 책들이 어떤 칼라일지를 어림짐작할 수도 있다.

이론은 가상이고 따라서 차가운 거짓이기 쉽다. 연설 역시 거짓으로 점철돼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날것에 조금 더 가깝다. 만약 그것이 거짓이라면 이론보다는 연설에서 그의 파렴치함을 더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장님, 대표님, 위원장님 줄줄이 나와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훈시를 늘어놓으며 데모대를 고문하는 대한민국 운동권식 연설에 지친 사람이라면, 『혁명을 꿈꾼 시대』의 필독을 권한다. 무릇 이런 게 실천이고, 이런 게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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