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비정규직 조직 '전대미문' 사건?
        2007년 05월 12일 05: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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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이 당원을 조직하고 노조가 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노조가 당원을 조직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정당이 노동조합원을 조직하는 일을 좀처럼 찾기 힘든 일이다.

    지난 11일 저녁 월드컵경기장에 위치한 홈에버 앞에서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월드컵분회 설립준비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 문화제에는 80여 명의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모였다. 이랜드의 홈에버 월드컵점 비정규직 노동자 60여 명이 지난 한 달 사이 노조에 집단 가입을 해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월드컵분회 설립준비위 촛불문화제’에서 민중가수 이정석씨가 ‘단결투쟁가 배우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열린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월드컵분회 설립준비위 촛불문화제’는 민주노동당 지역 조직이 조합원을 조직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는 물론 정당만의 노력이 아닌 노조와의 협력으로 이룬 결과이다. 지난 해 10월부터 현재까지 장장 8개월가량 민주노동당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지역위원회가 홈에버 월드컵점에 매주 찾아가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선전했고 노조가입을 독려했다.

    이 자리에서 60여 명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가입 원서가 이랜드 노조위원장에게 전달되었다. 이를 지켜본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 지역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마치 자기들이 가입원서를 받는 양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해삼 민주노동당 비정규운동본부장은 "굉장히 기쁘다"며 "이 사건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도는 길놀이로 시작해서 홈에버 월드컵분회설립준비위 경과보고, 노래 공연으로 이어졌다. 새 조합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결투쟁가’를 배우는 시간은 마치 공부시간처럼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분위기였다.

    이날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조합원 가입원서 전달식이었다. 노조 가입자 대표로 김경미 씨가 나서서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에게 조합원 가입원서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이랜드일반노조 월드컵홈에버 분회 설립 인증서’로 답했다.

       
    ▲ 김경욱 위원장이 새 조합원인 김경미씨에게 ‘이랜드일반노조 월드컵홈에버 분회 설립 인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의 연대 발언 등이 이어졌으며, 불꽃과 함께 ‘단결투쟁가’를 마지막으로 2시간이 넘는 촛불 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홈에버는 까르푸의 새 이름이다.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상호를 홈에버로 바꿨다. 그 후 이랜드노동조합와 까르푸노동조합이 지난 해 가을부터 통합 논의를 시작해 그 해 12월 통합규약을 제정함으로써 ‘이랜드일반노동조합’을 건설했다.

    4개 지역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지난 해 10월부터 현재까지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매주 선전전을 펼치거나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그들은 홈에버 고객에게 이랜드의 부당한 행태를 고발하면서 직원들에게는 비정규직 고용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노조 가입을 권유했다.

    당원들의 선전활동은 전국 34곳에 산재한 대형마트의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 하는 이랜드일반노조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유상헌 이랜드일반노조 조직국장은 “조직사업을 해야 하는데 사람은 없었다”며 “상근자, 전임자의 수는 몇 안 되어 여기저기 터지는 해고 사태에 대응하다 보면 조직사업을 하기가 힘에 부친다”고 털어놓는다.

    마포에 위치해 있고 오래 전부터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던 이랜드노조는 당의 지역조직과 이 고민을 나누었다. 유 국장은 “지역의 민주노동당이 이랜드 자본 규탄, 비정규직 조직화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지난 해 민주노동당 지역조직에 전달했다.

    홍순광 이랜드일반노조지원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당시 마포구위원회 노동위원장)은 “지난해 9월 경 이랜드노조가 단협 해지를 당해 파업 중이었는데 월드컵점 앞에서 1인 시위를 요구했다. 우리가 이를 받아들여 1인 시위를 매주 전개한 게 계기가 되어 노조에서는 조직사업을 도와달라고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 요청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노동위원회에서 다루었고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지역위원회의 노동위원회가 이랜드일반노조와 함께 ‘이랜드일반노조지원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지난 해 10월부터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선전전과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랜드일반노조지원대책위’는 지난 2월에 노동위원회가 아닌 지역위원회로 구성되어 그 지위를 높였다.

    ‘이랜드일반노조지원대책위’는 지난 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는 매주 선전전과 촛불문화제를 번갈아가며 진행했고, 올해 2, 3월에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4월에는 집중적인 선전전을 펼쳤고 4월 23일부터 1주일간은 매일 하기도 했다. 그 동안 펴낸 선전지는 5종에 이른다. 이경옥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은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100명을 조직해 5월에 분회를 건설하자고 매일 알려냈다.”고 말한다.

    유상헌 조직국장은 “최근 한 달 간 60여명이 집단 가입했다”고 밝혔다. 100명 가입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5명이었던 조합원 수가 열 배 이상 늘어 이제 분회설립준비위원회까지 구성하게 되었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지난 2월 초에 개별 가입한 조합원이 팀장 면담 후 다음날 노조를 탈퇴했다”며 집단 가입의 필요성과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한 부서에서만 46명이 가입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 "비정규직 탄압하는 박성수는 회계하라"를 외치고 있는 김경욱 노조위원장.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은 인원감축 등으로 벌어들인 돈 130억을 교회에 헌납한 것을 알려졌다. (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이번에 새로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N씨는 “연차가 열 몇 개 씩 밀려 있고, 생리 휴가까지 하면 26개까지 밀려 있기도 하다. 작년 것도 못 썼다. 연차도 개인이 원할 때 사용하지 못한다”며 홈에버 노동조건의 현실을 고발했다.

    또 다른 새 조합원 김경미 씨는 “계산원을 용역으로 전환하는 것도 불만이지만 계산원이 너무 적어서 힘들다. 한 번에 5~6시간을 휴식 없이 일한다. 5~6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일하면 친절할 수 없는데 사측에서는 고객으로 가장해 계산원의 친절도를 모니터링하며 위협한다”며 홈에버 노동조건이 너무나 열악해 “계산원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게 노조 가입의 동기라고 말한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비정규직 악법 시행을 앞두고 있고 이랜드의 해고 행위가 맞물리면서 이 분들이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한 것”이라며 최근 집단 가입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이랜드의 홈에버는 30억 원의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서 최소 600여 명을 감원했다. 결국 주원인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이다.

    그렇다면 과연 60여 명의 노조 집단 가입에 민주노동당의 활동은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이랜드일반노조지원대책위’의 선전활동에서 노조와 당은 역할을 달리했다. 노조의 전임활동가는 매장 안에서 직원들을 만났고 선전전에 참여한 당원들은 계산대 밖에서 주로 고객들을 상대했다.

    이들은 몸벽보에 피켓, 선전물을 한아름 안고 평일에는 홈에버 월드컵점으로 퇴근해서 저녁 7시 30분부터 9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매장 손님들에게 선전지를 나누어주며 비정규직 탄압하는 이랜드 회장에게 항의전화를 부탁하거나 매장 직원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은 고객들에게 이랜드의 실체를 알렸다. 그들은 회사에 대해 할 말을 할 수 있다. 이랜드 자본의 불법행위, 직원을 탄압하는 짓을 시민들에게 말할 수 있다”며 "회사의 문제를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노조를 대신해 민주노동당이 이랜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고 말한다.

    이 부위원장은 “홈에버는 유통업 사업장이다. 노조와 회사 사이에 고객이 끼어있다. 소비자와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외부에서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선전을 했고, 노조는 안에서 직원들을 조직했다”고 밝혔다.

    이 부위원장은 “(지역 주민들이) 밖에서도 도와주고 있다. 해고되면 지역에서도 같이 싸울 것이다. 노조를 선택하라”고 직원들에게 조합 가입을 권했다고 한다.

    이 부위원장은 “직원들의 처음 반응은 냉랭했다”고 말했다. 강양미 민주노동당 서대문구위원회 노동위원도 “처음에는 신경도 안 쓰고 뭘 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사업 초기를 되돌아봤다.

    김경미 조합원은 당원들을 볼 때 “처음에는 영업을 방해하려는 건 아닐까. 저들이 저러는 게 우리한테 불리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계속 접하면서 그게 아니구나, 비정규직 문제 같은 중요한 걸 알리려고 왔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유상헌 사무국장은 “지속적으로 하니까 성과가 있었다”며 장장 8개월에 동안 변함없이 선전전을 한 게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강양미 노동위원은 “4월 23일부터 1주일간 매일매일 선전전을 했을 때 직원들이 ‘오늘이 3일째죠?’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1층에서만 선전전 하다가 하루는 지하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남자가 하다가 웬일로 여자가 왔네’라고도 했다. 우리는 직원 얼굴을 몰라도 직원들은 우리 얼굴을 안다”며 수개 월 간의 지속적인 활동의 효과를 설명했다.

    강 위원은 기억에 남는 사람을 소개했다. “선한 인상에 카트를 끌고 다니며 청소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며 우리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직원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니 읽어보라며 홍보 전단을 드렸는데 그걸 읽어 보셨는지 다음부터 서로 인사하게 되었다.”

    그 직원은 4월 말 계약해지라 지원대책위와 상담까지 했다. 그러나 강 위원은 5월부터는 그 아저씨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강 위원은 “해고 된 듯하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랜드일반노조와 민주노동당 4개 지역위원회의 노력으로 홈에버 월드컵점의 노조 조직율은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이랜드의 해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랜드일반노조지원대책위’는 수개 월 간 계산대 앞에서 선전전을 했지만 홈에버 측은 올 해 초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못 막아서 선선전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고객 눈을 의식해 갈등을 피한 듯하다”고 했다.

    이 부위원장은 또 “회사는 신규 조합원이 이 정도로 조직될지 눈치 채지 못했다. 아마도 우리가 선동을 했다면 회사는 제지를 했을 것”이라며 유연한 조직 방법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평했다. “직원이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면 나와 버리고 관심을 보이면 다정하게 다가가서 대화를 했다”고 조직 방법을 소개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선전 활동이 6개월 간 지속되자 4월부터는 홈에버 회사쪽의 반응이 달라졌다. 강양미 노동위원은 “4월부터는 안전 요원들이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이전에는 나가라고도 안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더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회사 측의 이러한 변화에 대한 강 노동위원의 반응은 뻔뻔(?)했다. “당신 나 알지? 매번 여기서 했으니 여기는 내 자리다.” 하지만 안전요원이 선전 활동을 하는 당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억지로 이들을 쫓아낸 적은 없다.

    4월은 대책위가 집중적으로 선전 활동을 펼친 달이기도 하고 홈에버 월드컵점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조에 가입을 하기 시작한 달이기도 하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홈에버 월드컵점에는 근속연수가 3년 이상 된 직원이 60~70명 정도 된다. 그래서 이번 노조 가입자 수가 70~80명까지는 가능했으나 일부가 회사의 회유로 갈등을 하고 있어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며 최근 60여 명에 그친 노조 가입이 회사의 방해 때문이라고 보았다.

       
    ▲ 정경섭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회사 측의 노조 조직을 방해하고 있는 가운데 이랜드는 6월에 노사 간 임단협을 한다.

    이랜드는 현재 계산원과 같이 직접 고용한 계약직을 외주화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 해 약 1조 원 가량의 빚을 내서 까르푸를 인수하는 등 빚이 많다.

    그럼에도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82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회사 경영의 어려움을 고용인원 감축, 즉 해고와 외주화 등으로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이 문제는 6월 이랜드 임단협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노사 간 갈등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이랜드일반노조는 6월부터 모든 걸 걸고 싸우겠다. 이랜드 자본이 해고 노동자를 복직시키지 않으면 이랜드노조가 이랜드 자본을 추방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로 6월 임단협에 임할 것을 예고했다.

    이랜드일반노조는 대책위와 함께 노동조합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유상헌 조직국장은 “노동조합교육을 다음 주부터 시작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의미, 노조의 역할, 노동관계법, 부당노동행위, 비정규법안의 문제 등을 여러 차례 진행할 것”이라고 교육 계획을 밝혔다.

    홈에버 월드컵점은 조합원이 60명 이상이 되어 분회 설립 직전까지 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각 지역위원회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정경섭 마포구위원장은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조합원 앞에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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