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천3백만명 밥상의 거대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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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0일 0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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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식’ 하면 엉뚱하게도 어릴 적 강요받았던 반공교육 내용이 생각난다. 북한의 ‘밥공장’ 이야기가 그것이다. 북한은 사랑스러운 가족을 위해서 집에서 밥을 해야 하는 주부까지도 억지로 노동력으로 동원하기 위해서 ‘밥공장’까지 만들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피식 웃음이 나지만, 당시 ‘공장’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상상이 된,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듯 나오는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에 꽤나 충격이었다. 저녁 밥상에 어머니가 직접 뚝배기째 끓여내오는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없다니.

       
      ▲ 북한 초등학생들의 급식 모습.
     

    남북한 미학의 차이 ‘밥공장’과 ‘집단급식’

    그러나 이미 한국사회에서도 ‘밥공장’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고, 이데올로기적 경계의 대상도 아니다. ‘밥공장’이 가정 외에서의 식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면, 한국의 도시가구는 절반 이상을 이미 ‘밥공장’에 의존하고 있다.

    2005년도 도시가계 식품비 지출 중에서 외식 지출비용의 비율은 46.2%로서, 20년전인 1985년의 7.5%의 6배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핵가족화, 독신가정 및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의 사회적 변화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외식산업의 성장에 기인한 것이다.

    ‘밥공장’이라는 이질감 드는 이름은 북한의 산업주의적 미적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한국사회에는 행정주의적 미학을 보여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식품 관련 법령에 의하면 그 이름은 ‘집단급식’이다.

    비영리 목적으로 50인 이상을 대상으로 조리해서 음식을 제공하면 집단급식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리 목적을 운영하는 ‘베니건스’니 ‘TGI’ 외국의 대형외식업체나 대형 뷔페식당 등은 제외된다. 그것은 외식산업의 영역인 셈이다.

    집단급식 시설과 외식 산업

    그렇다면 외식이지만 나름대로 공공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집단급식 시설은 얼마나 될까? 각 광역지자체가 관리하고 있는 집단급식 시설은 거의 3만여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학교급식, 병원급식, 영유아 노인시설급식, 회사내 급식 등을 포함한다. 이 집단급식 시설을 통해서 식사를 하는 인구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이 의무화되면서 1만여개의 학교에서 740만여명의 아이들이 적어도 하루 1끼는 학교에서 먹고 있으며,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150만여명의 아이들도 하루 1끼 이상을 급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병으로 입원하는 환자들 대략 400만여명이 병원급식을 하고 있다(평균 15일). 여기에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회사 4,500여개에서 밥을 먹는 노동자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집단급식 시설로 분류되지 않아서 그 실태파악이 어려운 군인, 전의경, 교도소 수감자들의 급식도 상당한 수준이다.

    우리가 학교급식을 포함하여 이들 집단급식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집단급식을 이용하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선다는 것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 중에서 비교적 정확한 수치가 확인가능한 학교급식, 영유아급식, 병원급식의 대상자를 합해 보면 1,290만명 정도나 된다.

    집단급식과 공공급식

    여기에는 군대, 전의경급식 등과 같은 상당한 수의 급식대상 인구는 제외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인구는 ‘의무교육’, ‘건강보험’ 등으로 대표되듯이 전통적으로 공공으로 분류된 영역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인구의 급식, 즉 먹거리 문제는 국가, 사회의 목적과 관련된 공공 정책의 대상이라는 것이다(먹거리와 관련하여 비만과 아토피 등이 증가하여 공적 지출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상기해도 충분하다/ 5회 허남혁 글 참고).

    이런 공적인 특성을 가진 집단급식을 ‘공공급식’이라고 명명해볼 수 있다. 그리고 ‘공공급식’은 공적인 책임하에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많은 학부모 교사,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펼치고 있는 친환경 무상 학교급식을 위한 운동은 ‘공공급식’ 운동의 대표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영유아보육시설의 급식비를 공적부담으로 전환시켜야 하며, 병원급식의 경우에도 건강보험 이외에 본임이 부담하는 급식비를 완전히 공적으로 흡수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민주노동당의 무상의료정책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과제들은 더욱 많이 발굴될 수 있다.

    한편 ‘공공급식’은 다양한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지렛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구상이 친환경농업 전환과 지역 먹거리 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우선 공공급식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대략 추산해보자.

    공공급식 지출 4조 4천억원

    학교급식에서 식품비로 사용되는 돈은 2조 8천억원이며, 병원급식비로는 5천7억원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군대급식을 위해서 사용되는 1조 1천억원도 더해볼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대략 4조 4천억원의 재원이 공공급식이라고 명명한 영역에서 지출되고 있다. 물론 현재 이 재원의 상당 부분은 학부모들과 같은 민간영역에서 유래하고 있어, 이를 공적 부담으로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다.

    기왕에 지출되고 있는 4조 4천억원을 영국의 사례와 같이 ‘똑똑한 정부조달(Smarter Procurement)’ 정책을 이용하여 지출한다고 상상해보자.

    학교, 보육시설, 병원, 지방자치단체, 군대 등의 공공기관이 공공영역에서 지출하는 먹거리 예산을 이용하여, 친환경 지역농산물을 구매함으로써 유기농업을 육성하고 급식 대상의 건강을 진증시키고 환경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즉 공공급식을 통해 건강 안전, 친환경농업 육성, 지역경제 활성화, 먹거리복지의 실현 등의 다각적 정책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농수산물 유통과정의 개혁이다. 최종소비가에 농수산물 생산비보다 유통비용이 더 많이 차지하는 유통구조의 문제점은 대구의 한 사례에서 드러난다.

       
      ▲ 한 지자체에서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열고있다.
     

    먹거리 유통, 그 놀라운 비생산성

    경북의 한 연구자에 의하면, 대구경북지역에서 근채류의 하나인 감자가 생산되는 양은 그 지역의 소비량의 97.8%로써 거의 자급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대구 도매시장에 들어오는 근채류 중 32%만이 대구경북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었다(손재근, 2006).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것은 멀리 보내고, 먼 곳에서 생산된 것을 들여오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장거리 수송, 보관 등에 따른 신선도 하락과 유통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지만, 그 비용이라도 농산물에 생산된 지역에 남게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대구에서 농민장터 등을 개설하여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 주민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때문이다. 공공급식의 구상은 지역내 생산과 소비를 재구성하고 형성하는 것과 함께, 그것을 연결하는 지역내 유통구조도 함께 형성/재구성해내는 것이다.

    지역 먹거리 체제의 일부를 형성하는 지역내 중소규모 유통회사들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그러한 유통회사는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추진하는 것도 실제 모색하고 있다.

    주목되는 전라남도의 실험

    이런 일은 외국의 사례만이 아니다. 사실 이미 전라남도와 같은 광역지자체도 유사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2003년에 친환경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2004년도 80억원을 들어서 시범사업을 시작하여 2007년도에는 도내 모든 학교에 대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362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학령기 아동의 건강과 도내 친환경농업 육성을 연계하고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친환경 농산물의 공급은 지역 농협을 통하고 있다(많은 지역에서 지역 농협을 친환경 학교급식 식자재 공급, 유통업체로 검토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상당하여 귀추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먹거리 문제를 대선 의제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의 ‘먹거리 안심 프로젝트’에 있어서, 공공급식은 핵심적 수단을 제공한다. 즉 먹거리안전-먹거리복지-친환경농업-지역경제 활성화라는 4가지 영역을 상호 연결시켜주면서 종합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다. 달리 생각해보면 공공급식 운동은 민주노동당의 초기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학교급식조례 운동의 업그레이드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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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로서 먹거리 안심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문제의식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친다.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진보진영에게 새로운 의제제기 혹은 설정 능력이 부재하다는 반복적인 평가가 있어 왔다. 보수정당 혹은 보수언론에 의해서 설정된 의제 틀거리 속에서 갇혀 있어서는 정치적 성공을 얻을 수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먹거리 안심 프로젝트는 이미 제기/설정되어 있던 의제들(식품안전)을 비틀고, 파편화된 의제들(식품안전, 친환경농업, 지역경제 활성화)을 연결시키며 또한 새로운 영역(먹거리 복지)를 발굴하여 종합(지역식량체제)함으로써, 민주노동당만의 새로운 의제를 창출하려는 하는 현재 진행형의 시도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녹색의 색깔을 갖기를 기대했다.

    당원을 비롯한 진보정치를 염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진영들로부터의 반응이 궁금하다. 많은 의견과 토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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