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과 이명박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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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8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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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과 이명박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 사람은 재벌 기업의 경영자이고 또 한 사람은 재벌 기업의 전직 경영자라는 것?

    그렇다. 그들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기업 경영자이며, 또 전직 기업 경영자이다. 그런데 최근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이 사회를 지도하는 계층이라는 말은 아님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은 사회적 지도가 필요한 계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회지도층=사회적 지도가 필요한 계층

    먼저 김승연 회장의 예를 살펴보자. 그는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짖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도 후회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김 회장님,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짖은 다음에도 그런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지요.

    그의 사과문에서 그가 직접 회초리를 들었던 보복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수많은 기업들이 이번 일로 위축되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들께서 넓은 아량으로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스스로 “누구보다도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신분”이라고 말한 그가 왜 신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부족한 것 하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인권 교육이었다. 그가 내 자식의 인권만큼 남의 자식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생각, 재벌 총수 자식의 인권만큼이나 술집 종업원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할 수 없었던 것은 그에게 인권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족했던 것들

    다음으로 이명박 후보의 예를 살펴보자. 그는 “일 안 해도 봉급이 나오고, 출퇴근 시간도 없고, 오후에 강의가 있으면 오후에 나오고 다른 자리에 참석해 보수를 받을 수도 있”는 교수들과 “한 달에 한 번 두 번 공연하면, 나머지는 자유 시간”인 오케스트라 연주가들이 무슨 노조를 만드느냐고 주장하였다.

    자, 이번에는 문제 나간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노동 인권’에 대한 개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여기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이 후보님, 이 말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말 아닙니다. 세계 인권 선언 제 23조 4항이에요. 글로벌 스탠더드 좋아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말 정도는 알아두셔야지요.

    이명박 후보는 또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과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자, 이번에도 똑같은 문제 나간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개념이다.

    그의 개념을 따르자면 멀쩡히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성적 소수자들은 순식간에 ‘비정상인’이 된다. 그리고 부모들은 아이를 세상에 불구로 태어나게 하느니 차라리 낙태를 해야 한다.

    이러한 발언들이 허용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들과 장애인들의 인권이 얼마나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장애인에게 청계천은 ‘차별천’

    유럽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국과는 달리 유럽에는 장애인이 참 많다고들 한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는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자, 다시 문제 나간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이 유럽보다 장애인의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 한국에서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되는 사람의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이유는 간단하다. 유럽에는 장애인이 거리를 활보하고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장애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장애인을 많이 만날 수 없다. 한국에는 장애인이 거리를 활보하고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여건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어쩔 수 없이 집 안에만 있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 후보의 무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계천 재개발 사업(청계천은 ‘복원’ 된 것이 아니라 최신 유행에 발맞추어 ‘재개발’된 것일 뿐이다.)이 완료되었을 때, “청계천은 차별천”이라는 피켓을 들고 마땅한 자신들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던 장애인들은 이 후보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후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비장애인(물론 후보님도 아시겠지만, ‘정상인’이 아닙니다.) 시민들과 함께 카메라 화면에 잘 잡히는 것이었다. 당시의 자료 화면은 이 후보의 시장 재임 시의 치적을 홍보하는 자료 화면으로 널리 애용될 예정이다.

    사회 지도층 인권교육 절실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교육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은 일반 국민의 92%에 이르지만 인권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겨우 5.3%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매일 같이 기사와 뉴스를 장식하는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 직접 나서서 인권교육이 절실한 이유를 몸소 실천을 통하여 입증하고 있으니까. 이제, 우리가 나서서 사회 지도층에게 사회적 지도를 해야 할 때이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인권교육을 받아왔더라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사회적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분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분들이 어디 인권을 우습게 알아서 그랬겠나. 인권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탓하자.

    ‘인권교육법’ 제정이 어떠한 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인권교육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어 뿌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교육법’ 권고안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인권교육법’ 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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