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락된 자들만의 '시크릿 가든'
        2007년 05월 26일 07: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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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문성준 기자
     

    푸른빛이 가득한 숲이다. 고운 잔디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산책길이 나 있다. 이국적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그 풍경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여유와 평온함이 여기에 있다.

    이 숲 바로 옆에는 역동적인 공간이 있다. 숲의 녹색과는 다르게 잘 정돈된 푸른빛 잔디는 ‘달리기 본능’을 충동적으로 일깨운다.

       
     
     

    축구장을 둘러 육상 트랙이 있다. 나무그늘 아래로는 아기자기한 관중석도 있다. 농구 코트까지 보인다. 작은 종합경기장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돈을 보탠 ‘국민을 위한’ 운동장인 것 같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드나들기 어려운 곳. 이곳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이다. 보통 ‘국회’라 불린다.

       
     
     

    탁 트인 하늘, 넓은 잔디, 입구를 지키는 해태, 의사당 양쪽으로 도열한 의원회관과 도서관. 모든 시선은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앉아 있는 돔으로 쏠린다. 국회의사당은 머리에 왕관을 쓴 채 사진처럼 후광을 업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단한 권위를 지닌 이 모양새 때문에 저 앞을 지나기가 불편하다. 국회의사당과 그 부속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잔디밭은 옆동네 숲의 잔디밭과 뒷동네 운동장 잔디밭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루 종일 지켜봐도 저 잔디를 밟으며 가로질러 다니는 사람 찾기 힘들다. 그게 건물 앞 잔디의 힘이다. 자유로운 보행, 거침없는 질주 같은 방자한 행동을 규율한다.

    그래도 세 잔디밭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회 담장 안에 있다는 것.

       
     
     

    끝도 보이지 않는 이 담장은 국회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다. 붉은 장미가 예쁘게 꾸며주고는 있지만 이 철제 담장은 그 친근한 모양새와는 달리 국회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심리적 거리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 심리적 거리감의 실체는 검문이다. 

       
    위의 사진 속 경찰 하나는 규정에도 없는 말을 들먹이며 사진을 찍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국회 출입기자의 보도증도 소용없는 우기기. 일단 ‘하지 마’부터 지르는 권위의식의 발로.
     

    국회는 3중 경비 시스템이다. 등짝에 ‘千 九’라고 쓴 티를 입은 경찰들은 국회 외곽을 경비한다. 담장 안은 국회 소속 경비들이 지킨다. 이들은 담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검문한다. 세 번째는 국회 영내의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색대도 통과해야 하고 신원 확인도 거쳐야 한다.

    국회 정문은 통행을 어렵게 하려고 문도 활짝 열어 제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건 건물 안에 죄다 있고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은 철저히 검문검색하고 있는데 담장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까지 또 검문한다.

       
     
     

    국회 의원동산이라 불리는 이 작은 조각공원의 조각상은 국회 담장을 훌륭하게 은유하고 있다. ‘위험합니다!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푯말은 맘 편하게 국회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검문과 같다.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걸까?

    검문에 대답만 적당히 잘 하면 누구나 국회 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쓰러진 말뚝이 보여준다.

       
     
     

    경건하게 담장으로 둘러싸인 국회도 여의도 벚꽃축제 기간에는 개방된다. 물론 건물 안이야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그 기간만큼은 국회 영내가 공원이 된다. 평소에 개방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욱 궁금할 뿐이다.

    국회의 의정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은 국회 본관과 의원회관이다. 이 두 건물 주변의 경비만 강화한다면 나머지 공간은 숲, 운동장, 도서관, 잔디밭 등이라 종합 시설을 둔 여느 공원과 같다.

    국회 10만 평 중 2/3를 국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2005년도 하반기 ‘담장 없는 국회 만들기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국회 담장을 허물고 국회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은 바 있다.

       
     
     

    위의 사진은 당시에 김상길 새건축사협회 이사가 제시한 ‘국회 공간의 재구성 기획(안)’이다. 빨간 실선 안의 공간은 의정공간으로 보호하고 나머지 공간은 다양한 시설과 그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국민들에게 일상적으로 개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빨간 실선 밖의 담장을 허물면 그토록 권위적인 중앙 잔디밭도 광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독일과 캐나다가 그러하듯이(오른쪽 맨 위 사진 참조).

    국회는 자신 갖고 있는 공간을, 그들의 존재 근거인 국민들과 공유할 때가 되었다. 예전처럼 권위를 부리며 군림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 교통 불편한 한강 한 가운데 처박혀 있는 걸 오히려 억울해야 할 때 아닌가.

    허락된 자들만의 정원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열린 국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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