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량주의 노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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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6일 08: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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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이라는 정치기구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모든 정당은 계급정당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계급사회에서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은 특정한 계급을 대변할 수밖에 없으며, 다만 차이는 그 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떠한 계급을 대변하는 가의 문제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급정당/국민정당이라는 구분은 그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실재와는 맞지 않는 대립쌍일 뿐이다.

    왜 개량적 계급정당 노선인가?

    한국 정당제도의 문제는 노동자 계급 혹은 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계급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는 것이었지, 계급정당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기보다는 중산층을 대변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왔고, 계급적 이슈보다는 자유주의 개혁이슈에 전력을 다하여 왔다는데에 있다.

    비록 국민연금 이슈와 결부되었다고는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사학법 재개정에 대해서 농성을 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개혁공조와 2중대 논란도 결국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선정해 놓은 의제인 4대 개혁입법에 의원단과 민주노동당이 전당적으로 당력을 집중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민주노동당의 대표격인 의원단의 이러한 행동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소위 개혁의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집착이 단순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이라고 보면 이는 피상적인 것이다.

    국민들에 의하여 파산된 자유주의개혁 노선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의 거의 전체라고 할 수 있는 핵심간부들은 누구보다도 뿌리 깊게 공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개혁주의자들에 대한 동류의식은 거의 놀랄만한 수준이다. 의원단의 점잖고 모범적인 활동의 배경에는 계급적 이해관계에 대한 각성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단(대표 권영길)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40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국민연금-사학법 밀실야합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계급적 이해관계에 대한 각성의 부재

    사실 이 부분은 믿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한국 민중운동의 리더들이 민주노동당의 지도부가 되고 의원단이 되었는데, 이들이 계급적 이해관계를 모른다고 평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의 경력 때문에 한국사회의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민주노동당이 총선 이후 걸어온 노선은 계급정당 노선과는 관련이 없다. 이것에 대해서 민족주의 성향의 당내 다수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더욱 놀랄만한 것은 당내 좌파들조차 그 행태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노선이 급진주의적이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많은 법안 발의가 보여주는 것은 개혁사안에 대해서 가장 급진적이고 원칙적이라는 것을 그대로 반증하고 있다.

    북한의 핵자위권을 옹호하는 민주노동당 내 상당수 인사들의 주장은 사실 가장 급진적인 민족주의이다. 이 주장은 남북한이라는 두개의 국가가 가지는 국가적 이해관계까지 무시해 버리는, 최고 수준의 근본적, 급진적 민족주의다.

    이와 함께 강령수준이 아니라 선거 국면에서 공약과 유사하게 ‘사회주의’를 제시한 당내 좌파 인사의 주장 또한 사회주의의 내용을 떠나서 가장 급진적인 주장이다. 이는 2002년 사회당의 사회주의 슬로건을 연상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당내 좌파의 급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급진민족주의 내지 급진혁명주의라고 칭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계급적 이해관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계급정당은 혁명정당인가?

    한국 운동진영은 계급정당=혁명정당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혁명을 원하나 그것을 공개적으로 쓰지 못하는 불완전한 정치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계급정당과 혁명정당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노동자계급정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혁명정당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김영환 등이 북을 다녀와서 결성하였다고 하는 ‘민족혁명당’이라는 명칭은 노동자계급정당과 무관한 혁명정당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혁명을 목표로 하지 못하는 노동자계급정당이 혁명을 목표로 한 노동자계급정당보다 일반적임을 현실은 보여준다. 유럽 사민주의 체제는 쉐보르스키의 딜레마(사회주의 정당이 노동자계급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면 선거에서 다수가 될 수 없고, 수의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대중정당을 표방해야되는 모순-편집자)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으로 최고의 호황과 안정을 이룩했다.

    유럽 사민주의체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흔들리긴 했지만, 후쿠야마의 이야기처럼 ‘역사의 종말’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90년대 이후 유럽의 정치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틱하게 축소된 복지국가는 거의 없었으며, 조세부담률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좌파정당은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제3의 길과 같이 일부 변형된 노선을 취하기는 했지만, 세계화에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덜 조직화된 계층이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지지로 다시 정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1991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유럽공동체 정상들이 모여 단일통화 사용 등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높여 유럽연합의 출범을 합의-편집자)에 대해 급진좌파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조지 소로스의 공격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중앙은행이 공동 방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환율조정체계(ERM)가 붕괴된 사건은 유럽의 좌파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외환위기라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하여 다수의 좌파정당은 유럽통합에 찬성하였다.

    국민정당 노선으로 이야기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년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노선 전환을 주내용으로 함-편집자)은 혁명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대신 그들은 케인즈주의를 통한 경제조절을 택했으며, 자본가의 더러운 일을 대행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어찌되었던 이들이 이룬 성과는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때 각광을 받았던 사파티스타의 마르코스나 브라질의 노동자당의 룰라, 현재 한국에서 스타가 된 5공화국 운동의 차베스 등은 그 사회에서는 급진주의자일 수는 있지만, 그들 나라가 인민들의 기초적 경제적 삶의 여건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서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이룬 성과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복지는 빈곤의 평등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2002년도 무상의료를 주장했을 때, 신선해 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린 것은 최소한 현재와 같은 의료수준을 누리면서 무상으로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좌파들이 알아야 할 것은 복지는 빈곤의 평등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에서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베네주엘라 열풍은 좌파들이 여전히 빈곤의 평등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기나 가스, 수도의 보급 및 훈련된 의료인력의 수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사회와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 쿠바에서 베네수엘라에 의사를 빌려주었다는 일화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 우호정신에도 불구하고 베네주엘라와 쿠바가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

    하나는 의사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석유가 많아도 무상의료는 공염불이라는 것이며, 두 번째는 덕분에 쿠바에 의사가 줄어 쿠바인들의 불만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의사의 부족과 의료기술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쿠바와 베네주엘라의 예는 한국에서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계급정당 노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혁명정당이 계급정당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혁명정당은 그 속성 상 정당의 외관을 띠더라도 비밀결사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볼세비키와 멘세비키의 논쟁에서 볼세비키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구성원들은 러시아에서는 무력이 수반된 혁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을 하려는 정당이 아무나 당원으로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계급정당은 필연적으로 대중정당일 수 밖에 없고, 혁명정당은 필연적으로 비밀결사일 수 밖에 없다. 레닌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서 노동자 출신은 소수에 불과했다.

    계급정당은 대중정당이고 혁명정당은 비밀결사

    거꾸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비중은 혁명정당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대중정당이어야 계급정당일 수 있는 것은 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그 정당에 자신의 계급의 이해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애초의 한국의 운동이 지식인들의 추동에 의하여 출발하였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 구성이 계급정당이나 대중정당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고, 민주노동당이 성공한 사업들을 보면 대부분 계급적이고 대중적 이슈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 예외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사업이 실패한 것은 내용이나 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직접적 이해 당사자들이 민주노총에 속박되어 있는 민주노동당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이 큰 이유가운데 하나다. 

    계급적이고 대중적으로 농민의 이해를 가장 잘 관철시킨 사람은 강기갑 의원이다. 민주노동당의 초심자인 그는 당내에 들어와 자신의 역할을 누구보다도 충실히 이행했다. 비타협적으로 농민의 이해관계를 추구했으며, 당내 인사들과의 갈등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 의도와 별개로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바를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 강 의원이다. 우파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기갑의 진정성은 그것이 가공의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계급정당 노선에 있어서 배워야할 부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개량주의 노선의 필요성

    쉐보르스키 딜레마는 사실 계급정당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의 딜레마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 때문에 그 딜레마의 양상도 매우 달라졌다.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계급정당에게 쉐보르스키 딜레마는 사치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오히려 조직된 노동자들보다 훨씬 취약한 노동자 및 소수자 집단을 낳았고, 이들을 성공적으로 포괄한 좌파정당은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개량주의 노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필요하다.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각성해나가는 과정은 ‘돈오돈수’가 아니다. 계급적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돈오점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돈오점수를 이루기 위해서는 계급적 이해관계로 뭉친 정당의 눈에 보이는 개량이 필요하다.

    ‘최종적 비전이 무엇인가’의 문제도 필요하지만, 계급의 성장기에는 이것이 계급적 이해관계를 보다 더 다지고 각성시킬 수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 성장의 비밀은 알게 모르게 이러한 개량주의 노선을 통해 성과를 충족시켜온 돈오점수의 결과이다.

    상가임대차와 학교급식 등은 돈오점수의 대표적 예이며, 원내진출 이후에는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정도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돈오점수로서 대중을 각성시키지 못한 데에 있다. 이 결과 계급적 이해관계를 눈에 보이게 하고 계급적 이해관계의 역전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정책은 계급적으로, 방법은 개량적으로

    개량주의 계급정당의 상은 민주노동당 창당 시의 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은 아닐지라도 민주노동당의 구조와 활동은 여기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정당을 표방하면서도 타 계급의 이해관계에 보다 더 관심이 있는 급진주의 정당의 모습 – 장기적으로 존속 불가능한 – 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계급 전체 내지 연대관계에 있는 계층의 이해관계보다는 자유주의 개혁 이슈에 대해서 공감하는 민주노동당은 사실 노동자계급 및 이에 대해서 연대관계에 있는 계급을 위한 정당이라기 보다는 김대중이 집권하면서 없어져 버린 평민당의 계보를 잇는 정당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평민당을 넘어서려면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은 계급적으로, 방법과 정서는 개량적으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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