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자연의 가치
        2007년 05월 21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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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전 여행에서 마주친 태국 치앙마이 카렌족 마을의 풍경. 마을 입구 짚풀더미 위에 새끼돼지 여섯 마리가 올망졸망 달라붙어 어미돼지의 젖을 빨고 있었다. 삐약삐약 하면서 어미닭 뒤를 죽어라고 쫓아가는 병아리들, 새끼 코끼리에게 물을 뿌려주는 어미 코끼리. 마을 사람들도 갓난아이부터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사진 한 장면에 다 담을 수 있었다. 온 세대가 어우러져 제각기 바쁜, 생기 찬 모습이었다.

    동물부터 사람까지 세대가 어우러진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 내겐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껏 닭장에 들어있는 닭만 보거나 앞에 파는 병아리 구경만 했지 닭과 병아리가 한데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 중에 닭이 알을 낳고 또 품어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을 온전히 지켜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환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카렌족 마을을 통해 세상을 보니 현대사회에서는 자연 순환의 질서가 어그러진 것이 많다. 경제가치를 높이기 위해 효율성을 최대로 만들다 보니 생기는 일들이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유일한 잣대가 되어버린 화폐, 즉 돈이다. 그러나 자연을 화폐가치로만 재단하게 되면 우리는 더 큰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미국산 쇠고기가 본격 수입되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고기를 얻기 위한 공장식 축산업은 광우병이라는 무서운 질병으로 나타났다. 시간은 돈이다. 가축들이 하루하루 햇빛과 사료를 먹고 성장하는데 드는 시간은 성장호르몬이 대신했다.

    고기근수를 높이고 사료비를 줄이기 위해 초식동물에게 동물의 부산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장식 축산업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광우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는 우리 정부는 전형적으로 국민의 건강보다는 화폐 가치를 쫓는 정부이다. 우리가 선택한 정부의 결정은 현재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반영한다.

    기상학자들이 지구온난화로 동아시아의 해수온도가 상승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슈퍼태풍이 몰아닥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앞으로 100년 뒤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한반도의 해수면이 1m 가량 상승해 남북을 합쳐 전체 면적의 1.2% 가량이 침수된다는 연구보고서도 있지만 당장 이번 여름 해안가 주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해일의 발생빈도는 증가하는데, 이를 막아줄 완충지대 해안림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안선 5,920.09km 구간 중 해안림이 남아있는 곳은 933km로 15.8%에 불과하다. 스펀지처럼 지진과 해일의 피해를 막는 천연방파제가 사라진 곳엔 횟집과 펜션, 도로가 들어섰다. 해안림의 보이지 않는 역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의 가치만 바라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 해일과 지진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해안림의 가치는 얼마일까? 일본의 해안림 (사진=녹색연합 서재철)
     

    한국사회에 잠시 ‘인간의 가치’와 ‘자연의 가치’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일으켰던, 도롱뇽 소송. 속도의 가치를 대변하는 KTX에 밀려, ‘자연의 가치’는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깟 도롱뇽이 뭐 대수냐는 이야기이다. 교통이 발달하면 편리해지고 경제적인 효과도 얻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빨대 효과라는 것이 있다. 전국이 3시간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서울이나 대구와 같은 대도시가 지역의 상권을 흡수하는 것이다. 벌써 지방 사람들이 서울의 큰 병원과 명품 쇼핑센터로 몰리고, 입시생들은 서울의 족집게 논술·영어학원으로 ‘등교’하면서 지역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철도만이 아니다 2020년까지 국토 남북축 7개, 동서축 9개의 격자형 고속도로 망을 단계적으로 건설하는 ‘7by9’ 도로계획인 제4차 국토종합계획.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라지만 일정 정도 이상을 넘어선 도로의 발달은 분산효과가 아닌 흡수효과를 가져온다. 지역에서 마냥 좋아할 만한 정책이 아니다.

    격자형 도로망 건설로 우리 국토는 칭칭 붕대를 감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산과 들이 망가질까. 지금도 지역에는 고추 말리는 용도의 국도와 운전면허 연수용 국도가 많다. 하루 평균 100대도 안다니는 국도에 수십억 원의 돈을 쏟아 붓고 있다.

       
    ▲ 중앙고속도로와 5번국도가 홍천 IC 부근에서 만나고 있다. 도로중복투자 인한 경제적 손실과 사라지는 자연의 가치는? (사진=녹색연합)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채취하고 가공해 생산과 이윤을 창출 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생각해왔다. 우리가 제값을 쳐주지 않더라고 묵묵히 제몫을 하고 있는 자연의 가치를 그 자체로 바라봐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만금, 10년이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하면서 돈을 번 건설회사는 행복해졌을지 모르지만 전북도민들이 특별히 잘 살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값을 따질 수 없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자연정화기능을 하는 소중한 갯벌만 잃었다.

    우리나라의 2005년 국민 1인당 시멘트 소비량은 945kg로, 한사람이 1년에 1톤씩 시멘트를 사용하는 셈이다.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의 2배 수준이다. 시멘트로 온 국토를 덕지덕지 바르고 있다. 건설로 경기를 부양하는 토건국가이다. 이미 충분하다.

    새로운 사람을 뽑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선택의 기준에 한 가지를 더하자. 무식하게 경제적 가치만 부르짖지 않고 이 땅과 자연의 가치를 함께 이해하는 지혜로움을 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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