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부끄럽게 한 '당원 선배'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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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25일 07: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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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입니다. 입당한 것은 2003년 봄인데, 02년 대선 때 한 선배와의 대화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1학년이었던 02년 어느 날 동아리 술자리에서 대선이야기를 하던 중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한 선배에게 노무현이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정치적 세련되지 못한 민주노동당을 지적하며, 그것을 당시에 내가 민주노동당에 투표하지 않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선배가 되물은 첫 번째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에 대해 알고 있느냐였습니다.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 류하경 민주노동당 연세대 학생위원장
     

    이어진 선배의 정책에 대한 긴 설명과 잊혀지지 않을 한마디 충고가 있었습니다. “네가 노무현을 지지한다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거창한 훈계 뒤에 숨어서 중립적인 척하지 말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열심히 설득해. 그럼 널 인정해줄 거야.”

    부끄러웠고, 며칠 뒤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후보에 대해 다시한번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무지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지합니다.) 그리고 투표 당일 날 권영길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새내기 대학생들의 <레디앙> ‘안 찍어’ 시리즈 인터뷰를 관심 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 여부에 대한 입장과 설득은 지금 우리의 처지에서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졌어야 될 의문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고, 어떤 생각과 공부들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한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대학생이라면 대부분이 관심을 가진 질문이지만, 대답은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첫째, 아직 노동자는 아닙니다. 예비노동자임을 인식하고만 있다면 그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일테지만, 사실 요즘의 대학생들은 자신이 장래에 노동자,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요.

    하여 가끔 노동자 농민들의 집회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가지를 지날 때면 욕을 하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교통의 혼란에 대한 불만에 앞서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조금은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대학교에서 과연 대학생이 공부를 하긴 하는가. 토익, 학점, 취업준비, 고시 공부가 아닌 타인의 고통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교양을 쌓을 기회가 있기는 하나.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몹시 회의적입니다.

    우리는 공부를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 한가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운동권 이미지를 얘기하는 것이 그러하고, 한미FTA의 협상안을 한번도 보지 않은 채 언론의 개방/성장 환상을 그대로 좇아갈 때 그렇습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우리가 요즘 유난히 친구들에게서 많이 듣게 되는 “정치적 중립”, “탈정치”라는 말들이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객관성’과 ‘공정성’은 어떤 토론도 침묵시켜버리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중립이나 탈정치를 말하며 생각을 중단하고,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릴 때 그것은 이미 중립도 공정도 뭣도 아닌 채,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쉽습니다.

    국가주의, 성장중심주의 제도교육의 터널을 지난 우리에게는 대학교에 들어설 때부터 벌써 중립이나 탈정치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공정성이란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지금의 편견과 무지를 그대로 덮어두거나 개인의 선택에 대한 침해불가만을 말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대학가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이 ‘운동권’의 표식처럼 작용하며 위선이나 기만 정도로 취급받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는 냉소하면 그만일만큼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치에 대한 견해나 중요성에 대한 개인들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노동자, 농민, 인민의 정치세력화는 우리의 직접적인 삶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큰 줄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유일하게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민주정당이며, 양심적병역거부/성소수자/장애인 등 사회의 가장 약자의 입장에 서있는 정당입니다. 졸속적인 한미FTA 반대, 이라크전 파병철회를 당론으로 내걸고 있는 유일한 정당이며, 비정규직 철폐, 대학등록금 상한제, 남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 불평등 해소와 민주, 평화라는 일관된 정책을 내고 있습니다.

    입법이나 의회정치가 분명 다가 될 수는 없지만, 젊은 우리들이 최소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방관의 덫만은 걷어내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민주노동당=운동권=편향적 이라는 단순한 이해와 편견을 넘어 진지한 고민과 소통의 기회가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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