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꼭 집에서 먹어야 하나?
    2007년 05월 21일 06: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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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에 연재됐던 ‘먹거리 안심 프로젝트와 대선 의제’ 시리즈가 끝났다. 이 시리즈의 집필팀은 글을 읽은 보통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독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내용을 평가 받고 향후 활동에 참고를 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지난 16일 <레디앙> 사무실에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편집자 주>

참석 : 김현일(민주노동당 당원), 박동범( 〃 ), 최현숙(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사회 : 한재각,  정리 : 이재영

한재각 지난 4월부터 6회 연재한 먹거리 기획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드백(feedback)이 필요해서 좌담을 마련했다. 먼저 이런 식의 독자 좌담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말해 달라.

박동범 <레디앙> 공지에서 좌담 참여와 주제를 개방해 놓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참여를 꺼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대강의 내용이라도 줬으면 참여하기가 더 쉬웠을 것 같다.

최현숙 필자와 좌담한다니 좀 어려운 얘기가 많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먹고 사는 건 익숙한 문제, 익숙하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다

   
  ▲ 한재각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김현일 먹거리에 관심은 있지만, 당원 대부분이 이쪽 문제에 무지하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헛소리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익숙한 문제이긴 한데, 익숙하다 하여 다 아는 건 아니다. 연재물에 댓글이 적었던 것만 봐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닌 듯하다.

 먹거리 연재를 본 첫 인상은 어떤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안은 모두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좀 ‘고급’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통념에 젖어 있다. 그래서 먹거리 연재가 반가웠다. 생산 소비 유통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의제화할만한 계기가 많다고 생각한다. 대선에서도 쉽게 전달될만한 주제다. 

대학 때 농업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생산성 같은 건 다루는데, 먹거리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 삶의 문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역시 학점은 안 좋았고. (웃음)

비판운동에서 주변화된 먹거리

먹거리는 비판운동 진영에서도 주변화된 토픽(topic)이다. 연재 기사에서 언급하는 ‘세계식량체계’ 같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굉장히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운동권은 큰 문제 해결되면 먹거리 같은 것도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막연한 기대에 매몰돼 있다. 먹거리 운동 내부에서도 통일되면 해결된다는 식의 주장이 많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결된다는 건지 의문이다.

 여성이나 환경 같은 것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많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먹거리를 중심으로 여성이나 환경 문제에 접근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재 기사의 간분야(間分野)적 관점, 계급적 관점이 좋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제시되지 않아 안타까웠다. 꼭 시스템적 해결보다는 소박하게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다들 시스템만 고민한다. 그래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일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낸다. 먹거리는 민주노동당이라는 큰 시스템을 활용해 풀기 좋은 주제라 생각한다.

 당 밖의 사람들에게 매력도가 높은 주제다. 싸고 좋은 음식 먹자는 것은 정치적 성향에 관계 없이 모두의 염원이니까. 민주노동당이 다루는 여러 주제들은 그 효과보다는 이데올로기 지형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먹거리는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볼 수도 있다.

먹거리가 당의 의제화될 수 있을지는 걱정

   
  ▲ 김현일 민주노동당 당원
 

 대선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책위원회와 <레디앙>이 이런 다양한 의제를 다뤘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다. 이런 문제가 당에서 의제화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솔직히 있다. ‘웰빙’이니 ‘중산층 의제’니 하는 비난도 있을 수 있고, 구색 맞추기 정도로 그칠 수도 있다.

박동범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당도 뛰어들기 좋은 주제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당원 인식부터 만들어야 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마포 지역위에 정경섭 위원장이 빈곤층 지역을 도는데, 먹거리 문제와 엮어야 하겠다.

빈곤층 아동의 영양 상태라든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이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생각에서 더 좋은 음식을 먹이려는 것으로 인식이 발전해야 한다.

 <레디앙>에 연재되는 유미상의 음식 칼럼을 보면 먹고 싶은 게 많아지긴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오늘은 어제 만들어 두었던 미역국을 덥혀 먹고 나왔다. 뭣들을 먹고 사시나?

술 담배도 ‘먹는데’ 미국산 쇠고기쯤이야

 혼자 자취하지만, 집에서 밥도 국도 해먹는다. 그런데 국을 만들면 많이 남고 그것만 여러 차례 먹으려면 지겹다. 오늘 아침에는 냉동짜장을 먹었다. 술 먹고 나서는 꼭 냉동짜장으로 해장한다. (웃음)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면 다들 사먹을 거 같다. 싸면 사먹게 된다. 술 담배도 먹는데 뭘 어떠냐고 생각할 것이다.

 이천 사시는 어머니가 가끔 오셔서 밥 해놓으면 떨어질 때까지 먹고, 대부분은 사 먹는다. 패스트푸드는 안 먹고, 밥을 사 먹는다. 그런데 사람들 만나다 보면 패스트푸드 안 먹는다는 원칙 같은 거 지키기 어렵다. 사람들 따라서 스타벅스도 가야 하고.

 담배 때문에 스타벅스 안 간다. 패스트푸드는 거의 안 먹는다, 술 담배 하다 보니 금연하는 패스트푸드는 안 가게 된다.

 밥 먹는 거 잠 자는 거 마음대로 하는 스타일이다. 아침은 안 먹고, 약속 있으면 그 사람과 점심 같이 먹고, 그렇지 않으면 배 고파질 때 먹는다. 물론 주부 생활 25년 동안은 성실히 밥 하고, 밥 먹고, 도시락까지 쌌지만.

좋은 먹거리가 실현되더라도 그 먹거리 준비가 여성노동의 몫이라는 현실은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을 찾으려 이 자리에 왔다.

밥은 꼭 집에서 먹어야 하나

   
  ▲ 박동범 민주노동당 당원
 

이재영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많이 매식하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집에서 밥을 먹을까?

 어머니를 보면 밥 준비하는 걸 아주 힘들어 하면서도 밥을 꼭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으신 것 같다.

 먹거리 준비를 위해 시장을 이용하나?

 직장이 시장 안에 있어서 자주 간다. 그런데 찬거리보다는 직장에서 먹는 과일이나 떡 같은 간식거리를 사게 된다.

 동네 시장에는 가끔 가고, 주로 인터넷에서 산다.

 인터넷에서 식품도 파나?

 다 있다. 검색 기능이 있으니까 시장보다 더 찾기 쉽고, 가격도 괜찮다. 인터넷에서는 주로 고기를 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어지간한 음식은 다 할 줄 안다. 어머니가 해장국을 안 해주셨기 때문에, 내 한몸 살려다 보니 다 할 줄 알게 되었다. (웃음)

 시장 가는 거 좋아한다. 사람들이 저런 걸 먹고 사는구나 하고 느끼지만, 사는 건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 야채 같은 건 정말 싸다고 생각한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야 좋지만, 유통단계까지 보면 농민들에게 얼마나 돌아갈까 생각도 든다.

어차피 오래 살 것도 아닌데 하면서 먹는다

 떡을 싼 랩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와 몸에 안 좋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고 막막하다. 먹거리 연재 기사에 나온 원칙들을 개인 수준에서는 지킬 수 없다. 보통들은 어차피 오래 살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한다.

 시장 가는 주부들이 국산 외산 구별하기 어렵고 상인들 말 못 믿기 때문에 속았다는 생각 안 들고 싼 외산을 산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좋은 거 고르겠지만,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싼 데로 손길이 갈 수밖에 없다. 좋은 음식만 먹으면, 나쁜 음식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져서 탈이 잘 난다. (웃음)

 좋은 먹거리를 개인 의지 문제로 접근할 수는 없다. 좋은 먹거리를 체험하고 확신할 수 있는 공간, 장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적 실천이다. <녹색칼럼> 연재 중 허남혁의 글에 나오는 ‘대구 농민 장터’ 같은 게 더 부각됐으면 좋았겠다. 보통 사람들은 먹거리 기획이 좋은 얘기인 줄은 알지만, 과연 내 일상이 될까 회의한다.

 좋은 제도와 개인 일상이 무관할 수도 있다. 냉장고에서 썩은 음식 꺼내 버릴 때 가슴이 찢어진다. 집에서 밥 먹을 기회가 없는데 어쩌겠냐.

 꼭 집에서 먹지만 말고, 밖에서도 좋은 먹거리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건 이데올로기다.

 한국에는 그런 사례가 없지 않나?

 공동식사운동 같은 게 있었다.

 브라질 지자체들이 빈민층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을 운영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공공 식당을 만들 수 있다.

좋은 먹거리 외식문화 만드는 것도 정치적 실천

 값싼 외식, 나쁜 생산물이라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먹거리에 관련된 결혼이나 모성담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좋은 먹거리 외식 문화를 만드는 것도 정치적 실천이다.

 요즘은 많은 가정에서 아침밥을 배달해 먹는다. 현실적으로 먹거리는 자본주의 시장에 내던져진 문제다.

 밥은 집에서 따뜻하게 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는 사회에 우리가 ‘밥공장’ 얘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고 하겠지. (웃음)

 먹거리는 생산력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화 문제이기도 하다. 왜 진보운동 진영은 먹는 문제를 우습게 알까? <레디앙> 독자들도 먹거리 연재를 잘 안 읽던데.

   
  ▲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거대담론이 아니니까. 남성 문제가 아니니까. 밥 하는 여성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노동운동은 생산이나 소득 문제에는 치중하지만, 소비나 지출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라면만 먹어도 감지덕지지 같은 인식도 있고.

 실제로도 살 정도만 먹으면 된다고들 생각할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 먹거리는 국제적으로 고급화된 상태고 가격도 가장 높은 편이다. 쌀이든 소고기든 최근 20년 동안은 생산성보다 맛 중심으로 개량됐고, 이유식에서는 이미 유기농이 시장 지배적이다. 하지만 네덜란드나 덴마크 같은 나라와는 달리 유기농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낸다.

욕망을 죄악시하는 운동권 분위기

 90년대부터 좋은 음식에 대한 욕망은 커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욕구와는 반대로 대량 생산된 저급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문제다.

 보통 사람들은 더 좋은 먹거리를 생각하지만, 운동권은 그렇지 않다. 욕망을 죄악시하고, 안 밝히는 금욕주의다. 다들 해외여행 다니는 시절에 외국 나간다고 하면, 저만 잘 먹고 잘 살려느냐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게 운동권 분위기다.

 ‘웰빙’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 취향과 선호로 문제를 치환하는 거다. 함께 잘 먹고 사는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인류가 먹거리나 생명 문제로 한계에 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보운동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배만 따시면 된다는 의식 수준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봐야 하는 거냐?

 자본주의의 그늘이 있지만,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형제갈비, 스타벅스 가는 사람한테 빈곤은 자본주의가 만드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만 섬세하지 못한 방법이다.

모든 게 자본주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공장에서 시작된 좌파운동은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먹거리 문제 같은 건 못 푸는 한계도 가진다. 노동 문제가 해결되면 먹거리나 농민 문제에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원리적으로는 깔끔하지만, 현실을 방기하는 것이다.

 정리 발언을 해달라.

 진보진영 외에는 모두들 뭘 먹느냐는 문제에 굉장히 집착한다. 이런 현실을 잘 봐야 한다.

 어제 아는 형이 1등급 한우를 사왔더라. 여유만 있으면 다들 그렇게 산다. 평소 고민 안 하던 문제를 고민하게 돼서 좋은 자리였다. 먹거리 기획을 더 진전시켜서 대선 의제화했으면 좋겠다.

 중산층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먹거리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먹거리는 진보진영에게 블루오션(blue ocean)이다.

 이런 거 한다고 표를 찍을까? 표는 안 찍더라도, 밥 굶는데 웬 좋은 먹거리, 라고 묻는 낙후한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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