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노협 쟁의부장 시절 만난 소녀,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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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1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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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를 읽고 책으로 묶인 연재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 연재할 때는 아무래도 챙겨보지 않는 한 사정에 따라 띄엄띄엄 읽게 된다.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묶여 나오면 떠오르는 감동의 조각에 이끌려 손에 잡는 소설. 그렇더라도 좋은 소설은 감동이 반감되거나 바래지 않고 더욱 진한 울림을 주는 법이다. 『소금꽃나무』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에 실린 글 상당수를 ‘연재’할 때 이미 읽었거나 해당 사건의 현장에 글쓴이와 함께 있었다. 관련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동안 여러 지면에 실렸던 글을 모은 게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읽어도 먹먹하게 가슴이 저려옴은 어쩔 수 없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출간 제의에 대해 글쓴이는 “그따위 게 책으로 만들어 낼 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그따위 걸 책으로 만들어 내자고 나무를 베어 내도 되는 걸까”를 먼저 물었다고 한다. 과연 김진숙다운 반응이다. 그래도 이 책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러다가 한 가지 욕심과 끝내 타협했다. 성찰할 때가 되지 않았나…”(‘책을 내며’) 다시 말해 ‘두렵더라도 나부터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바꾼 덕분이다.

『소금꽃나무』는 이런 책이다. 그 내용을 훑어보는 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글쓴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김진숙… 노조활동가, 노동운동에 관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지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이 범주를 벗어난 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내가 전노협 쟁의부장으로 활동하던 서른 즈음에 대한조선공사(현재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그를 처음 만났다. 나이가 같았지만 커트머리를 한, 영락없이 앳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것은 대학생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여 노동대중과 동화되는 것. 즉 머리로만 하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온몸으로 살아가고 실천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자세와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왔다.

김진숙, 그는 바로 내가 그리는 그 노동자였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통함을 느꼈다. 그는 몸으로, 삶으로 계급의식을 체득하고 현실 속에 실천하고 있었으니까.

그에게도 한 때는 이 사회의 학벌콤플렉스가 지나간 적이 있었다. 중졸 학력의 그는 그대로 대학생이 되고픈, ‘하루도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간절한 꿈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 수 있었다.

‘치를 떨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이유도’, ‘강화도 집에서 부산으로 가출하면서 참고서가 가득한 큰 가방을 질질 끌고 왔던 것도’ 바로 그 열망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꿈은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되고, 학번 없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지속됐다.(‘학번에 대하여’)

몇 년을 벼른 끝에 방송통신고 입학하려 재직증명서 떼러 갔다가 “방통고 나온다고 니 인생에 꽃이 필 거 같나?” 라는 관리자의 비웃음에 좌절했다. 하는 수 없이 근로야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억새풀 야학’이란 이름도, 절실했던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보다는 근기법이나 노조 얘기에 더 열을 올리는 분위기도 그 곳을 미덥지 않게 만들었다. 강학이 건네준 『전태일 평전』도 ‘노동자’라는 제목이 맘에 안 들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소나기가 내려 휴업하던 날, 심심파적으로 그 책을 들추었다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울었다.(‘그 시절의 이력서’)

그는 노동교육 인기강사로 이름이 높다. 신문배달, 우유배달, 봉제공, 버스 안내양, 용접공 등에 이르는 갖가지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이력과 예리한 통찰력에서 배어나오는 울림에 깊이 공명하기 때문이리라. 경북대병원노조 교육을 마치고 난 몇 가지 느낌을 쓴 ‘반성문’에는 그가 어떻게 노동교육에 임하는 지를 엿볼 수 있다.

사실 강의를 통해, 또는 지금까지 써온 글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결, 연대, 투쟁을 호소하는, 어찌 보면 ‘지당한 말씀’들이다. 너무도 많이 들어 이제는 별다른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얘기. 하지만 그는 그 익숙하고, 인이 박힌 낱말에 방금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숨결을 불어넣는 힘을 지녔다.

‘구조조정의 끝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입니다.… 철도, 이랜드, 롯데호텔, 한국항공우주산업, 부산은행, KM&D 등 정규직이 연대한 비정규직 싸움은 다 승리했고, 그 승리는 정규직의 고용까지 담보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들끼리만 싸웠던 한국통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은 다 패배해 결국은 정규직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내몰려야 했습니다.’(‘봄이 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좀 겸연쩍은 얘기긴 하지만 금속노조(연맹) 시절 나는 그와 더불어 ‘여성 명강사’로 쌍벽을 이뤘고, 한 교육과정의 강사로 함께 부름을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현장활동 동지로서의 인연만 지속됐다면 오죽 좋았으랴.

엄혹하기만 했던 노동운동 현실은 유난히 안타까운 죽음으로 점철돼 있다. 박창수, 배달호, 김주익… 그 숱한 열사들의 뜻을 받들고, 영면의 세상으로 보내는 현장에서도 나는 그와 함께였다. 안양에서, 부산역광장에서, 서울시청 광장에서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파는 그의 처연한 추도사를 들으며 나는 흐느꼈다.

   
  ▲ 저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하루나 이틀 뒤에는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에 퍼날라진 추도문을 보고는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책 셋째 마당(‘더 이상 죽이지 마라!’)에 실린 그것을 다시 읽으면서도 눈물이 고인다.

듣는 이도 이렇듯 가슴이 미어지는데 절규하는 본인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박창수의 무덤이 빤히 바라뵈는 곳에 배달호 열사를 묻고 와서 이빨까지 빠지는 듯한 심한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난 언제까지 이런 추모사를 쓰며 살아야 하나….’ 그가 배달호 열사 추모사에 쓴 ‘추신’이다.

『소금꽃나무』에 실린 글이 이처럼 하나 같이 처연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한 때 그가 <연대와 실천>(영남노동연구소 기관지) ‘기자’로서 노동자를 직접 만나서 쓴 인터뷰 기사들(‘거북선을 만드는 사람들’)은 금속노동자 특유의 걸쭉한 해학과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다.

전교조 부산지부 노보에 연재됐을 법한 글을 모은 다섯째 마당(‘손가락을 모아 쥐면 주먹이 된다’)에는 참된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쓴 여느 글과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된다. 또한 여섯째 마당(‘상처’)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파란만장했던 개인사, 어두운 가족사를 파노라마처럼 풀어 놓았다. 이를 통해 강단 있는 진짜노동자 김진숙, 노동자에게 감동을 전하는 김진숙의 인간적 면모를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김진숙은 “그 따위 게 책으로 만들어 낼 만큼 가치가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그저 겸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서문 격인 ‘책을 내며’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에 칼을 그리고 선생한테 얻어맞은 뒤로 일기조차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만 썼고,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아 본 적이 없다. 원고지 쓰는 법은 이렇고, 편지를 쓸 때는 상대방의 안부를 먼저 묻고, 그날의 기후를 쓰고 어쩌고 하는 ‘쓰잘데기’ 없는 지식이 내가 배운 작문교육의 전부다. 그런 내가 지금껏 썼던 글들은 원고지에 쓸 수가 없는 글이었다.” 그래, 손(기술)으로 쓴 글은 참된 글이 아니다. 온몸으로 쓰는 게 참다운 글이다.

이 책의 제목 ‘소금꽃나무’란 다름 아닌 노동자다. ‘잎사귀도 없이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조회 시간에 사람들이 ‘나래비’를 죽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엔 허연 소금꽃이 만개하곤 했다.

내 뒤에 선 누군가는 내 등짝을 또 그렇게 보며 “화이바 똑바로 써라. 안전화 끄내끼 단디 매라. 작업복 단추 매매 채아라.” 그 지엄하신 훈시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을 게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꽃.’ 그렇다. 이 책은 노동자로 시작해 노동자로 끝나는, 진짜노동자가 쓴 노동자 이야기다.

끝으로 조심할 거 하나. 만약 당신이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진저리나는 울림이 버거운 사람이라면 절대 이 책을 읽지 마시라. 핏물을 찍어 한자 한자 써내려간 소쩍새의 피울음으로 그득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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