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압 없이 불가능한 '거대한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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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03일 0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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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들은 무엇이든지 주장할 수 있다. 단 그 주장의 근거는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더우기 정부 차원의 공식 보고는 한발 더 나아가 최대한의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일부의 주장에 의존하지 않아야 하고, 과장하지 말아야 하며, 공인된 근거에 기초하여 분석하여야 한다. 그것이 정부라는 ‘국가’기관의 위치이며, 이것이 무시될 때 정부의 공신력과 국가라는 공동체의 자존심이 훼손되고 만다.

    지난 4월30일 국책연구기관의 ‘한미FTA의 경제효과 분석’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은 보고이다. 더 나아가 학문적 주장의 근거조차 없어 ‘조작’이라 해야 마땅한 보고이다. 이 보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미FTA로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가정과 무역수지에 있다.

    생산성 증가라는 또 한번의 외부 쇼크로, 원래 0.32%(표준분석 결과)였던 경제성장과 고용을 6%(정부는 10년간 연평균 0.6% 주장)와 33만여명 고용 증가로 뻥튀기했다. CGE 모형에서 나왔던 42-73억불의 대미 무역수지 악화는 매년 4.63억불 개선되는 것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 4월 30일 발표된 국책연구기관의 <한미FTA의 경제효과 분석> 결과.
     

    ‘한미 생산성증대협정’으로 탈바꿈한 ‘한미자유무역협정’

    과연 한미FTA로 생산성이 증대한다는 가정이 타당할까?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는 ①인과관계를 혼동하고, ②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③중복 계산되었고, ④수치 조작에 해당한다.

    국책연구기관이 사용하는 분석은 CGE이라는 모델이고 GTAP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계산된다. 굉장히 생소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보통사람도 1시간 정도만 공부하면 대충 한미FTA 효과를 분석할 수 있게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단, 비싸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한미FTA로 인한 정책변화(관세 감축)를 클릭하면 그에 따른 무역, 생산, GDP, 후생 등의 결과가 계산되어 모니터에 뜨게 된다.

    그래서 첫 번째 할 일은 한미FTA에 따른 정책변화(정책변수)를 주입하는 것이다. 한미FTA가 ‘자유무역’협정이니 이 협정으로 일어나는 주요한 정책변화는 관세감축이다.

    그런데 국책연구기관은 한미FTA를 ‘생산성증대’협정으로 탈바꿈하여, 관세감축에 따른 효과에 더하여 1% 정도의 생산성 증가를 추가적 정책변화로 주입하여 결과를 계산하였다. 한미FTA가 한국의 생산성 1%정도를 증대시키는 협정이 된 것이다. 물론 한미FTA에 그런 내용은 전혀 없고, 생산성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협정은 가능하지도 않다.

    관세감축을 통해 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정책변화가 아니라 정책효과(과정이나 결과)이다. 한미FTA에 따라 다양한 법령이 개정되기 때문에 그 변화에 따라 생산성이 증대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생산성 증대는 법령개정이라는 정책변화에 따른 정책효과에 불과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생산성 증대를 한미FTA 경제효과 분석의 ‘원인’으로 계산하는 것은 정말 무지막지한 계산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계산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마어마한 수치가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중복 계산된 효과

    보다 합리적인 계산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미FTA로 인한 관세철폐, 법령 개정에 따라 발생하는 생산성 변화를 ‘과정’으로 내생화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생산성증대가 정책변수가 아니라 중간경과로 포착된다. 이를 위해서는 개선된 모델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 국책연구기관의 능력으로는 이런 모델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혹여 만들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책연구기관들은 한미FTA로 생산성이 증대하는 근거를 한미FTA로 인한 수입 증가와 외국인 투자 증가에서 찾았다. 구체적으로 수입이 1% 증가하면 생산성이 0.19% 증가한다는 것이다. 언뜻 봐도 무리한 가정이다.

    수입증가가 생산성을 증가시키기만 한다면야,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은 확실하다. 모든 나라에 대해 관세를 즉시 철폐하여 수입을 대폭 확대하는것이 경제성장의 지름길이다. 그러면 즉각 생산성이 증가하여 최소 10%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으니 말이다.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면 생산성이 증대한다는 가정은 그럴듯해 보이나 실증분석은 여러 가지 상반된 결과는 낳고 있다. 학계에서는 수입과 외국인투자 증가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창 논쟁이 진행 중이고 어느 쪽도 우위를 점했다고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증가시킨다는 실증분석과 그렇지 않다는 실증분석이 나란히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혹시 일부 ‘학자’가 한 편의 주장을 이용하여 한미FTA로 생산성이 증대하여 GDP가 엄청나게 상승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 공식보고가 그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양쪽의 주장을 모두 소개하고, 각각의 가정에 의해 상반된 결과가 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보여 주어야 한다. 정부는 최대한 객관성과 공신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표준적 분석에 의해 나온 0.32% GDP 상승에 이미 생산성 증가효과가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0.32%라는 수치에는 수입증가에 따라 부품 등 수입재 가격하락, 경제구조의 효율화 등 생산성 증대효과가 이미 반영되어 있다. 이 수치에 또 다시 생산성 증가라는 외부쇼크를 가하는 것은 명백하게 생산성의 중복 계산이다.

    1%, 1.2% 생산성 증대라는 ‘찬란한’ 실수 혹은 조작

    지금까지의 이론적 문제점을 모두 차치하더라도, 국책연구원들은 그것이 실수이든 조작이든, 아주 단순한 오류를 또 다시 범했다. 이 오류로 인해 GDP 4%가량이 잘못 계산되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제조업의 생산성이 1.2%p 증가한다고 가정하였는데, 그 수치를 도출한 근거 자체가 왜곡되었다.

    작년 3월 KIEP는 이번에 적용한 1.2%의 근거를 밝힌 바 있다. 한미FTA로 수입이 6.2% 증가하고, 수입 1% 증가마다 생산성이 0.19%증가(산업연구원 2000년 자료 원용)한다는 가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보고에 따르면 수입은 총 1.6%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작년 보고에 비해 수입이 4.6%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생산성 증가분은 0.19×1.6=0.3%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된 것은 수입 증가율을 되도록 적게 잡아야 무역수지 악화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6.2% 수입증가에 기초하여 계산한 1.2%라는 수치는 그대로 사용하였다. 도대체 왜 이런 무리를 한 것일까? GDP 3%(무려 20조원이 훨씬 넘는 수치이다)까지 좌지우지하는 생산성 증가분 0.9%가 부풀려져서 11개의 국책연구원 명의로 보고서가 나온 것이다.

    하도 많이 변명을 하다 보니 근거도 여러 가지이다. 작년에 KIEP 보고에 대한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자, KIEP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보완하기 위해 한미FTA로 1.15%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보고서를 급조해서 펴낸 바 있다. 그리고 그 근거 역시 한미FTA로 인한 수출입의 증가에서 찾았다.

    이 보고서의 모든 중복 계산을 무시하고 이것을 근거로 하여 환산하더라도 생산성은 최대 0.7% 증가할 수 있다. 이 두 번째 근거를 따를 경우에는 0.5%의 생산성이 부풀려진 것이다.

    서비스업 1% 생산성 증대 가정은 더욱 가관이다. 한미FTA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미국의 연평균 서비스업 생산성 증가율을 한국 서비스업의 생산성 증가분으로 계산한 것이다. 도대체 미국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과 한미FTA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또한 이들의 억지를 받아들여 ‘저 신비스러운 자유무역’으로 인해 한국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증가한다면 한미 FTA의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의 서비스업도 생산성이 증가한다고 추론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는 독야청청 한국만 생산성이 증가한다. 뚜렷한 목표를 먼저 세워 놓고 거꾸로 자료를 만들지 않고서는 이렇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엉터리 보고를 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대미 무역수지가 개선과 GDP 6% 증가는 양립 불가능한 자가당착

    작년 보고와 달리 이번에 대미무역수지가 개선되는 것으로 보고된 이유는, 무역수지 계산에 있어 CGE 분석방법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실물경제 모형인 CGE 모형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GDP, 고용 등 효과는 CGE분석으로 보고하고 무역만 다른 계산을 통해 보고있는 것이다.

    FTA를 맺으면 관세철폐 -> 수출입 증감 -> 생산 증감 -> GDP, 고용 등의 경제효과가 동시에, 또는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CGE 분석에 있어 첫 번째 경로인 수출입 효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GDP 증가(6%), 고용 증대(33만명)효과도 신뢰할 수 없다. 즉, CGE 분석에 따른 무역효과를 인정하여야만 다른 효과 역시 인정될 수 있는 데, 국책연구원은 스스로 자기부정을 한다.

    만일 정부보고대로 대미 무역수지 및 대세계 무역수지가 진정 6.3억불, 195.7억불 개선된다면, 무역수지와 연계되어있는 생산-GDP-고용 등 역시 그 무역효과에 기초해서 재계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역수지는 다른 방식으로 추정해 6.3억불 증가한다는 것으로 보고하고 GDP와 고용 등은 완전히 별개로 보고하는 것은 통계의 일관성이라는 초보적인 자세 조차 저버린 것이다.

       
    ▲ 지난 4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한미 FTA타결에 대한 상세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청와대)
     

    국책연구기관의 비애

    나는 우리의 국책연구기관이 이렇게 엉터리 보고를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의 명시적인, 또는 암묵적인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국책연구기관들은 아직 독립적이지 못하다.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내 놓기 위해 서로 조화되지 않는 내용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되도록 좋은 수치를 보고하여야 하다. 나는 이 보고서에 배어 있는 국책연구기관들의 비애를 읽는다. 이 보고서를 보면서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것을 또 한번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를 포함한 영향력 평가팀의 CGE 모델 분석 결과는 (KIEP의 모든 비현실적 가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미FTA로 GDP가 결코 0.5%이상 증가할 수 없고, 발생한 실업이 완전히 해소된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실제의 고용효과는 0에 가까우며, 의약품, 지적재산권, 세제 변경 등으로 인해 국민부담은 GDP 증가분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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