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비는 아이의 가장 큰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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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05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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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날을 앞두고 초등학교 1학년생 애를 데리고 서점에 갔습니다. 애는 자기가 목표한 만화책을 고르기 위해 직진하고, 저는 애에게 읽힐 책을 찾아 두리번거렸지요. 그래서 찾은 책이 바로 『도서관에 간 사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책에 대한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책에 대한 책’이 있으면 어린이 책까지도 애써 읽으려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의도가 아이의 책에까지 이른 셈입니다. 또한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아이에게 바치는 아비의 독후감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만화책을 향해 직진하고 아빠는 두리번

    『도서관에 간 사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도서관에 사자가 찾아듭니다. 사서인 맥비 씨는 못마땅하지만 메리웨더 도서관장은 뛰거나 소리치지 않는다면 곧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사자의 도서관 출입을 용인합니다.

       
     
     

    사자는 규칙을 이해하고서는 아주 훌륭하게 적응합니다. 심지어 도서관 업무도 적극적으로 도웁니다. 그러던 중 메리웨더 도서관장이 책을 꺼내려다 넘어져 다치자 사자는 이를 알리기 위해 큰 소리로 울부짖습니다.

    이로써 사자는 관장을 구했지만 규칙을 위반했으므로 도서관에 드나들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해 모습을 감춥니다. 사자가 사라진 도서관은 침울해집니다. 그러자 급기야 사자를 찾아나서는 맥비 씨! “으르렁거리면 안 됨. 단,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는 예외임.”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들고서 말입니다. 마침내 사자의 컴백홈!

    이 책을 쓴 작가의 발언와 출판사의 홍보 그리고 독자들의 독후감의 큰 틀은 도서관이 모험의 장소라는 것과 도서관에서는 규칙 혹은 예절이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가령 “도서관이란 곳, 책을 좋아하고 책이 많이 있는 곳. 그곳에 가면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 도서관에서는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 도서관 예절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우리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지요.”(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있는 독자 리뷰 중에서)라는 식입니다. 말인즉슨 맞습니다. 하지만 잠깐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저는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 시원찮습니다. 중학교 시절 도립도서관에 몇 번 갔다가 그 분위기에 주눅 들어 걸음을 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요량으로 드나들었지만 별다른 소득(?)도 없이 짧게 끝장나고 말았지요.

    본격적인 도서관 출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말하기 좀 뭣하지만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책을 주시옵고.” 운운의 감동적인 명언이 마치 내것인양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도서관이 제게는 ‘추억’이 아닙니다. 제 관념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19살 이전의 것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의 영역과 추억의 영역을 억지스레 나누고 있는 셈입니다. 이성이라는 것을 지각한 이상 그 이후의 것들은 모두 이성의 책임이라는 식입니다.

    어쨌든 『도서관에 간 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자로 인해 도서관의 규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소리쳐서는 안 된다는 도서관의 규칙 곧 이성에 사자라는 낯선 존재 혹은 타자로-사자는 이름도 없이 그냥 사자, 곧 비인칭입니다-인해 균열이 생긴 것입니다. 예외가 생긴 것입니다.

    그 예외는 분명코 사자의 승리입니다. 규칙을 만든 이의 승리가 아니라 틀 안에 들어와 복종하고 적응해야만 하는 자, 달리 말하면 새로운 입사자(入社者)가 쟁취한 값진 승리인 것입니다. 일종의 전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 승리와 전복이 사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얼마간 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라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사자는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항변할 수는 없었을까요? 사자의 자발적 출입금지 조치에 도서관의 사자 친구들은 그저 방관자로 있어야만 했나요? 어린이 책에 너무 따져 묻는 게 아니냐구요?

    글쎄요.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어린이 책도 책이라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도서관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책을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독자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혹시 이 글을 제 애가 읽을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비의 글이 ‘책’이 되고 ‘도서관’에 소장되어야만 할 터인데,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섭섭하다고 할 거야 없지요. 한 권의 책으로 아이는 즐거움을 누리고 더 나아가 추억을 만들고, 아비는 아비대로 생각하고….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아비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큰 도서관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아비는 도서관장이고 아이는 사자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외를 만들며 도서관의 새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나가겠지요. 만들어진 세상은 만들어질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여 아이야! 아비에게 있어 너는 이성의 산물이지만 너에게 아비는 19살 철들기l’age de raison 전의 추억일터이니, 너는 아비를 맘껏 읽고 뛰어놀고 소리치거라. 그럼으로써 부디 『도서관에 간 사자』의 사자보다 더 큰 승리를 이루렴. 도서관의 추억이 없는 아비가 아이의 도서관의 추억을 위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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