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에 집 주변을 넋놓고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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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5일 08: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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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청 자료가 보여주는 현실은 냉혹하다. 전국 가계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 아동 빈곤율은 8.8%. 아동 10명중 1명꼴로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 부모 가정 빈곤율은 더 높아져서 12.7%, 65세 이상 노인과 18세 미만 아동으로 구성된 조손(祖孫) 가정은 48.5%에 이른다.

    설문조사 결과 부모의 빈곤으로 결식 아동의 낙인이 찍히고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 아동의 97%에 이른다. 참으로 슬픈 통계다.

    슬픈 통계, 가난한 아이들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는 현재 중앙당 환경위원회와 함께 지역에서 빈곤아동 영양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학교의 경우,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 공문을 보내서 진행됐고, 마포구위원회는 지역 아동센터를 직접 방문해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예전에 공부방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현재 대부분 저소득층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함께 지내는 곳이다. 이제까지 모두 네 곳의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서, 교사와 센터장을 만났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밀조밀하게 모여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려가는 공간.

    설문조사를 통해 중앙당, 의원실과 협조해 반드시 빈곤아동에 대한 개선안을 내겠다고 말은 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설문조사는 하는데,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라는 씁쓸한 답변이 돌아와 나를 비롯한 상근활동가를 무안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사무국장의 제안

    어느 날 사무국장이 제안을 한다. “제가 희망나눔에 알아보니까 아이들이 보건소에 가서 단체로 건강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보겠다고 하는데,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때요.”

    희망나눔은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와 지역 시민단체와 주민, 그리고 지역 내 의사들이 함께 모여서 무료건강검진 등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현장에서 조사된 사안을 가지고, 지역 단체들과 협력해 관을 이용한 사업을 펼친다면 대단히 의미가 깊을 거라 판단하고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는 답변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당 버스를 빌려서, 아이들을 보건소까지 데리고 가는 것. ‘그래 이왕이면 당 버스가 가야 한다.’ 당 버스를 운행하는 최영기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동안 마포지역에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아, 그럼 그런 일에 당 버스가 가야지. 무조건 갈 테니 염려 마.” 최 국장의 시원한 답변이 내 기분을 한껏 즐겁게 만들어준다. “선배님, 아이들하고 약속한 거니까, 꼭 오셔야 합니다.” 다짐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이 나서 해보는 소리다.

       
      ▲ 무료건강검진을 실시하던 날 마포구청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더욱 가슴 시리다.
     

    보건소 아이들 무료 건강검진해 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들으며 보무도 당당하게 마포구청 내에 있는 보건소에 들어가는 당 버스. 보건소에 들어가 담당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 건강검진을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보건소에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앞으로도 협조 하겠다”며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방문했던 아동센터에 있는 아이들의 수는 적게 잡아도 200명 이상은 된다. 오늘은 10여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역사업을 펼칠 때, 다시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동 전문가들은 최저 생계비 이하 빈곤아동이 100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의 먹거리 문제는 특히 심각한 상황이다. 사람은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결식아동 급식지원은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보건복지부의 아동급식 지원사업과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부의 학교급식비 지원 사업으로 구분된다. 쉽게 말해서 학기 중 점심은 교육부에서 아침, 저녁과 방학 중에는 보건복지부가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을 담당한다는 얘기.

    이수정 민주노동당 서울시 의원의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보면,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관내 학교의 학교급식비 지원학생은 초중고생 71만1,230명 중 9만215명으로 전체 학생의 6.2%에 달한다. 전년도와 비교해 보면 약 1만4,000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아침은 먹는지, 저녁은 먹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같은 해 9월, 아침, 저녁을 서울시와 자치구로부터 지원받는 결식아동은 2만2,577명으로 작년 2만9,643명에 비해 오히려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은 9만215명을 지원하고, 지자체는 2만2천577명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나지 않는가. 지자체 따로, 교육청 따로 행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빈곤아동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등록된 아동의 4분의 1만 지자체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 그러면 나머지 4분의3에 해당하는 빈곤아동은? 아무도 모른다. 아침은 먹는지, 저녁은 먹는지 알 수 없고, 방치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라는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누가 지역에서 숨죽이고 있는 빈곤아동을 밝혀내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물론 빈곤아동에 대해, 단순히 먹거리 문제로만 접근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박경양 전국지역아동센터 공부방협의회 공동대표도 "결식아동의 문제는 ‘빵’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지원과 함께 가족지원, 학교적응지원 등 복합적 지원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나 빈곤아동에 대한 급식지원 실태를 통해, 정부와 지자체의 빈곤아동 정책에 대해 시사해 주는 바는 분명히 있다.

    봄날은 아름답고, 현실은 냉혹하고

    돌이켜 보면, 아이들과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가 봄 소풍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순전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었다. 지역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자족이 컸겠지. 게다가 당 버스까지 왔으니 얼마나 멋져 보였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보건소에서 조사된 아이들의 건강 수치를 보고도 소풍처럼 느껴졌을까.

    한 소설책 말미, 한 문장을 보고 요즘도 늦은 시간 달빛을 희롱하며 집 주위를 넋 놓고 산책하게 됐다. “우리에게 다시 골목 가득 꽃향기를 담고 봄밤이 당도했으니!”

    아침에도 낮에도, 봄날에 취해서 살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허나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마냥 찬탄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언제쯤이 되어야 우리에게 봄밤의 서정은 평등해 질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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