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들이여, 남자다움을 거부하라
        2007년 05월 04일 03: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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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술집에서 맞고 온 둘째 아들이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하자, 김승연 회장은 “철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승연 회장이 ‘남자답게 행동’한 결과는? 법적인 대응이 아니라, 아들을 데리고 가서 가해자를 색출하고, 직접 보복폭행을 한 것이다. 폭행 후 김 회장은 폭탄주를 한 잔씩 돌리고 “남자답게 화해했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말했단다.

    그토록 남자다움을 강조했던 김 회장은 이제 경찰의 조사 앞에 ‘남자답지 않게’ 자신의 범행사실을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이 강조한 ‘남자다움’의 가치를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배반하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이 아들에게 강조한 ‘남자다움’은 법제도적인 절차로써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시나리오대로 갔다면, 사과하고 사과 받는 남자들은 그 속에서 남자들 간의 의리와 용기를 확인하며 ‘남자다운 남자’로 자부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 회장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들은 남자들끼리 서로 때리고 맞고, 사과하고 사과받는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김 회장 아들이 맞은 사건은 사적 영역에서 벌어졌다. 이에 아들이 애초 대응하려던 방식은 공적 영역에서 법제도적인 절차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사적 영역에서 받은 피해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아들을 사적 영역에서 대응할 능력이 결여된, 즉 ‘남자다움을 결여한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는 법제도적인 해결은, 사적인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는 힘없는 약자인 ‘여성’이 사용하는 여성스러운(혹은 유약한) 해결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듯하다.

    김 회장이 강조한 ‘남자다움’의 구분 속에는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 사이의 지시와 복종, 그리고 그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을 때, 물리적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 간의 질서를 유지해야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들이 강조하는 남자다움이란 ‘힘에는 힘, 폭력에는 폭력,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하는 비인간적인 방식일 뿐이다.

    힘있는 아버지가 힘없는 아들에게 일방적 충성을 요구하고, 힘없는 아들은 어느새 힘있는 아버지로 성장해 자신이 배운대로 다른 힘없는 아들을 복속시킨다. 이런 식의 ‘남자다움’을 몸으로 학습받은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자신보다 힘없는 자들을 복속시키는 방법으로 힘을 사용한다.

    그런 ‘남자다움’을 발현할 수 있는 수단은 흔히 폭언이나 폭력이다. 그들에게 인권과 존중은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겐 단지 지시와 억압만이 있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남자다움’ 속엔 ‘목적과 수단’만이 있지, ‘관계’는 없다. 따라서 그들에겐 아픔과 상처, 존중과 존경은 있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김 회장 아들이 그들만의 ‘남자다움’과 결별하려고 애를 썼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경찰에 고소하겠다”는 것이 전통적이고 왜곡된 ‘남자다움’에서 벗어나 사적인 폭력을 공적인 영역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훨씬 더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진행 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사건에 개입된 모든 남자들이 그들만의 ‘남자다움’의 껍질과 굴레에서 튀어나와, 진실 찾기에 다가서길 바란다. 그리고 외상 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들만의 ‘남자다움’을 거부하고 자신도 유약한 존재임을 시인할 때, 잃어버린 소통의 언어를 기억해내고, 새로운 방식의 ‘관계맺음’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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