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경제학으로 대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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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09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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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 경제문제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렇다면 경제에 관한 정부의 능력은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노무현 정부는 지난 4년여 재임기간 중 5% 내외의 나름대로 높은 수준의 GDP 성장률을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주택가격과 주가도 매우 높여놓았다. 부동산과 주식 등 실물자산 가격이 폭등함으로써 화폐로 평가된 나라의 부는 크게 증가되었다.

괜찮은 성적표, 훌륭한 실적

   
  ▲ 사진=연합뉴스
 

또한 올 연말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나라도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최근에는 한미 FTA 체결을 포함한 전방위적 FTA 협상을 통해 우리 경제의 개방수준을 대폭 확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만하면 주류 경제학의 시각으로 볼 때 괜찮은 성적표이고, 지구상의 어느 우파정부에 비추어 보더라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실적이다. 사실 국가보안법이나 전시작전권과 같은 경제와 무관한 일부 사안들을 빼면 지금 선진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나라당이 열심히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참여정부가 대신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통령과 야당이 겉으로는 서로 원수로 지내는 것 같았지만 사실 속궁합은 맞았던 것이다. 국민생활의 토대가 되는 경제영역에서 이루어진 참여정부와 한나라당의 결과적인 경제적 정체성의 합치를 감히 2002년 대선 당시에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노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해 대연정을 제안했던 것 역시 속궁합을 폭로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국가보안법이니 사학법이니 어쩌고저쩌고 겉으로 진보적인 척 했지만 노대통령은 취임 이후로 가랑비에 옷이 젖듯 경제분야에서 오른쪽으로의 이동을 계속해왔다. 이제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그간 불편했던 수사학마저 버리고 그 진면목을 만천하에 공개하신 대통령께서는 주가지수를 1,000포인트나 올렸는데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뭘 잘못했냐고 항변하시고 계시다.

본색 드러낸 건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본색을 드러낸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 동안 열심히 반노무현을 외쳐왔던 한국사회의 주류언론과 주류계층이 노무현 정부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나선 것이다. 낯 뜨거운 찬사에 대통령께서도 오랜만에 흡족해하고 계신 것 같다.

괜찮은 경제성적표에다 주류계층과의 경제영역에서의 굳건한 이념적, 정서적 연대감을 확인하는 요즈음, 그 연대관계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하고 있기에 강건한 것으로 보인다. 그까짓 사학법 정도는 잽도 안 되는 잔챙이 부부싸움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추종했던 분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지 모르지만 정의를 세우는 복수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법, 배신자를 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사실 다가오는 대선이라고 2002년하고 크게 다를 것인가. ‘미워도 다시 한 번’, 유치찬란한 영화는 재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도 세상도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이야 어려운 경제이론을 들먹이며 지금 한국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다르다. 지난 재보선을 통해 국민들은 열린 우리당에 대한 사망선고와 더불어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도 동시에 표출하였다.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의 핵심은 노무현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린 것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그 경제적 정체성의 동일성을 간파한 국민들의 정확한 인식이 낳은 결과였다.

노대통령과 한나라당 똑같다는 비밀 알아챈 유권자들

그 동안 한국사회의 주류계층은 북한 핵문제나 국가보안법 또는 전시작전통제권이나 사학법 등과 같은 경제와 무관한 주제를 가지고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낙인찍으며 호들갑을 떨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영역에서 노무현 정부 재임기간 동안 자산가격 폭등의 수혜를 독식했다. 엄청난 불로소득으로 인해 배가 터질 지경인데 좌파정부라고 계속 욕을 해대자니 낯이 간지럽기도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심화된 경제적 양극화 결과에 대해 서민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진심이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해선 안 된다. 그 말은 자신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만족치 않았을 때 쓰는 말이지 노력한 것도 없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정치가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의 말 역시 주류계층의 좌파정부 비난만큼이나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산가격 폭등 현상의 와중에 주류계층이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있는 동안 한국사회의 중간 이하 계층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투자건 투기건 하고 싶어도 할만한 능력이나 기회가 그들에게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 기회는 자금조달 능력이 있는 주류계층에게 독식되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리고 돈이 돈을 버는 재테크 세상에서 노동은 천시될 수밖에 없었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를 상용직과 임시직으로 분류할 때 2004년 현재 임시직의 임금수준은 상용직의 절반에 못 미치는 48.8%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임금수준이 중간층 노동자의 70% 수준에 못 미치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28.2%에 달했다고 한다. 선진국들의 최저임금이 중간층 근로자의 7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선진국 기준으로 볼 때 전체 노동자의 30%에 가까운 계층이 최저임금이하의 저임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분장벽 쌓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한편 2007년 3월 현재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상용직이 843만명, 임시직이 518만명, 일용직이 211만명, 자영업의 무급가족종사자가 138만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용직 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같이 노동시장이 참여정부 들어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가 노동시장정책에서 한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2003년을 기준으로 정부의 노동시장정책 관련 지출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살펴보면 덴마크의 경우 GDP 대비 노동시장정책 지출비중이 4.42%에 이른 반면 한국은 0.3%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이다. 덴마크는 OECD 기준으로 75%에 이르는 높은 고용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자영업종의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시키더라도 62% 수준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 의료, 주거 등 삶의 기본적인 조건을 국가가 사회보장을 통해 뒷받침하고,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국민 각자가 노동을 통해 삶의 행복을 찾는 그런 세상 대신 돈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넘기 어려운 신분장벽을 쌓은 것이 참여정부의 경제적 성과이다.

그래서 재테크를 할 수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우울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존 레논이 부른 ‘이매진’을 배경으로 눈물을 흘리던 노무현을 찍은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나가는 소수 귀족 vs 대다수 평민

경제문제의 핵심은 GDP 성장률이나 자산가격의 상승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잘나가는 소수 엘리트를 배양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 자산가격 상승은 소수의 자산소유자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고통을 야기할 뿐이다.

잘나가는 소수의 귀족과 저임금과 고용불안, 가정해체와 가난의 대물림에 시달리며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 평민으로 구성된 경제 역시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역사적 후퇴일 뿐이다.

정부가 해야 할 경제문제의 핵심과제는 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것, 노동이 그 능력과 숙련에 의한 차이 외의 이유로 차별되지 않도록 하는 것, 교육과 재훈련에 대한 공공투자를 통해 일하는 노동자 개개인의 숙련과 능력을 키워주는 것, 실업상태에 있거나 전직을 원하는 사람들도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고 삶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일들이다.

참여정부는 경제문제의 핵심 지점에서 한 일이 별로 없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참여정부를 무능하다고 심판한 핵심적인 이유이다. 부동산가격을 통제하지 못한 무능함보다 더 큰 무능함이다. 이미 고용창출능력을 상실한 재벌들에게 매달려 투자를 애원하고, 재벌들로 하여금 하청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착취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이 참여정부가 경제영역에서 해온 일인 것이다.

세상이 한꺼번에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 기분전환을 위한 청량제가 아니다.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삶은 참고 견디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필요로 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청량제가 아닌 삶을 견디게 하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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