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양당체제, 1% 가능성에 도전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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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04일 08: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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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후회할 일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게다. 나 역시 후회하는 일이 더러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금방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러나 나이 먹어 가고 인생의 일회성(一回性)을 실감하면서 조금은 진지하게 후회가 되는 일이 있으니 36년 전에 자연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사회과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던 선택이다.

학과 중에서 물리와 생물에 심취하였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자연과학을 공부해보고 싶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나는 아직도 ‘과학자’에 대해서는 소년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과학이 인류를 구제할 것이라’는 믿음도 여전하다.

2007년 4월 24일, 대전을 가는 마음은 설레었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소들, 그 안에서 실험과 관찰, 그리고 새로운 발상과 시도를 거듭하면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이라는 창조적 노동에 몰두한 과학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사회는 창조적 두뇌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공공연구기관들의 공공성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이란 나라가 이만큼 발전하는 데는 과학기술자들의 공이 컸다. 우리나라의 현재 과학 기술 개발 능력의 세계적 위상은 대체로 경제 규모의 순위와 비슷한 세계 10위권이라고 한다. R&D 예산 규모나 연구 인력이나 연구 성과, 국제 과학저널에 실리는 논문 수나 특허 건수 등에서 모두 그런 수준이니 대단한 성취다.

특히 기업들의 연구 개발 능력은 크게 늘었다. 연구개발 투자비를 기준으로 보면 76% 정도가 기업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연구 개발은 단기적인 경제적 성과에 치우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초, 원천, 중장기, 대형 연구 프로젝트는 공공연구기관에서 감당해야 한다. 공공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공공연구기관의 공공성이 위협받고 있다. 공공연구기관은 경제성이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면 연구를 해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관료들의 지배에 더하여 자본에의 종속이 심해졌다. 특히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1996년부터 시행된 이후의 변화들은 심각하다.

공공연구기관을 자본주의 질서 속으로 밀어 넣는 PBS는 폐지되어야 한다.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 출연금을 줄이고 각자 민간으로부터 연구 과제를 수주하여 성과를 내라는 PBS는 결국 당장 돈 되는 연구, 기업과 시장이 요구하는 연구만 하라는 이야기다. 공공연구기관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

고영주는 작년에 다시 과학기술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아 정책위원장 최영섭 등과 함께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실태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는 27개 기관의 총원 19,967명 중에서 비정규직이 무려 9,479명으로 47.5%에 달했다. 이 나라 청소년들의 과학자의 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 언론들도 ‘이공계 기피 현상’을 큰 목소리로 걱정한다. 포항 공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 의과대학에 편입했다는 이야기나 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은 학생이 뒤늦게 사법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다. 조만간에 기초 과학이 사라지고 기술 개발이 안 될지 모르고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야단이다.

그러면서 정작 과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다. 학문이 좋고 과학이 좋아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직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고용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세상 물정에 밝고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에 능한 자본주의적 인간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

점수 높은 학생들이 곧 우수한 학생인지는 모르지만 성적 좋은 학생들이 법대, 의대로 몰리는 현상은 나라의 병이다. 그건 대한민국 사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병들 중의 하나다. 불필요한 과잉 경쟁 속에 창의적, 비판적 사고력이 없는 붕어빵 학생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한계로 인하여 한국 경제의 발전은 한계에 도달했다.

제대로 된 과학 교육이 나라를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에게 가장 큰 사상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동물행동학자 최재천이다. 그는 나보다 불과 한 살 많다. 그러나 그가 쓴 글과 번역 소개한 책들로 인하여 나의 인간 이해와 학문은 깊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이 과학적 마인드를 가지면 보다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과학 교육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나는 과학교육을 받으면서 과학의 정신을 배웠다. 항상 인내심을 가지고 선입견과 편견이 없이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자세로는 이 나라에 살기가 불편했다.

우리 세대는 과학을 배웠지만 과학의 정신, 데까르트-뉴턴의 철학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교육은 과학적 정신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미국 유학을 통해서 길러진 인재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적 식민지로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4. 25 재보선, 대전 서구을 선거구에서 심대평이 당선되었다. 민선 충남지사를 세 번이나 했으니 대전 충남 지역에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분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후보와의 표차가 너무 커서 의외다. ‘충청의 자존심 심대평’이라는 슬로건을 바라보는 심사가 복잡하다. “뀡도 먹고 알도 먹고 싶다”는 백성들의 마음인가?

   
  ▲ 국내 최초로 도입되었던 슈퍼컴퓨터 CPU 옆에서 선 김광호 공공연구노조 부위원장과 기세춘 선생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자가 된 한학자 기세춘

대전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기세춘 선생, 72세, 그는 드물게도 ‘묵가(墨家)’였다. 어려서는 서당 훈장이신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으니 당연히 공맹(孔孟)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청년기 이후 묵자에 심취했다. 묵자는 동양의 예수라고 불리는 사람, 노동자들에게 절대 평등의 사상, 평화의 사상을 가르친 위대한 스승이다.

이상한 일은 유가와 더불어 가장 두드러졌던 묵가가 한나라 이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기세춘 선생은 <장자>의 ‘크게 각박하다’는 비판을 상기시키며 “지나친 원칙주의에 그 원인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진단한다. 근검절약과 자기희생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 심성에 영합하지 않고 대중이 실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묵가의 비밀 결사에 가까운 전위조직 노선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노장 사상이 불로장생을 꾀하는 신선술과 결합하여 도교라는 일종의 민간신앙, 대중 종교로 발전하여 크게 세력을 떨치고, 마침내 당나라 때 도교가 국교로 되면서 오늘날까지도 중국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과 비교된다.

4월 22일, 중국 당국도 <도덕경>에서 조화 사회 건설의 지혜를 찾겠다고 ‘도덕경 국제포럼’을 열었다. 13년 만에 만난 기세춘 선생이 노장(老莊)을 연구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그는 더 민주주의자가 되고 더 급진적인 평등주의자가 된 것이다. 유학자들이 왜곡해놓은 원래의 단순명쾌한 뜻을 밝혀 <장자>를 번역하였다.

1%의 가능성에 도전한 사람들

소선거구제와 그에 기초하여 정착되어 있는 자유/보수 양당 체제는 100년 전의 미국과 영국이 같았다. 사회주의에 대중의 관심이 크게 없는 문화적 조건도 비슷했다. 그런데 미국사회당은 사라졌고 영국노동당은 노동/보수 양당 체제의 한 축이 되었다. 우리가 영국노동당이 될 확률은 1%이고 미국사회당이 될 확률은 99%다.

그러나 우리는 1%의 가능성에 도전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1%의 가능성에 도전했던 사람들, 선재규는 민주노동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하고 있었다. 김양호와 박종갑은 대전교도소에 있었다. 연제찬, 선창규, 2000년 총선 유성구 후보였던 이성우도 건재했다. 특히 김문창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하면서 배농사도 짓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맨발 등산을 해서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수치를 모두 정상으로 돌려놓은 김문창은 몸만 건강해진 것이 아니다. 마음도 건강해지고 시야는 넓어지고 생각은 정리되고 깊어지니 주위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해졌다. 그가 체득한 “맨발로 걸으면 산다”는 자연주의 건강 철학은 노장사상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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