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신자유주의가 운동이 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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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07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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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느 글에서 본 기억에 의하면, 커다란 냄비 속에 물을 넣고 개구리를 넣은 후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자신이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죽어간다고 한다. 물론 갑자기 뜨겁게 하면 개구리는 튀어 나갈 것이다.

    이 이야기를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은 구체적인 정책이나 제도, 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저항이 아니라 어떤 이념 반대운동처럼 되어버렸다”라고 언급한 민주노동당 전 간부에게 들려주고 싶다. FTA가 구체적인 제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철옹성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추진 세력은 엄청난 힘을 가진 세력이다. 다국적 기업의 힘, 정부권력, 대중매체, 지식인 등등. 이들이 전략적으로 완급을 주어가면서 투자든 투기든 정부정책의 변경이든 서서히 시간을 두고 추진하고 이를 또한 대중 매체를 통해 합리화시켜 나가면 일상적 삶에 억매인 대부분의 대중은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더군다나 한번 FTA가 발효되고 나면 역진이 불가능하므로 문자 그대로 대세 정도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 그 자체가 자물쇠 채워진다.

    중요한 것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 남미 여러 나라의 ‘좌파의 파도’는 오스발도 꼬히올라에 의하면 “신자유주의 세계 정치체제의 위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가 철옹성이라고 생각하는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은 남미의 변화에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근 텔레수르 보도에 의하면 우리가 깔보는 볼리비아가 인권보호 정책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곧 유엔 인권 상임위원회의 위원국이 될 것이라 한다.

    물론 일부 남미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는 유전자 조작 콩을 엄청난 규모로 경작하고 있다. 브라질은 최근 미국과 사탕수수로부터 자동차 연료를 만들기 위한 바이오 에너지 ‘에탄올’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한다.

    바이오 에너지는 대안적 에너지로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황우석 사태에서 보았듯이 단어 앞에 생명(bio)이란 접두사가 들어가는 경우 상당히 위선적인 마케팅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문제는 이런 목적을 위해 사탕수수를 재배할 넓은 땅이 선진국에는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남미를 오랫동안 저발전에 가두었던 ‘새로운 바나나 공화국’ 대농장 시스템을 다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를 위해 막대한 땅을 이용하고 나면 일반 대중들을 위한 식량재배 면적은 줄어들어 식량가격이 올라갈 수 밖고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양국의 대규모 기업들에는 이익이 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삼림의 황폐화 등 생태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두 방향에서 오는 신자유주의 공세

    최장집 교수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래라고 본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부는 모두 민주화 운동에서 표출되었고 …..이제 (관료 엘리트) 그들은 민주적 개혁에 복무하도록 요구되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를 경과하면서 정치 엘리트들은 국정운영에 있어 무능력과 미숙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54-155쪽 ) 이어 “권위주의적 발전주의에 이어 시장 효율성, 시장근본주의가 새로운 헤게모니로 힘을 갖기 시작했다”( 166쪽 )고 지적하고 있다.

    시장 근본주의가 민주주의를 허탈하게 만드는 위기 상황을 지적한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화된 민주 개혁 정부가 신자유주의(시장 근본주의) 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관료 엘리트의 리더십을 인정한 것은 단지 정치 엘리트들이 가지는 ‘국정운영의 무능력과 미숙함’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계화의 명분으로 공격해오는 외세의 압도적 영향을 포함하는 총체적 원인에 대한 언급과 분석이 있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특히 민주정부가 앞선 권위주의적 군부정부에 비해 더 쉽게 신자유주의 공세에 허물어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인 민주주의마저도 위기로 몰아넣은 다양한 원인을 더 분석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최교수는 이 지점에서 이론적 지형으로 넘어가버렸다.

    그 후 아직까지도 민주정부의 실패를 ‘무능력과 미숙함’으로 감싸는 담론이 성행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민주주의 위기, 대안 부재 등에 대한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적 담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 비판 담론의 추상성, 관념성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물꼬가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신자유주의 공세는 두 가지 다른 방향에서부터 오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예를 들어, 비정규직)로서 공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효율성’의 가치관과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이론 전개가 있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 비판 담론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이, 양자 사이에 똑같은 단어를 놓고도 전혀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추상적이고 애매한 담론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유 무역’의 자유가 경쟁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에 의해 경쟁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식으로.

    발빠르게 ‘멕시코화’ 되고 있는 한국

    지금 우리의 문제는 무지막지한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 허약하게 대응하는 시민사회 운동과 일반 대중의 저항의 약세다. 하지만 이같이 실천적 움직임이 취약하다고 해서 지식인들이 펼치는 신자유주의 비판 담론이 관념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중층적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공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연유라고 본다.

    한 마디로 압축하면 우리 학계와 시민사회는 신자유주의 공세를 이제 막 커다란 위기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대안 수립의 긴박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최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을 개혁(?)하려 한 움직임과 너무도 비슷하게 멕시코에서도 공무원 연금법을 개혁한 바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같은 연금을 받던 것을 이제는 개인적으로 차별화시키겠다는 개정 법안이 멕시코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런 사안 이외에도 우리 정부는 중국과 EU 등 많은 나라와 FTA를 추진하는 등 빠르게 ‘멕시코화’되고 있는 것 같다.

    IMF에 의하면 올해 멕시코 경제 성장율 추정치는 3.4%로서, 에콰도르의 2.7%에 이어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낮은 성장율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이 FTA 체결 이후 우리의 경제 성장율을 장미 빛으로 예상하는 것이 별 근거 없음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마련이 구체화되기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런 국면에서 진보진영의 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을 관념적, 추상적이라고 비판하고 논리 전개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 상황 전개의 절박함을 일반 시민사회와 대중들이 ‘가슴으로’ 알게끔 노력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FTA로 인해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가슴으로부터의 공감’이 절실한 시점이다. 미첼 발리보에 의하면, 스페인어로 ‘자비’(misericordia)라는 단어는 ‘비참’(miseria)과 ‘가슴’(corazon)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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