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
        2007년 05월 05일 09: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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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

    눈에 잘 띠는 빨간 넥타이. TV에 등장한 인물이 유권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주고자 하는 대선 후보라면 더더욱 빨간 넥타이를 매고 출연할 만도 하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한 천영식이 쓴 책 『대통령이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해피스토리, 2007)는 이미지 선거를 파헤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책의 제목대로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들에게 정말 ‘빨간 넥타이’를 매라고 충고하고 있을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위해

       
      ▲『대통령이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천영식 (해피스토리)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유권자이기도 한 독자들은 대선을 어떻게 관전하고 있는가? 이명박, 박근혜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 변동에 관심을 갖는가? 소수 정당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도약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있는가?

    어쩌면 각 정당의 패거리 정치와 그들의 이합집산이 어디로 갈지 경마장에 마권을 쥐고 앉은 심정으로 대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마권은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했을까? 후보들 사이의 정책비교? 이념? 아마도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는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를 경마 게임 바라보듯 하는 것은 왜곡된 이미지 정치 때문이라고 본다. 이 책은 유권자들에게 이미지 정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주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후회하지 않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한 번 쯤 참고할 만한 책이다.

    다시 ‘빨간 넥타이’ 얘기로 돌아가자.

    “지난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주자는 모두 7명이다. 기호 1번 김중권, 2번 노무현, 3번 정동영, 4번 김근태, 5번 이인제, 6번 한화갑, 7번 유종근 후보 등이다. 이들이 TV토론에 나온 날 모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7명이 모두 빨간색으로 무장을 하니 유난히 눈에 잘 들어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치 컨설턴트가 추천한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그들 7명 예비후보는 모두 빨간 넥타이를 맸다

    이처럼 대선에 나서는 정치인들 모두가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든답시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TV에 출연한다면?

    “이미지 정치는 정치인들의 개성을 빼앗아간다. 어떻게 하면 TV에 잘 비치느냐만 중요하다. 여자 연예인의 얼굴이 어느새 모두 비슷해졌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다. 얼굴이 작고 눈이 크며 쌍꺼풀이 있는 날씬한 연예인들이 TV를 점령하고 있다.”

    경쟁자와 차별 있는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선택 받고자 하는 정치인의 시도 때문에 결국엔 TV 속 연예인들처럼 개성을 상실한다면 유권자들의 선택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각각의 개성과 차별이 있는 실체에 접근하기 보다는 엇비슷한 피상적 이미지에서 더 강렬한 이미지만을 쫓을 수밖에 없다. 결국 후보 간의 차이란 이미지의 차이일 뿐이다.

    저자는 이미지 정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선 TV에 등장하는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등의 이미지를 재미있게 분석하고 그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명박, 박정희, 빌 게이츠를 한 데 묶어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이명박과 박정희, 그리고 빌게이츠. 원 없이 한평생을 살았고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은 단순한 시대의 풍류객이 아니다. 시대를 타고 가길 원했고, 시대를 사실상 끌어가길 바랐다. 이들은 역사를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속도’에 있다. 너무 바쁘다. 쫓아오는 사람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도 갈 길이 먼 사람처럼 헐떡대며 쫓아간다.”

    이명박-브레이크 없는 질주, 박근혜-상속인의 자립투쟁

    박근혜에게는 ‘유산 많은 상속인의 자립투쟁’을 붙여주며 힐러리와 이건희를 한 데 묶어 주었다.

    “박근혜와 힐러리, 이건희는 한마디로 풍부한 유산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딸, 대통령의 부인, 최고 재벌의 상속자.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위치를 타고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5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했고, 힐러리는 8년간 퍼스트레이디의 영화를 누렸다. 힐러리는 미국 언론이 대통령은 남편 클린턴이 아니라 힐러리라고 할 만큼 클린턴 행정부 초기에 많은 권한을 누렸다. 그 정도 했으면 만족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이건희는 최고 재벌 삼성을 물려받은 뒤 그럭저럭 2세 경영인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보다는 욕심을 많이 냈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에 커뮤니케이션학과 심리학 이론, 마케팅 이론을 동원한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등이 대중에 뿌리내린 이미지가 어떠하며 왜 그러한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이론적 설명에 치중한다기보다는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인들을 실제로 비교 분석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책과 TV를 번갈아가며 보게 만드는 데에 있다.

    각 대선 주자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까지 충고하고 있는 대목은 더욱 생동감 있는 이미지 분석을 선사한다.

    봉이 김선달형 이명박

    ‘김선달식 큰도박형’ 이미지 정치의 이명박에게는 이슈를 선점하고 네거티브 공세를 막으라고 충고한다. 선거법 위반 전력을 갖고 있는 만큼 “깨끗한 선거의 외투를 입어라”고 제언한다.

    ‘고통 감내식 밝은 미소’ 이미지 메이킹 정치를 하고 있는 박근혜에게는 박정희의 유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와 호흡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보수 색채를 걷어내고 중간층을 공략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 책은 TV 속 대선주자 이미지 분석의 재미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연예인을 소비하는 것과는 달라야 함에도, 한국 정치는 대통령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이라는 ‘상품’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이 상품이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와 그 실체, 그리고 그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또한 이 책은 미디어와 연동된 여론조사가 낳는 두 가지 효과, 밴드왜건 효과(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될 만한 사람에게 쏠림현상이 생기면서 동시에 이미지가 부풀려져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효과)와 언더독 효과(여론지지가 낮아서, 유권자들 스스로 후보에 대한 동정심이 자극돼 투표하는 효과)를 비켜갈 수 있는 역량을 유권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지 포장술이 가져온 결과들, 특히 TV연설, TV광고, TV토론에서 비춰진 후보자들의 모습이 투표 결과에 왜곡되어 미칠 수 있는 막대한 오류를 짚어냈다. 저자는 ‘TV를 통한 이미지 정치의 3대 특징’을 정당정치의 실종과 캠프 만능주의, 정책선거의 궤멸, 고비용과 정치의식 수준의 저하를 꼽았다.

    TV가 투표율 하락 주범

       
      ▲ 저자인 천영식 문화일보 기자
     

    “미국에서는 최근 들어 투표율이 하락한 원인으로 TV의 영향력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 투표율은 TV가 본격 등장한 1960년대 이후부터 하락하고 있다. TV가 정치를 광역화하고 대중화했지만, 모순적이게도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잃게 만드는 이중성이 있다. TV의 묘한 기능이다.”

    TV는 한쪽 방향으로 이미지는 전달한다. 이미지를 강요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유권자들의 긍정적인 참여가 확대될 수 있는 통로를 모색한 결과 UCC를 비롯한 소위 ‘웹2.0’환경의 신규매체들의 활용 방안을 담고 있다.

    이명박의 팬클럽 MB연대가 인기개그 프로그램인 ‘마빡이’를 패러디한 ‘명빡이’ 등 UCC 동영상을 제작 배포한 것과 박근혜도 ‘피아노치는 근혜공주’ 등의 UCC를 제작해 유포한 예처럼 이미 대선주자들은 UCC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웹 2.0을 향유하는 세대는 누구인가. …창조세대들은 미니 홈피를 통해 사적이고 주관적인 나를 표현하기도 하고, 블로그나 개인방송국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온라인상에 자유롭게 서술하고 댓글 문화를 통해 사회의 이슈를 직접 생성할 줄 안다.

    …웹 기술 발전 속도는 디지털 디바이드를 좁혀줄 것이다. 웹 2.0시대엔 지금까지 언론인이나 기업인으로 대표되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형성되던 여론이 다수의 개인들에 의해 형성되는 진정한 민주화가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 ‘크라우드 소싱’을 도입하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맞물린 2007년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창조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유권자와 대선주자의 쌍방향 소통이 한층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민주노동당에게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기대한다. 크라우드 소싱은 인터넷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인터넷 쇼핑몰 카페프레스는 이용자가 직접 상품을 만들어 사고 파는 오픈마켓으로 운영해 성공했다. 음반업계에서는 아마추어가 인터넷에 올린 UCC를 통해 스타를 발굴하고, 영화 및 방송업계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한다.

    “지금 진보세력은 큰 위기에 빠졌다. 민주노동당은 돈과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정당이다. 이들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곳이 웹 2.0의 바다다. 여기에는 무한한 잠재 지원군이 모여 있고, 돈도 크게 들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해 툭 까놓고 크라우드 소싱을 해보라. 아마 지금보다 훨씬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NL과 PD의 싸움 같은 전근대적 싸움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 연합이란 양자구도를 통해 포괄하지 못하는 집단이 많다.”

    진보세력은 웹 2.0에 빠져라

    저자는 TV를 통한 이미지 정치의 가면을 훌륭하게 벗기고 있다. UCC 등 ‘웹2.0’ 환경은 TV와는 다른 정치 지형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쌍방향 소통과 민주주의의 성장은 ‘웹2.0’만의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이 등장할 때 이미 ‘민주주의의 혁명적 성장’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가 정치의 진보로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걸 입증해 주었다.

    이를 저자가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미지 정치가 트렌드라면 진짜 쌍방향 트렌드로 바꾸자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저자는 『대통령이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를 한 마디로 이렇게 소개했다.

    “올바르게 선거를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시대의 트렌드가 그렇게 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이걸 모르고 선거를 보는 것과 이걸 알고 선거를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 눈으로 선거를 바라봐야 ‘그건 가식이야’하며 실체와 현상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유권자에게 생긴다. 그래야 바람직한 선거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말로 대신했다. 

    선거판이 온통 후보들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데에 열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그들이 던져주는 이미지 이면을 간파할 수 있는 힘을 주고자 하는 게 저자의 의도이다.

    저자 천영식은 문화일보 기자이다. 지금은 경제 산업부 기자이지만 16년의 기자 생활 가운데 14년을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보냈다. 정치부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국민회의, 민주당, 한나라당 등을 긴 시간 출입했다. 양대 정당을 두루두루 출입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등 내로라는 대선후보들과도 사적으로 접촉해 정치인들의 실체를 보아왔다.

    저자는 오랜 기간 한국의 정치를 지켜보면서, 특히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 사이에는 이미지 선거가 있다

    “대선이 중요한데, 중요한 만큼 유권자들이 큰 고민을 해서 선거에 임하지 않고 있다. 대선을 게임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대선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데 선거 당시에는 어느 상품이 좋은가를 본다.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그래도 유권자들이 선거 때 원하는 만큼 나중에 잘 되면 상관없을지 모르겠으나 선거 후에는 선거 전 기대에 못 미친다. 이 괴리 현상을 추적하다보니 주요한, 큰 원인 중에 하나가 이미지 선거이다.”

    노무현은 이미지 선거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는 2002년 대선에서 득표한 48.9%의 지지율을 유지하지 못했다. 유지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10~20% 대의 지지율로 언제나 ‘욕먹는’ 대통령으로 5년째를 지내고 있다.

    저자는 “노무현은 10~20% 지지율밖에 얻을 수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48.9%를 받을 수 있는 만큼 포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비극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빨간 넥타이를 매라』는 이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미지 정치를 분석하고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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