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또 남성혐오 항의
    ‘집게손’ 억지 논란에 굴복
    “기업이 ‘반사회적 여성 공격’ 힘 키워···노동자 지켜줄 방법 고민해야”
        2023년 11월 28일 06:2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넥슨이 자사 게임에 등장한 ‘집게손’ 동작을 두고 일부 게임 이용자가 남성 혐오라고 항의하자 영상 담당 직원을 작업에서 배제하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성단체들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밥줄 끊기’를 통해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침묵시키려는 반페미니즘적 공모”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참여연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9개 단체들은 28일 오전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이 일부 여성혐오적 소비자의 기분 나쁨에 따른 억지 주장을 받아주고 감정을 달래며 사과하는 것은 이들의 비이성적 불만과 폭력성의 표적을 구조적 약자인 여성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행위”라며 “이는 여성의 안전을 팔아 자기 보신과 이익을 챙기려는 비굴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사진=여성민우회

    넥슨코리아가 배급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 ‘집게손’ 모양이 0.1초간 등장하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남성 혐오”라고 항의했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은 영상을 제작한 외주업체 소속 창작자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뒤져 페미니즘 관련 의사 표현을 색출하고 이를 빌미로 넥슨을 상대로 집단행동을 벌였다.

    이에 넥슨은 지난 26일 사과문을 게재, 해당 영상도 비공개 처리했다. 해당 영상 제작 업체 ‘스튜디오 뿌리’ 측도 영상 제작 담당 직원의 작업물을 삭제하고 해당 직원을 배제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특히 ‘메이플스토리’의 운영진은 온라인 이용자 간담회를 열어 사과하고, 홍보영상에서 ‘집게손’처럼 보이는 장면을 초 단위로 모아 올리고 전면 검수하겠다고 공지했다.

    페미니즘 사상 검증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시작은 2016년 넥슨이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여성 성우를 배제한 ‘넥슨 성우 교체사건’이다. 이후 2020년 ‘가디언테일즈 대사 수정 논란’, 2021년 GS25 광고에서 촉발된 ‘집게손 논란’, 올해 ‘프로젝트문 여성 작가 배제 사건’ 등 일부 남성들의 항의에 굴복한 기업들의 여성 노동자 배제와 차별이 지속됐다.

    여성 단체들은 기업들이 일부 남성들의 억지 주장으로 불거진 사태를 방조하고 바로 잡지 않은 탓에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일부 소비자가 제기하는 남성혐오 논란에 대해서만 게임사가 즉각 반응해 굴복하는 사건이 반복되면서 기업을 휘두르고 여성 종사자를 괴롭히는 권능감과 재미를 위해 놀이처럼 이 같은 억지 논란을 일으키고 지속하는 집단도 나타났다”며 “이러한 ‘반사회적 여성 공격 놀이’가 반복되는 이유는 오직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주체인 기업이 이들을 소비자로서 승인하고 힘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집게손’ 모양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며, ‘페미’라는 반사회적인 여성 세력이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는 음모론은 일부 남초 커뮤니티가 날조해 낸 허황된 착각”이라며 “0.1초 간 지나가는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을 증거라고 우기는 주장이 통한다면 그 누가 이 혐오 몰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단체들은 “넥슨은 2016년 페미니스트를 퇴출하라는 일부 소비자의 요구를 기업이 수용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이를 선례 삼은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주장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만든 원흉”이라며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넥슨은 마땅히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화인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사무장은 “여성 창작자에게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매년 일어나지만 정부도 기업도 누구 하나 보호하려 먼저 나서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여성창작노동자들은 ‘내 SNS에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지’, ‘작업물의 작은 손동작이 혹시나 문제가 되진 않을지’ 걱정하며 생산성 없는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사무장은 “기업이 악성 유저들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게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지켜줄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며 “그저 괴롭히기에 지나지 않는 악성 유저들의 억지 민원과 그것을 옳다며 들어주는 넥슨 포함 게임업계는 당장 반페미니즘 행태를 멈추고 반성하며 속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김수아 부교수는 “게임업계는 사회적 가치와 공적 책무에 대한 고려와 숙고가 없이 억지 민원에 바로 응답하면서 민원인들의 효능감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며 “이러한 억지 민원의 요구에 응하기보다는 노동자를 보호하고 게임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임의 문화적 위상을 스스로 낮추는 퇴행적 대응을 멈추고 지금이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바꾸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두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는 “게임업계에서 다수의 여성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빌미로 게임 이용자 커뮤니티는 노동자의 발언을 일일이 점검해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문화연대는 게임업계 내 여성혐오 및 차별에 적극 대응할 것이며, 피해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문화예술계에 그 어떤 차별과 혐오도 존재하지 못하도록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