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승부한 조선시대 매니아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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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2일 09: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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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역사 속에 감춰진 인물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얼마 전 크게 유행했던 『미쳐야 산다』와 거의 유사한 책인듯 싶다. 그 책을 읽지 못해서 “이번에는…” 하고 뽑아들었는데, 나름대로 곤혹스럽다.

    기존 역사에서 무시됐던 부분들을 빈약한 사료와 문헌들을 통해 재구성, 재조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높이 살만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탓하겠는가. 다만 고민은 『조선의 프로페셔널』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 치열한 열정의 삶을 산 10인의 삶을 분량을 안배해 고루 소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이겠지만 고민 끝에 나는 ‘내 스타일’을 고집하고자 한다.

       
      ▲『조선의 프로페셔널』 안대희 지음, 휴머니스트  
     

    책 앞부분에 실린 ‘지은이의 말’(p4~13)을 이른바 6하원칙(who, what, when, where, why, how)에 따라 재구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달리 말하면 인용만으로 소개하는 것! ‘프로’를 말하는 데 ‘프로 흉내’는 내야하지 않겠는가!

    언제 / 어디서 : 200년 전 한국사회. 18세기 조선 후기. 조선시대는 신분의 제약이 강하고, 의식이나 지향이 획일적이며 직업의 귀천도 분명했습니다. 그 시대 주류는 누가 뭐라 해도 선비이고, 그들의 목표는 과거급제해서 높은 벼슬을 하거나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 무엇을 : 지금까지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열 개 분야의 전문가 열 사람. 우연의 일치인지 이들 인물들 가운데 지배집단에 속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번듯하게 세속적인 성공을 한 사람은 겨우 정철조 하나뿐입니다. 중인이나 평민, 천민이나 기생도 있습니다.

    그들의 직업을 보면 여행가, 프로 기사, 춤꾼, 만능 조각가, 책장수, 원예가, 천민 시인, 기술자 등등 역사 교과서는커녕 자유롭게 서술한 역사책에서도 한 줄 소개되지 않은 분야의 사람입니다.

    전라도 보성의 이름 없는 평민 소년 정운창은 바둑을 취미로 두지 않았습니다. 조선 제일의 국수가 되기 위해 10년을 오로지 바둑만을 두었습니다. 정란은 비록 조선 팔도의 산천을 모두 올랐지만 그의 목표는 실은 중국과 일본 이상까지였습니다.

    남의 집 종인 이단전은 신분에 걸맞지 않게 시인이 되고자 밤새우기를 십 년간이나 했고, 서양서라면 무조건 모으기 위해 정철조는 당파가 다른 정승 판서의 집이라도 반드시 선을 넣어 책을 빼냈습니다. 유박은 원예가의 길을 걷기 위해 황해도 배천군 금곡을 선택하여 이십 년 동안 화원을 경영했고, 거기서 쌓은 전문지식과 감상의 안목을 바탕으로 『화암수록』이란 전문서를 지었습니다.

    최천약은 당시 더 선진적이었던 중국 기술자의 조각 솜씨를 보고선 나보다 나은 줄을 모르겠다며 “칼을 잡으면 무슨 물건이든지 그대로 새기지 못하는 것이 없다”며 조각 솜씨를 자부했습니다. 책장수 조신선은 “천하의 책이란 책은 모두 내 책이지요. 책을 아는 천하 사람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게요”라며 자부했습니다.

    천하의 명기(名妓) 경상도 밀양의 기생 운심. 화가 최북은 자신의 뜻을 꺾으려 하자 아예 스스로 눈을 찔러버렸고, 음악가 김성기는 하기 싫은 연주를 하느니 아예 거문고를 부숴버렸습니다. 자부심과 자의식, 치열함과 열정의 소산이지요.

    어떻게 / 왜 : 이들은 모두 벽(癖)과 치(痴)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벽과 치만으로 이들의 삶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마니아 또는 폐인(廢人) 역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전단계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마니아의 세계에서 한 단계 비약하여 그 분야 최고가 되기를 꿈꾸었고 결국은 성취했습니다. 지금은 프로정신이 금전으로 바로 계산되지만, 당시에는 금전보다 역사와의 승부였습니다.

    그들은 목숨과도 바꿀 만한 매력적인 자기 분야를 개척하여 최고가 되기 위해서 조건 없이 한 가지 일에 도전한 사람들입니다. 영혼을 불어넣어 자기 삶을 완성한 아름다운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 『조선의 프로페셔널』은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책이다. 그 까닭은 역사상의 문헌 자료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자료가 빈약함으로 인해 발굴의 의미는 도드라지지만 바로 그 자료의 빈약으로 말미암아 인물들의 삶에 대한 입체적이고도 구체적인 면모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만 말하면, 삶은 기록되어진 삶일 뿐이다. 스스로 쓰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쓰게끔 만들어야만 한다. 그 능동과 수동 사이에, 삶은 있거나 혹은 없다.

       
      ▲ 최북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화제는 소동파의 “빈산에는 아무도 없고, 물은 흐르고 꽃이 피어있다(空山無人 水流花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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