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부재중인 아이에 무심했던 엄마
        2007년 05월 25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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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호 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의 7살 난 어린 딸 지윤이가 ‘세뇨관 괴사’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주변에서 ‘십시일반’ 모금을 해 적지 않은 돈을 치료비에 보탰습니다. 지윤이 어머니 윤현경씨가 이에 대해 감사의 편지를 <레디앙>에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좀 전에 <레디앙> 기사를 보았습니다. 울산에 온 이후로는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인터넷도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서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희를 걱정하고 있고 지윤을 위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특히 헌혈증과 책을 직접 우편으로 보내주신 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냥 고맙습니다라고만 전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떨려서… 좀더 이야길 나누고 싶었습니다.

       
     
    ▲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전 안기호 위원장의 딸 지윤이와 큰아들 상윤이, 그리고 엄마 윤현경 씨
     

    올해 초만해도 지윤 아빠와 애들과 하루라도 같이 모여 알콩달콩 살고 싶은 게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지윤 아빠가 노조활동을 하면서 수배, 구속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있던 근 3년 간 혼자 애들 키우면서 일하면서 그래도 잘 버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 소중한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심정을 아빠가 얼른 와서 달래주고 어루만져주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 언젠간 오겠지 하는 제 염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 바램이 이제 정말 이뤄졌구나했던 몇 달 간이 지금 와 생각해보면 감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나온 제 자신이 내심 무척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윤이가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딘 건 제가 강해서도 아니었고 제가 잘나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제 삶의 버팀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이제야 그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없는 동안 당연한 그 아이들의 불안과 그리움과 섭섭함과 슬픔을 저는 태연하게 대해 왔습니다. 같이 슬퍼하고 불안해하고 그리워하고 섭섭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무심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아이들을 대해 왔습니다. 마치 저는 너무나 강하고 씩씩한 엄마처럼요. 그래서 지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얼마나 약과 주사와 투석으로 생존을 유지해 나가야 할 지 모른 채, 누구보다 활달하게 조잘거리고 노래하고 뛰어다니는 지윤이를 보면, 저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동안 같이 나누지 못했던 모든 일들과 시간들이 종일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밤새 잠을 설쳐도 저는 지윤 아빠와도 저의 고통을 나누지 못합니다. 지윤 아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고통스러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눠도 반이 되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도 있는 거지요, 아직은.

    그래서 모금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모금에 참여한 사람이 뜻밖에도 많다는 이야길 들어도 아직은 그 이야길 들춰보고 기뻐하거나 고마워하거나 할 기력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헌혈증과 동화책이 든 우편물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소중한 피를 지윤에게 나눠주려고 했습니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또 한 번 어리석은 저를 보았습니다. 웅크리고 있었던 겁니다. 자책하고 자책하고 또 자책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으로 남모르게 남아있길 바랬던 저를 보았습니다. 정말 부끄럽게도…

    그랬습니다. 후유. 그런데 기사를 보니까 더 많은 분들이,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저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면, 이렇게 억수로^^ 부끄럽고 나면 다시 힘이 나서 지윤 상윤의 씩씩한 엄마가 되어 있을 꺼라고.

    그래서 사랑하는 지윤이 건강하고 늘씬한 아름다운 어른이 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볼 거라고.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지윤을 걱정하고 빨리 낫길 기도하고 있으니까 꼭 나을 꺼라고,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와 지윤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사설이 넘 길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그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까요. 그건 차차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평균수명의 몇 십배를 살아도 다 갚는 건 힘들 것 같아서^^

    어쨌든 살아가면서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요.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녁약 먹이고 주사 주고 투석해야 할 시간이 다 됐거든요.(주사맞는 걸 넘 싫어해요^^) 그럼 항상 건강하시고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윤 지윤 엄마 윤현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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