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춤추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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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04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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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심란하고 우울한 순간들도 많지만, 육아는 특히 여자들에게 그들이 제도 교육 속에서 차근차근 잃어왔던, 직관과 감성, 신화학자 조셉 캠벨 식으로 얘기하자면 천복(Bliss)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육아! 황홀한 패자부활전

상대적으로 육아로부터 멀리 있기 때문에 아빠들한테는 그저 덤덤한 시기일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아기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으며 육아에 밀착한 아빠라면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엄마의 자궁이라는 원시림에서 갓 나온 아이와의 살을 맞대는 교류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태어날 때, 갖고 있던 천재성과 감수성들을 다시 확인하고, 회복에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로부터 지속적으로 영감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 엄마의 어깨에 곤히 잠들어 있는 칼리
 

칼리를 데리고 처음 외출을 나갔던 날은 태어난 지 2주일 되었을 때였다.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출산 후 처음으로 긴 산보를 하면서, 동네에 있는 작은 어린이 전문서점 ‘팡팡’에서 보물을 발견했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점에 들어온 한 할머니가 칼리를 보며 “오! 몽디유”(영어식으로 하자면, 오 마이 갓)를 연발하면서 아이가 며칠 되었는지 묻길래, 14일 되었다고 했더니, “어머나 세상에, 14일의 기적이로군요.”라고 해서 14라는 숫자는 쉽게 기억에 각인되었다.

14일의 기적과 세계의 모든 자장가

거기서 나는 칼리에게 생후 첫 음악경험을 전해줄 음반을 발견하게 된다. 루마니아, 대만, 이누잇(에스키모는 모욕적인 표현이고 이누잇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한다), 키르키즈스탄, 아일랜드. 카리브해, 세네갈, 구아들루프, 브라질, 알제리, 코르시카, 볼리비아, 베트남, 러시아, 아프카니스탄, 집시,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40개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전래 자장가 모음집이 그것이다. 20개씩 2개의 볼륨으로 나뉘어 있는 이 음반은 대부분이 반주 없이 현지인의 육성으로만 녹음되어 있다.

갈리마르 출판사가 발행한 책이기도 한 이 자장가 시리즈는 한쪽 면엔 가사의 음역과 번역이 나란히 적혀있고, 또 한쪽 면에는 그 나라 그림과 사진을 담고 있는데, 문화산업이 삼켜버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자생적 토속음악들이 절멸하기 전에 구사일생으로 구해낸 듯한, 그야말로 “문화다양성”의 축복을 고스란히 담긴 작업이다.

이누잇(innuit)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수줍게 한소절 노래를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눈(雪)빛에 발갛게 그을린 피부를 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절로 떠오르며, 그들이 정말 이글루에 아직도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평화로우면서도 구슬프다. 전쟁과 실업과 기아라는 비문명화 된 세계의 공통적 비극이 인류를 뒤덮는 동안, 말 못하는 아가를 품에 안고 꿈나라로 보내면서, 그녀들 스스로는 아가의 달콤한 살내음에 고달픈 삶을 위로 받으며, 애절할 수밖에 없는 곡조 속에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위한 주문을 외었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착한 문명의 이기였다. 밤마다, 그토록 아름답고, 첫 순간부터 공감으로 깊이 젖을 수 있었던 그 40편의 음악은 아이뿐 아니라 희완과 나에게 평화를 한줌씩 건네주었다.

아쉽게도 이 음반이 결핍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 한국의 자장가는, 음반이 쉬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가 지으신 노래들 “넓고 넓은 밤하늘엔 누가누가 잠자나…” 등을 열심히 불러주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음악의 사막에 솟은 자본의 탑

음악은 사람이 모태에서부터 접할 수 있는 최초의 예술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고 가시적이지 않은 그 추상성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중계도, 왜곡도 거치지 않고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침투하는 강력한 예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리로 세상을 배우고 유추한다.

개발 열풍이 온 산하를 뒤덮으며, 우리네 삶의 흔적을 깨끗이 갈아치우고 있는 것처럼, 모든 예술장르에 침투하고 있는 소위 문화산업이 작품을 삼켜버리고, 상품만을 앙상하게 남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음악은 업계 스스로 장르의 모라토리엄 상태임을 선언한 최초의 장르이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대한민국의 음악을 포함한 문화계가 오래지 않아서 다 죽는다. 그래서 망할 것이다. 즐겁게” 라고 한 발언은 도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히려 뒷북에 가까운 진단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 가운데 가장 폭발적인 원초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음악으로 희완은 한국의 판소리와 민요를 꼽는다. 그의 개인적인 판단으론 한국문화가 가진 가장 고유하고 충격적인 자산은 그것이다.

시간을 부여잡고 대패질을 하는 듯,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여인들의 음성은 듣는 사람을 그 속으로 통째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국문화가 이러한 음악들에게 내 준 자리는 서초동 국립국악원의 저 쓸쓸한 토요상설무대 정도가 고작이고 움직이는 기업으로 불리는 몇몇 대형가수들에게 이 사회는 모든 ‘오마쥬’를 바치고 있다.

‘비’라는 가수를 수천 번 보았어도 그가 부른 어떤 노래도 기억할 수 없는 이 사실. 그들은 사막 속에서 검은 물을 콸콸 쏟아내는 몇 개의 유전일 뿐이다.

다시, 춤추기 시작하다

발레단에서 일한 경험과 무관하게, 나는 오갈 데 없는 몸치이다. 누군가가 하는 동작을 보고 전혀 따라할 수 없다. 대학 시절, 가끔 친구들을 따라 춤추는 곳에 가도 빈 맥주병들만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나의 영혼은 언제나 이사도라 던컨, 홍신자, 피나 바우쉬 등 몸을 도구로 삼는 예술가들에 의해 가장 강렬한 자극과 영감을 취해 왔으나, 나의 몸은 라이히가 말한 것처럼 딱딱한 철갑근육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배워야 할 테크닉이 없는, 음악이 내게 전해주는 영감을 몸으로 표현해 내는 것. 그것이 춤이라는 내가 익히 머리로 인지하고 있는 사실을 내게 몸으로 실천하도록 해준 사람은 칼리였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어디서든 음악이 조금만 들려오면, 고저가 아닌 장단만으로도 아이들의 몸은 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손을 끌어당겨 함께 춤을 춘다. 그리하여 이제 나도 춤을 춘다. 음악이 자극해대는 감성에 나를 맡기고 내 몸이 무질서 속의 질서를 자유롭게 창조해 내도록 허락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렇게 춤을 추던 시기가 있었다. 아직 나의 의식과 몸이 억압을 경험하기 이전. 한 다섯 살 때까지.

기독교적 엄숙주의와 상식적 수준의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우리 집, TV에서 쇼프로를 보는 것조차 죄악시하던 분위기는 재빨리 나의 자의식이 피부 깊숙이 숨어들어 오랫동안 평안이 잠들도록 했다.

생애 최초의 1년 동안 두개의 시디에 담긴 세상의 자장가들을 통해 40개의 음악적 영양소를 섭취한 이 아이의 꿈은 커서 “햇님”이 되는 것이다. “싫어!”를 잠꼬대로까지 남발하는 이 반항적 아가의 꿈 치고는 참 야무지다. 아이가 햇님이 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엄마가 뭘 해줘야 되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으므로, 오히려 마음 편하다.

   
  ▲ 어떻게 하면 햇님이 될지를 지금부터 고민하는 칼리
 

아이의 이 황당한 장래희망을 듣고, 아멜리 노통이 자전적 소설 <두려움과 떨림>에서 어린시절 ‘신(神)’이 되고 싶었던 그녀가 결국 일본인 회사의 화장실에서 휴지 갈아끼우는 일을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 지상최대의 굴욕을 묘사하던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꿈이 세상과 어떻게 조응하며 서서히 변모해 가는지를 지켜볼 일만 남았지만 어쩐지 칼리의 꿈이 현실과 맞닿는 계단은 아멜리 노통의 그것보다 더 현기증날 것 같다.

아이 키우기의 두려움과 떨림 : "챙피해"

어느 날부터,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기면 아이는 “창피해… ”하고 말하면서 손으로 몸을 가리는 행동을 했다. 그 때 짓는 표정과 목소리, 동작은 너무도 작위적이어서,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학습된 행동을 연기하는 것이 분명했다. 옷을 벗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배운 것이다.

아이 아빠에게 아이가 지금 한 말의 뜻을 전달하자… 그야말로 희완은 천정 끝에 머리가 닿을 듯이, 펄쩍 뛰었다. 두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육체를 부끄러워하도록 하는,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문명의 고질적 억압이 이미 두돌 된 아이의 습관 속에 침투한 것이다.

이 억압이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그것을 떼어내느라, 프로이드에서 융, 라캉에서 라이히까지 얼마나 긴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를 설득시키느라 세월을 보냈어도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건만…

희완과 나는 가능한 한 세상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모든 인종적 문화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자라, 아이가 지니고 태어난 태초의 능력과 욕망, 그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급히 아이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간곡히 아이에게 몸을 "창피하다"고 여기게 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아이 이모는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조심시킬 것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일 꺼라고 추측하며 자신은 무심코라도 "그러지 않으마"라며 동의했다. 아이 외할머니는 별 해괴한 소릴 다 듣겠다고 하시며, “그게 그럼 챙피하지 안 챙피하냐” 하시며 꿋꿋하게 우기셨다.

가장 두렵고도 조심스러웠던 어린이집의 반응은 “단지 아이가 감기드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기저기를 갈거나, 씻기 위해 옷을 벗을 때면, 빨리 입도록 종용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단지 옷을 빨리 입게 하기 위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일을 부끄럽도록 여기게 하는 이 어마어마한 폭력에 공조하고 있다는 사실. 수천년 동안 인류가 반복해온 폭력의 일부일 뿐이므로, 물론 어린이집을 추궁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우리는 얼마나 간단하게 본성을 억압하며 그럼에도 아직 저렇게 춤추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강인한가? 

아이 입에서 다시는 “챙피해” 라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가 고안해 낸 대응은 아이가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위해 옷을 벗을 때마다, “아 예뻐” 하며 엉덩이에 뽀뽀를 해주는 일이다.

물론, 어려운 실천은 아니었지만, 종종 응가냄새가 모락모락 풍기는 엉덩이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주는 일은 감히 부모가 아니면 하기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렇게 냄새나는 엉덩이에 뽀뽀해주기가 2개월쯤 되서야 다시는 아이가 “챙피해”란 표현을 잊게 되었다.

그 대신 엉덩이가 드러나기만 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엉덩이를 들이대며 뽀뽀를 강요해서, 비위 약한 우리 엄마나 언니가 당황해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 2006년 5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1인 시위를 하는 칼리와 엄마. 칼리는 턱받이앞뒤에 " 모두가 함께 원하면,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라는 구호로 시위에 동참했다.
 

나는 진보일까?

생애 초기부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가정과 사회에서의 훈육 속에서, 재단된 가치 속에 억압당하고, 사회화, 물질화의 딱딱한 갑옷 속에 갇혀버렸던 정신의 힘, 감성과 직관을 되살리는 것. 희완과 내가 만나서 단숨에 의기투합하고, 인생을 함께 할 화두로 공유하며 서로를 일깨울 수 있었던 주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내게 추궁해왔던 그 ‘진보’라는 물음에 굳이 답한다면 나에게 진보란 괴로운 현실을 희생과 인내로 견디면서, 가부장적 지도자 밑에 스스로를 계보화, 서열화 하고, 내일의 혁명이 한 큐에 이뤄줄 해방 세상을 위해 오늘의 내 삶을 가열찬 투쟁을 위해 바치는 것은 아니다.

진보는 하루하루 깨어있는 정신으로 개인의 자유와 행복과 아름다움과 평화를 억압하는 모든 조직적 음모와 프로파간다에 저항하면서 매일 더 싱그러운 하루를 내 삶에서 피워내는 일이다. 물론 이것도 치열한 일상의 투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금 내 삶에서 바로 실천되고 향유되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이 전자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회적 토대를 바꾸는 실천을 함께 해가는 과정은 이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드물게 아름다운 작업이다. 그러나 집단의 질서가 어느새 폭력화, 보수화하지 않기 위해서 우린 매일 조금씩 좌로 회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는 이 순간에도 오른쪽으로 계속 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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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치열한 관심과 애정으로 저의 애매모호한 글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탱해 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로 저의 괴롭고도 흥분되던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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