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신중한 삼수생, '안주'하고 있나
        2007년 05월 16일 06: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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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세 후보의 약점 또는 단점을 살표보는 일은 쉽지 않다. 지지하는 쪽은 감추려하고 경쟁 진영은 강조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1백% 객관적 평가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레디앙>이 약점 또는 단점이라는 문패를 달고 이들을 살펴보려 한 까닭은 후보들의 약점에 대한 솔직하고 다양한 시각과 이를 ‘방어’하는 쪽의 논리가 부딪치는 어느 지점에서 진실의 편린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객관성의 확보는 아니지만 객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진보 진영의 터줏대감.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 예비 후보를 소개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언어는 없다. 이 표현 속에는 권 후보를 대변하는 안정감, 신뢰감, 따뜻함 등이 총체적으로 집약돼있다. 이를 포괄하는 권 후보의 트레이드마크는 ‘신중한 리더십’으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박용진 전 대변인은 권 후보에 대해 "침묵으로 말하고 의지로 실천한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실제 권 후보의 ‘신중한 리더십’은 수많은 갈래의 진보 진영을 한 조직 안으로 끌어안을 때 마다 십분 발휘되며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냈다. 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에 맞서 정부 수립 후 최초 정치 파업을 이끌어낸 것을 시작으로 1988년 언론노조 설립, 1995년 민주노총 설립,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전면에는 권 후보가 있었다. 

    안정인가 안주인가, 미덕이 구태로

       
      ▲ 자료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그러나 권 후보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현재’에 주목한다. 현재 봉착한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권 후보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는 관점이다. 한 최고위원은 "위기를 맞아 무력감으로 정체돼 있는 당의 오늘이, ‘안정’이 아닌 ‘안주’하는 권 후보의 그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당의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당직자도 "정치적 지분이 적은 진보정당에게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지금 절실한 것은 이 위기를 타개해 낼 돌파력과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공세적인 역동성”이라며 "지금까지 보여준 권 의원의 ‘좌고우면’ 리더십만으론 결코 당의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당의 혁신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권 후보의 미덕인 ‘안정’과 ‘신중함’이 ‘안주’와 ‘좌고우면’이라는 ‘구태’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 출마 선언과 관련해 권 후보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좌고우면’ 성향에 ‘쐐기’를 박는 사례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어 권 후보의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은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삼수론’ 이다. 이에 맞서 권 후보는 ‘감동론’ (삼수 한 사람이 당선돼야 더 감동적이다)에서 시작해 ‘자격론’ (나는 대통령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을 거쳐 ‘시대정신론'(빨치산의 아들인 권영길이 평화 통일의 시대정신이다)을 잇달아 제시하고 있지만, 주변의 반응은 여전히 ‘막연하다’는 게 지배적이다.

    이에 권 후보를 애정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한 당직자는 "지난 번 당 대회에서 처음으로 (권 의원이) 삼수를 내세우며 자신이 돼야 더 감동이라고 했을 때, ‘ 당에서 가장 재미없는 권영길이 처음으로 당원을 웃겼다'(웃음)"며 "무거운 걸 가볍게 잘 다뤄 기대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뒤 삼수론에 대해 더 발전된 그림과 명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한 인터넷 매체의 정치부 팀장은 "삼수론은 설사 본선에 진출 한다고 해도 계속 끊임없이 권 후보를 따라다닐 것"이라며 "지금의 명분으론 부족하다. 더 구체적인 역할과 밑그림을 제시해 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후보의 ‘삼수’는 자연스레 ‘나이’ 문제로 이어진다. 이를 의식한 듯 권 후보는 기자들을 만날 때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 예비 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동갑’임을 자주 강조한다.

    권영길과 이명박은 동갑내기

    그러면서 권 후보는 삼수 끝에 당선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네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된 브라질의 룰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를 내세운다. 그러나 ‘나이’ 문제는 단순히 주민등록번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당내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권 캠프가 그저 나이가 많고 적음의 평면적 문제로 단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나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새로운 걸 보여주거나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더 나아가 대통령 후보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지 못해 그에 따른 미래의 비전과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게다가 권 후보가 먼저 출발한 두 주자보다 ‘상대적으로’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어 당 안팎에서는 이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보폭이 느리다보니 자연스레 언론 노출의 빈도도 떨어지고, 당내 첫 경선을 위한 ‘흥행’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극적인 권영길 … 선배가 먼저 멍석을 깔아줘야

    권 후보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한 당직자는 "(권 후보의)느린 행보를 보면 우리가 오히려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면서 "후발 주자에다가 (대표를 하느라)개인 의정 활동도 딱히 내세울 상징이 없는 분이 그리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당의 한 관계자는 ‘선배론’을 꺼내들었다. 그는 "그래도 최소한 ‘권영길’인데, 처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선배라면 후배들에 앞서 먼저 멍석을 깔아주고 통 큰 정책이나 공약을 제시하면서 흥행을 몰아줘야 하는 게 맞다" 면서 "지금봐서는 내용이 없는 건지, 아니면 또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부리고 있는 건지 솔직히 종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조금 더 솔직하다. 그는 "캠프 내부에서는 경선 당선권에 근접한 것으로 자체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소극적인 행보는)어떻게 보면 당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도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한 인터넷 매체의 정치부 기자는 권 후보의 소극적 행보에 대해 "기자로서 (권 의원 캠프에) 아쉬운 게 있다면, 우리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왜 권영길이 ‘뉴스’가 되지 못하는지 캠프는 한 번 쯤 고민하고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자료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권영길의 핵심 키워드는 ‘진보대연합’ – 새로운 대선 구도와 판짜기

    이렇듯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권 후보의 약점에 대해 권 캠프 쪽은 공세적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우유부단의 리더십은 이 시대의 갈등을 치유하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삼수론과 나이는 노련함과 연륜으로, 느린 행보는 본선 승리를 위한 권영길의 시간표로 대치시킨다.

    권 후보가 이번에 ‘진보대연합을 통한 진보적 정권 교체를 달성 하는 것’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권 후보는 기자 간담회를 할 때마다 매번 ‘진보대연합’을 강조하며, 선언적 의미를 뛰어넘는 실질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겠노라고 강조했다.

    즉, 진보대연합의 판을 성공시키는 것이 이번 대선에 나서는 권영길의 역할이자 시대적 명분이라는 것이다. 권 캠프의 한 관계자는 “공약이나 정책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진보대연합’인데, 이에 따른 권 후보의 행보나 결과가 쉽게 가시화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에게 가장 절실한 건 위기를 돌파 할 새로운 정치판의 구도와 전망”이라면서 “이번에 권 의원이 나온 것도 그러한 판을 구성하고 짤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권 후보 특유의 ‘신중한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하는 입장이다. 즉, 진보대연합을 이뤄내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이는 권 후보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과 당의 위기론에 대해 상황 인식은 같이하지만, 그에 따른 해법으로 반대의 리더십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또 권 후보의 편안한 이미지가 주는 익숙함에 대해 캠프 측은 “좌파의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켜주는 자산”이라며 “대중 정치인으로서 오히려 더 강조하고 부각시켜야 할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어 캠프 측은 “구체적인 정책이나 공약에 관해서는 5월 말부터 서서히 공개 할 예정”이라며“당이 합의한 경선 시간표를 어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앞서 선언한 두 후보를 기준으로 권 후보가 무조건 느리다고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 권 캠프 측은 “국민들이 진보에게 원하는 건 신선함이 아니다. 진보 정권도 수권이 가능하다는 저력을 보고 싶어 한다”면서 바로 그 역할의 적임자가 권 후보임을 강조한다.

    즉, 권 후보가 필승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진보대연합’의 성공 여부가 그의 약점을 ‘미덕’으로 승화시킬지 아니면, 도태된 ‘구태’로 내몰지 가늠하게 만드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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