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행 위원장과 민노당 지도부에게
    By
        2007년 05월 07일 12:0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3월 11일 민주노동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정기당대회에서 대선후보선출 방법을 놓고 기나긴 시간과 치열한 논쟁 끝에 조직적인 표결로서 소위 개방형경선제를 부결(찬성 63.14%로 가결조건인 2/3 찬성에 미달)시키고 당원직선으로 대선후보를 선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당은 당대회 결정에 따라 대선후보선출 일정을 잡고, 4월 20일 대선후보 선출공고에 이어, 4월 27일부터 후보등록을 받고 있습니다. 당내 유력후보 세 분이 곧 사이좋게 함께 후보등록을 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끊임없이 당의 결정에 불만을 드러내더니 드디어 본인도 참여한 당의 결정사항을 뒤엎기 위해 당에 임시당대회를 강요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이석행위원장의 발언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지난 5일 긴급 회의를 열어 이석행 위원장이 제안한 ‘07년 대선후보 전술’에 대해 의견수렴을 진행했습니다. 이 위원장이 제안한 대선후보 선출 내용의 핵심은 ‘조합원이 참가하는 민중참여경선제를 민주노총이 독자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7년 4월 10일 <민중의 소리>)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동당-민주노총 정례협의회에서 민중경선 공약 실현을 강력히 요구하며 △임시당대회 개최 후 민중경선제 전면 재검토 △민주노총 대선후보 독자 선출 등을 당 측에 제시했습니다. (중략) “내가 약속한 공약을 당대회에서 부결됐다는 핑계로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도 피력했습니다. (2007년 4월 10일 <참세상>)

    그의 첫마디는 “올해 대선에서 민주노총 독자적으로 후보를 낼 것”이었습니다. 민주노총 독자 대선후보론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합니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 3월11일 당대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당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대선후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선출 방식’에 관한 당규약 개정을 놓고 투표를 벌인 결과 3분의 2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된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는 “당대회를 재소집, 대선후보 경선에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지 않으면 조합원 동의를 얻어 진보진영 내 후보를 물색, 독자적으로 후보를 선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07년 5월 2일 <경향신문>)

    이석행 위원장은 지난 20일,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 세계>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이 교만해졌다. 몇몇 부류에 끌려가는 것 같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과 민주노동당 내 특권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창당의 주역이고, 배타적 지지 방침을 통해 당의 인적, 물적 토대로서 민주노동당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여러 가지 특권을 주고 있습니다.

    노동 최고위원 추천권(실제로는 임명권), 노동 할당 중앙위원으로 전체 선출직 중앙위원의 28% 할당 특권, 노동 할당 중앙대의원으로 전체 선출직 중앙대의원의 28% 할당 특권을 민주노총에 주고 있으며, 더욱이 40%가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 비율을 감안하면 당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방법이나 통로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비대칭 관계는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노동 할당 최고위원 등이 종종 당을 자신들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하위조직쯤으로 여기는 언행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비록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최대 주주라지만, 조합원의 이익단체인 노동조합과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엄연히 다른 목적과 독립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는 독립적인 조직입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도 민주노동당에서는 당원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석행 위원장은 지난 정기당대회에서 당대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표결에 직접 참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인 뜻대로 관철되지 않았다 해서 본인이 참여한 당의 결정을 엎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단한 횡포입니다. 이석행 위원장이 소속된 국민파와 정치적 행동을 함께 했던 NL계열조차도 함부로 당헌 사항을 뒤엎자고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인데, 이석행 위원장은 당에 공식적으로 임시당대회를 요청(실제로는 강요)하겠답니다.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대한민국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당헌을 힘과 쪽수를 앞세워 뒤엎겠다는 겁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민주’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민주노총 내 최대계파인 국민파의 든든한 지원에다, 늘 정치적 행동을 함께 하는 당내 최대 계파인 NL계열의 쪽수 지원을 받고, 한총련과 다함께 등의 힘을 더하면 충분히 임시당대회 소집이든, 대선후보경선제든 마음대로 뒤엎을 수 있을 겁니다.

    당헌이고 당규고 민주주의 원리고 다 무시하고 힘으로 협박하고 쪽수로 누르신다니, 일개 당원으로서 막을 힘은 없고 다만 두 가지만 간곡하고 정중하게 부탁드리니 꼭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노총이름 앞에 붙은 ‘민주’자 부터 빼 주셨으면 합니다. ‘민주’자를 빼낸 자리는 향후 노총의 공식적인 결정에 따라 적당한 표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붙여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당에서 민주노총에게 줬던 특권은 모두 반납하시고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배타적 지지 철회를 운운하면서 민주노총에 주었던 특권인 할당 중앙위원과 할당 중앙대의원을 이용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양심적이지도 못합니다. 제가 권한과 책임을 운운하지 않아도 평생 ‘민주’ 노동운동 판에서 꿋꿋하게 살아오신 위원장님의 훌륭한 인품이라면 스스로 당의 특권은 반납하리라 믿습니다.

    한편, 당의 결정을 뒤엎겠다는 이석행 위원장의 협박에 몸을 사리는 당 지도부와 당대선후보 그리고 기라성 같은 당내 명망가들에게도 간곡하고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물론 저는 앞으로 얻어야 할 것은 많은 높은 분들이 민주노총 다수파인 국민파의 눈치를 보는 것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대선후보로 선출되려면 국민파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권영길 후보의 침묵을 이해하고, 대선후보로 선출되려면 국민파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는 노회찬 후보의 침묵을 이해하고, 대선후보로 선출되려면 국민파의 지지가 필요한 심상정 후보의 침묵을 이해합니다.

    나중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한 자리라도 얻으려면 국민파의 눈치를 봐야 하는 문성현 당대표님과 십 여 명의 최고위원님들, 나머지 6명의 국회의원님들 그리고 기라성 같은 당내 명망가들이 몸사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단, 부탁 하나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 부탁은 당이름 앞에 붙은 ‘민주’자는 빼 달라는 겁니다. 만약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협박에 굴복해서 스스로 결정한 당대회 결정사항을 번복한다면 당 이름 앞에 붙은 ‘민주’자는 우리에게 과분할 뿐만 아니라, 당원과 국민에게 일종의 사기를 치는 일이기 때문니다.

    평생 ‘민주’ 조직에만 몸을 담아온 분들이시니, 지금 이석행 위원장의 협박이 어떤 상황인지는 누구보다 잘 아실테고 제 표현이 지나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거대한 두 개의 성역이 존재하는 민주노동당의 슬픈 현실

    당에 희망도 미련도 거의 다 버린 페이퍼 당원이지만, 여전히 민주노동당에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두 개의 거대한 성역이 있다는 슬픈 현실을 보며, 그 거대한 두 개의 성역(북한 정권과 민주노총 지도부) 극복 없이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암울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지도부나 북한 정권의 평가가 아닌 유권자인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선과 총선이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에 대한 마음이 편해질 날이 멀지 않은 듯 합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