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의 대책없는 피해의식
        2007년 05월 08일 02: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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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7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란 글에서 ‘좌절’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대개 심각한 실존적 좌절에 직면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본다. 이른바 ‘반성’이라는 것을 한다. 정치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평소 ‘진정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번 글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좌절’ ‘절박’ 절망’ 등 비감을 강조하는 연극적 어휘로 장식된 200자 원고지 45매 분량의 글 가운데 노 대통령 자신에 대한 평가는 단 한 마디도 없다. 도무지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노 대통령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역사의 대의에 기초한 결단"이자 "우리 정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런 열린우리당이 지금 고사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노 대통령이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 당이 오랫동안 흔들리고 표류하더니 이제는 와해 직전의 상황"이라고 한 마디 하고 만다. 질문을 상황에 대한 서술로 대체한 노 대통령은 곧장 정동영, 김근태 두 전직 당의장을 비난하는 데 몰두한다.

    ‘그 당이 오랫동안 흔들리고 표류’한 이유 가운데는 수석당원 신분으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노 대통령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해체론은 어떤 면에서 그 ‘책임’에 대한 추궁의 결과다. ‘오답’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노 대통령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 두 전직 의장을 난타하며 한 얘기는 결국 이들이 제시한 답이 ‘오답’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오답’을 지적한 노 대통령은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표류’한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센 정치인인 노 대통령은 여전히 상황의 피해자로만 묘사된다. 노 대통령의 이 대책없는 피해의식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노무현이즘’에 동화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좌절을 말하고 있지만 그런 좌절(이 좌절감이 진정이라면)된 상황을 불러온 가장 큰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 글에서 노 대통령이 또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지역주의 극복’ ‘원칙’ ‘통합’ 따위다. 정치인 노무현의 ‘상징자본’이 된 어휘들이 중요한 순간에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도 이제 식상하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의 화신인 양 행세하고 있지만 그의 현직 비서실장은 지난해 ‘부산 정권론’을 폈던 사람이다. ‘왕의 머리’라는 김병준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영남후보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했던 이다.

    노 대통령을 원칙의 정치인이라고 ‘오해’한다. 부동산 원가공개, 원 포인트 개헌 등에 대한 입장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뒤집는 사람을 두고 ‘원칙’이 있다고 하는 건 ‘원칙’이란 어휘에 대한 모독이다.

    노 대통령은 ‘구-웅민 토-옹합’을 말했다. 현재 국민통합에 가장 큰 저해 요인이 되고 있는 건 계층간 양극화이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에 대한 첨예한 입장 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한미FTA다. 절차적인 면에서 한미FTA의 문제는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에 있다. 이 때문에 한 명의 선한 택시노동자가 목숨을 버렸다.

    그런데 한미FTA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자평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뇌가 전혀 없다. 정치적으로 ‘손해’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옳다고 믿는대로 추진했더니 결과적으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는 식이다. 이는 큰 장사꾼의 셈법일 수는 있어도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통합’해야 할 정치적 지도자가 취할 만한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세속적 판단을 많이 한다. 산업자본가적 사고보다 상업자본가적 사고가 농후하다"는 노회찬 의원의 비평은 새기면 새길수록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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