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이데올로기
        2007년 05월 17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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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창하고 나섰다. <황해문화> 여름호의 특별기고 「6월 항쟁 이후 20년,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는 87년 체제와 현 시국에 대한 진단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록 군부 쿠데타에 의한 역전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지만 ‘불가역적 달성’이라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집권이 87년 체제의 성과를 가역, 즉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일텐데, A4 7쪽짜리 글에서 그는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내가 보건대 대선에서 보수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뉴라이트의 논객들이나 야당 내 수구인사들의 강경발언에도 불구하고 87년 이래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근본적으로 되돌려놓거나 6·15공동선언을 폐기할 수 있으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은 예의 분단체제론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단지 남한의 역사 속에서 보는 대신 남북한을 아우르는 분단체제 속의 사건으로 파악하고 평가할 것을 제의 …분단체제의 규정력을 과소평가하는 ‘반신자유주의’ 논리나 분단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지만 분단현실의 체제적 성격에 둔감한 ‘반미자주통일’ 노선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반신자유주의’ 노선이 분단체제의 규정력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반신자유주의’ 진영의 대부분은 분단체제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더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부합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거나 분단에 반대하는 것은 한국 진보운동의 여러 측면 중 일부이지, 분리되어 있거나 대립하는 각각의 운동이 아니다.

    ‘분단체제의 규정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백낙청 교수가 생각하는 분단체제와 신자유주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더욱 궁금하다. 분단되지 않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것만 보더라도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분단체제보다는 한국 자본 운동과 정치 상황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어기지로 분단체제론을 끌어다 붙일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필요한 노선을 나는 ‘변혁적 중도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분단체제변혁이라는 목표를 확실히 간직하면서 그 실현을 위해 다양한 세력들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수렴하는 중도적 노선이 필요해진 것이다.”

    인문학자인 백낙청은 안타깝게도 ‘중도’를 ‘짬뽕’으로 오해하는 듯 하다. 다양한 세력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수렴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세력 모두가 경주해야 하는 노력이지, ‘중도’의 전유물이 아니고, 정치적 중도가 세력 연합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의 ‘중도’가 <창비>에 실리면 ‘혼성모방’이라는 평론을 받겠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무소신, 무정견’이라 평가된다.

    “국내의 정치지형이 한미FTA 찬성과 반대의 두 진영으로 확연히 갈라지는 것 …이 구도가 가져올 급진적 진보진영의 세력 확장이 그 나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자기쇄신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보수야당의 손쉬운 승리와 단순한 양적 확대에 만족하는 급진 정파들의 존재로 87년 체제의 내리막길이 더욱 길어지고 고달파질 위험도 크다. 한미FTA 협상타결로 어중간한 ‘중도개혁’ 세력의 입지가 축소된 지금이야말로 변혁적 중도주의 노선에 충실한 진보적 개혁세력의 재결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미FTA 찬반으로 갈라져 다투지 말자는 백낙청의 이번 주장은 너무 나갔다. 87년 체제의 극복은 ‘87년 체제를 극복했다’는 말이나 추상적 선언이 아니라, 그 역사적 궤적에서 발생하는 현안, 예컨대 현 시점에서는 한미FTA 같은 구체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응과 귀결에 의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백낙청의 주장은 87년 체제,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기거나 진보진영을 키워줄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또는 간판을 바꿔 단 그 당의 집권 연장을 목표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한미FTA 따위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초월하여 진보진영이 또 한 번 몸대주기를 해줘야 한다는 구닥다리 정치 노선의 리바이벌(revival)일 뿐이다.

    박정희가 분단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억압한 것처럼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제 분단 극복을 내세워 진보진영의 독립, 민주주의를 협박하는 또 하나의 분단이데올로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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