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 맛 좋고, 이야기 맛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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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26일 07: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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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이어 돼지고기 얘기를 한번 더 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돼지고기가 있는 곳에 대한 얘기다.

    ‘맛’은 그저 혀 끝으로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맛’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식당 분위기가 좋아서 가기도 하고, 이전 누군가 좋은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으로 찾기도 한다. 맛은 그렇게 ‘분위기’로 ‘마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나눈 ‘맛’은 유난히 기억에 오래 남곤 한다. 필자가 가끔 찾는, 소개할 만한 돼지고기 집을 소개한다.

    그리고 또 ‘양’이라는 동물이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상식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원래는 양고기 편에서 함께 쓸려고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 다 아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모른 척 해주셨으면 좋겠다. ^^

    돼지고기를 즐길만한 곳 1 : 신촌 고바우집

    신촌 오거리에서 연대방향으로 가다가 형제갈비 뒷골목에 위치한 고바우 소금구이집. 이 집을 떠올릴 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환청을 듣는 듯하다. 자못 심각하다 못해 언성까지 높아지는 정치토론에서부터 자욱한 연기 탓인지 아니면 실연 때문인지 뜻 모를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는 소리까지…

    이렇듯 고바우 소금구이집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각기 다른 사연으로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때때로 의기 투합되는, 마치 광장과 같은 곳이다.

       
      ▲ 신촌 고바우 소금구이집
     

    또 고바우집의 다른 느낌은 가물가물 떠오르는 마음 알싸한 추억이다. 어린 시절, 병원마다 써있던 고압산소통이란 빨간 글씨를 보는 듯하다고나 할까? 아니 연탄까스에 중독되어 어질어질해진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어머니가 떠다 준 싸한 동치미 국물과 더욱 비슷하리라. 이렇게 고바우집 가득 퍼진 연탄까스 냄새는 이런저런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바우집의 돼지고기는 투박하다. ‘뭉청뭉청’ 썰어낸 두툼한 고기를 잔뜩이나 무거워 보이는 무쇠 불판에서 아무런 양념도 없이 굵은 소금을 훌훌 뿌려 구워내니, 오밀조밀한 잔맛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시각을 즐겁게 하는 색감도 없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고바우집의 투박한 맛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챈다.

    고바우집 소금구이는 특별한 기교도 화려함도 없지만 누구와도 터놓고 이야기할 광장 같은, 동치미처럼 싸한, 그리고 은근하고 오래 함께 뜨거울 뚝배기 같은, 정말 필요한 ‘소금’ 같은 맛이다. 그렇게 맛을 즐기다 보면 ‘산다는게 단순하고 경쾌해지’지 않을까? 아래는 고바우집 소금구이 집이란 시이다. 함께 감상해보자. ^^

    고바우집 소금구이

    이상하지? 신촌 고바우집 연탄 불판 위에서 생고깃덩어리
    익어갈때, 두꺼운 비곗살로 불판을 쓱쓱 딱아가며 남루한
    얼굴 몇이 맛나게 소금구이 먹고 있을 때

    엉치뼈나 갈비뼈 안짝 어디쯤서 내밀하게 움직이던 살들과
    육체의 건너편에 밀접했던 비곗살, 살아서는 절대로 서로의
    살을 만져줄 수 없던 것들이, 참 이상하지?

    새끼의 등짝을 핥아주고 암내도 풍기고 했을 처형된 욕망의
    덩어리들이 자기 살로 자기 살을 닦아주면서, 그리웠어
    어쩌구 하는 것처럼 다정스레 냄새를 풍기더라니깐

    훤한 알전구 주방의 큰 도마에선 붉게 상기된 아줌마들이
    뭉청뭉청 돼지 한마리 썰고 있었는데 내 살이 내 살을 닦아
    줄 그때처럼 신명나게 생고기를 썰고 있었는데

    축제의 무희처럼 상추를 활짝 펼쳐들고 방울, 단검, 고기
    몇점,맛나게 싸서 삼키는 중에 이상하지?산다는 게 갑자기
    단순하게 경쾌해지고 화르륵 밝아지는,안 보이던 나의 얼굴
    이 그때 갑자기 보이는 것이었거든.

    김선우,

    돼지고기를 즐기만한 곳 2 : 양재동 마포숯불갈비집

    다 알다시피 돼지갈비로 유명한 곳은 지금의 도화동, 용강동인 ‘마포’ 일대 지역이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그 옛날 먼 물길을 저어온 뱃사공, 화물을 나르는 화부들이 옹고종기 모여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구워먹던 것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그러다 입소문을 타고 주변에 알려지면서 하나 둘 돼지갈비집이 생겨난 것이 지금의 ‘마포’ 일 것이다.

    어느덧 ‘마포갈비’는 돼지갈비의 대명사가 된 듯싶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마포갈비’ 집이 있으니 말이다. 강남 지역에서도 역시 ‘마포갈비’집이 있는데 그 맛이 ‘원조’의 맛을 뛰어넘는다(물론 주관적 평가다 ^^). 지하철 3호선 매봉역 근처에 있는 ‘마포숯불갈비’ 집인데, 워낙 맛이 좋다 보니 찾는 사람들이 많아 대기표를 받고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예사이다.

    10여년 전에는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무료한 대기시간을 위해 2층에 노래방을 꾸며 손님들을 위해 서비스할 정도였다. 이제는 2층까지 모두 음식점으로 넓혔지만 여전히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이 집의 ‘돼지갈비’ 맛을 볼 수 있다.

    본래 돼지갈비는 화력이 센 숯불에 구워 육즙이 마르게 하지 않으면서 익혀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기가 너무 얇으면 씹는 맛과 고기의 육즙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또 불의 화력이 좋지 않으면 익히느라 고기의 육즙이 다 말라버려 그 맛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집의 돼지갈비 맛은 ‘불’, ‘고기’, ‘양념’의 삼박자가 이상적으로 결합된 듯하다. 두텁게 썰어낸 고기를 과일, 파, 간장 등 온갖 양념에 재워 숙성시켜 화력이 센 숯불에 금방 구워 먹는다. 그래서인가? 씹는 치감이 좋고 고기의 육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약간은 달콤한 양념 맛이 밴 육질은 부드럽다 못해 입에 쫙 달라 붙게 만든다.

    기본 반찬이라곤 동치미 국물과 겉절이와 함께 제공되는 선지해장국뿐이지만 그 하나 하나의 맛도 그만이다. 이 집의 식당 노동자들은 돼지갈비 맛을 최상으로 내기 위해 잘 숙련되어 있는 듯하다. 화력이 센 불에 양념이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님이 미안할 정도로 석쇠를 부지런히 갈아준다. 아무튼 이런 노력들이 모두 합쳐져 ‘맛’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 *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영국 스코트랜드 산악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산에 나무 한그루 없다는 것에 의아해할지 모른다. 이렇게 초지만으로 산이 형성된 주된 이유는 양의 사육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양의 털을 이용하여 직조하는 모직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즉 요즘 말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양모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게 되고 대지주, 귀족, 혹은 봉건영주들은 경쟁적으로 양을 사육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초지는 공동체의 공동소유였던 까닭에 이에 기반하여 농사를 짓고 거주를 하던 소농민들의 존재는 대지주와 봉건영주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들은 소농민들을 경작지로부터 대대적으로 내쫓기 시작했고, 그들이 살던 집을 부수고 불태웠다.

    그리고 목양지로 변한 ‘자신의 땅’에 울타리를 둘러쳤다. 농촌 주민을 토지로부터 쫓아내는 토지약탈 과정을 아일랜드의 문학가 토마스 모어(Thoms More)는 ‘양들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울타리를 친다는 뜻에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이다. 1차, 2차에 걸친 ‘사유지로부터의 농민들의 대청소’를 통해 소작인과 농민들은 토지를 떠나 영국의 공장도시의 노동자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근대적 무산자가 창출되는 순간이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이를 두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수행된 교회재산의 약탈, 국유지의 양도, 공유지의 횡령, 봉건적 및 씨족적 재산의 약탈과 그것의 근대적 사유재산으로의 전환 – 이 모두는 (자본주의) 본원적 축적의 목가적 방법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적 재산권(property rights)이 확립되는 시기였으며, 마르크스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가 마련되는 서곡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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