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보수는 분열로 망하진 않는다
By
    2007년 05월 14일 05:37 오후

Print Friendly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이 있다. 한국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진보야 그 동안 부패할 기회조차 없기도 했지만, 보수의 부패 역시 망할 정도의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보수의 부패는 항상 결정적인 국면에서 자신의 부패문제를 정치혁신, 정치개혁 이름으로 ‘타자화’하여 위기를 넘어서는 나름대로의 자기조정력을 과시해 왔던 것이다.

보수 정당도 분열 잘 한다

‘분열’ 역시 보수정치에서 그리 생소한 말은 아니다. 4.19혁명 이후 치러진 7.29총선에서 야당 없는 여당천국을 달성했던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집안싸움만 하다가 쿠데타세력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 87년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  
 

군부세력과의 싸움에서 이들은 선거 국면을 제외하면, 언제나 한 지붕 두세 가족이었다. 87년의 양김 분열, 97년의 이인제의 경선 불복종은 곧바로 상대후보의 승리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보수의 분열은 역사적으로 ‘파국’으로 귀결되었다기보다는 이합집산을 통한 정치적 재배열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수정치의 정치적 기반을 유동적이지만, 견고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분열이 보수정치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보스정당체제에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한나라당의 내분사태와 열린우리당의 이전투구를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에 대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사고해 볼 수도 있겠다.

즉 ‘민주화 이후’ 일정한 제도적 민주주의에 확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약해져만 가고 있는 정당정치가 제도화와 리더십(지역이 아닌 비전을 통한)을 통해 복원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약한 정당체제와 강한 정당

한나라당은 강한 정당이다. 30%대의 고정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당이다. 그래서 이명박, 박근혜 그 누구도 감히 탈당을 통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공언할 수 없다. 현재의 내분사태는 한나라당이라는 강한 정치적 울타리 안에서 서로 ‘버티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명분이 ‘경선규칙’이라는 당내 제도화 문제에 있을 뿐이다.

‘유능한 CEO’ 이명박과 ‘당을 위기에서 구한’ 박근혜가 경선규칙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이른바 당심과 민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남보수층의 강력한 지지기반 위에 형성된 박근혜의 리더십과 개혁 블럭에서 이탈한 여권의 지지층을 일부 흡수하면서 형성된 이명박의 리더십간의 대결은, 그래서 강한 정당 내의 ‘약속된 미래’를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이자 보수 우위의 약한 정당체제가 초래한 인물 중심의 이전투구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강한 정당이지만, 보수 우위의 정당체제 측면에서는 언제나 분열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이번 한나라당의 내분사태의 원인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심과 민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경쟁자인 열린우리당의 ‘산개사태’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양대 보수정당은 서로 거울의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5월 4일 오후 강재섭 대표최고위원, 김형오 원내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염창동 한나라당사 대표최고위원실에서 4자 회동을 가졌다. (사진=한나라당 홈페이지)  
 

약한 정당체제와 약한 정당

열린우리당은 애초에 약한 정당이었다. 이념과 정책, 혹은 지역적 이해관계의 결속을 통해 형성된 정당이 아니라, ‘탄핵’이라는 외부의 조건에 의해 형성된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핵=반민주주의’라는 외부의 조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되는 과정과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실패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 ‘통합’을 놓고 벌이는 그들의 싸움은 점점 ‘산개’하는 방향으로 좌표를 잡아가고 있고, 당의 전직 지도부들과 대통령의 유례없는 감정싸움에 약한 정당의 불투명한 미래가 노출되어 있다.

또한 통합의 모티브로 제기되고 있는 ‘인물 중심의 정계개편론’ 역시 리더십과 인물 부재의 현상을 반증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약한 정당을 더욱 약하게 만드는 ‘정당정치의 종식’ 선언과 다름없는 행태인 것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명

이번 한나라당의 내분사태는 15일 전국상임위원회에 이른바 ‘경선중재안’에 상정을 놓고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이미 중재안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한 강재섭 대표의 ‘경선안’은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엉뚱하게도 ‘정계은퇴’의 배수진을 친 그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일하게 승자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명박도, 박근혜도 아닌 강재섭이다.

극적인 타협이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지지도의 진원지가 상이한 두 대선주자의 처지를 놓고 본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이른바 범여권의 미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보수정치의 난도질 싸움은 ‘정당정치의 복원’이라는 ‘정치개혁’의 과제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