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쟁점들이 은폐된 하이닉스 논쟁
        2007년 05월 01일 1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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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과 경제, 지역 균형과 수도권 집중, 그리고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 세력 간의 대결이라는 우리 사회의 전형적 갈등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증설 논란이 정부의 이천 공장 증설 불허 결정에도 불구하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하이닉스 측이 본사가 있는 경기도 이천공장 부지에 구리공정을 사용하는 12인치 반도체 웨이퍼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자 한 계획을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부지는 수도권 2천 3백만 명의 상수원인 팔당호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환경정책기본법상 특별대책지역Ⅱ권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납·수은·페놀 등과 함께 특정수질유해물질 19종에 포함되어 있는 구리 폐수가 발생하는 반도체 공장은 신·증설이 불가능한 장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대규모 공업용지 조성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천공장 증설 안되는 줄 알면서 밀어붙인 배경

    하이닉스가 이런 법적 제한 사항을 모르고 계획을 제출했을 리가 없다. 정치권, 정부 내 경제부처, 그리고 언론 등 막강한 우군의 힘을 믿고 일단 밀어붙여 본 것이다. 때맞춰 한나라당은 1월 25일 수질환경보전법개정안을 발의하고 경기도지사와 함께 하이닉스 공장 배출수 마시기 등 여론 형성을 위한 노력을 전개 했다.

       
      ▲ 환경운동 연합에서 한나라당의 수질환경보전법개정안을 발의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은 정부에 의해서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환경부의 완강한 반대도 있었지만 특히 참여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균형발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계획이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개됨으로써 청와대로 하여금 물러설 수 없게 만든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논점이나 정치행위들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성찰이 없는 한 유사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고, 그때그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결정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하이닉스 측은 정부의 결정을 수용하는 태도로 청주공장 증설을 우선 추진했지만, 이천공장 증설 문제를 여전히 향후 과제로 남겨 놓았다. 동시에 반도체 산업의 국제경쟁력 문제를 내세우면서 알루미늄 공정으로 되어 있는 기존 이천 공장의 반도체 공정을 구리공정으로 전환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관심의 초점은 단연 정부의 태도이다. 1차 증설 공장을 청주로 돌림으로써 어느 정도 체면을 세운 정부가 요즘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국제경쟁력 문제를 내세우며 달려드는 하이닉스 측의 요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이닉스 논쟁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중요한 것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이 온갖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에 따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부의 결정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하이닉스 논란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하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환경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구리에 관한 문제이다. 경기도와 일부 정치인들은 구리가 인체를 구성하는 필수 성분 중 하나라는 점을 들어 하이닉스 공장 폐수가 오히려 수도권 주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굴었다.

    구리가 인체의 필수 성분인건 맞다. 하지만 기준치를 넘어서면 독이 된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특히 해양 생태계에는 치명적이고 인체에도 매우 유해하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먹는 물에 대한 구리의 허용 기준치를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이 구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논란에서 구리 한 가지 기준 만을 가지고 버틴 환경부의 용기는 높이 사야겠지만, 다른 한편 반도체 공장에서 구리 외에 발생하는 여러 독성 화학 물질에 대한 체계적 정보와 관리 정책이 없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반도체 칩 생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야인 6인치 크기의 웨이퍼 하나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화학 물질이 무려 9kg에 달한다고 한다.

    구리보다 심각한 오염물질 배출하는 반도체 생산 공정

    예를 들어 얇게 잘라낸 웨어퍼에 회로 디자인을 그려 넣는 에칭(etching) 과정과, 미세 오염 물질 제거를 위한 세정 과정에 엄청난 양의 유기용제 솔벤트와 산화 용액이 사용 된다. 이 유기용제 솔벤트는 토양에 쉽게 스며들어 지하수나 하천 오염을 유발하는데 해양 생태계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치명적인 발암물질이다.

    올해 2월에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이런 걱정이 절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005~2006년에 걸쳐 중국, 태국, 필리핀, 멕시코에 위치한 인쇄회로기판(PWB), 반도체 칩, 그리고 전자 부품 조립 공장 배출수와 주변 지하수 검사를 통해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의 경우 지하수 검사에서만 여러 종류의 독성 유기용제 솔벤트와 발암물질인 트리할로메탄(THMs), 그리고 금속물질인 구리, 아연 등이 허용 기준 이상으로 검출되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반도체 공장에서 구리보다 더 치명적인 유해 물질들이 배출된다면, 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만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청주, 수원 등 다른 지역 반도체 공장의 환경실태에 대한 조사와 대책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 반도체 광고
     

    2천3백만 수도권 주민이 아니더라도 지하수를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 주변 주민들의 건강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가 하이닉스, 삼성 등 기존 반도체 공장의 토양, 지하수 및 주변 하천 조사를 통해 포괄적인 화학물질 오염 실태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관리 대책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급속한 기술 및 시장 변화로 인해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이 투입되기 때문에 미국 환경청 같은 기관조차 제대로 된 규제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처지이고 보면 우리의 현실은 자못 막막하기까지 하다.

    칩을 위한 것이지 노동자 보호 위한 것이 아니다

    한편 반도체 공장이 이처럼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을 사용한다면, 실제 공정에 투입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떠할까. 이번 하이닉스 논란의 직접적인 이슈는 아니었지만 반도체 산업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이슈가 바로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문제다.

    TV에서 비춰지는 반도체 공장의 이미지는 매 6초마다 공기를 여과하는 클린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얗게 둘러싼 일명 ‘토끼복장’으로 상징되는 청정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최소 100단계 이상의 복잡한 공정에다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물을 필요로 하는 자원 집중형 산업이다.

    특히 클린룸 공정은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노동자들이 착용하고 있는 ‘토끼복장’은 체모, 피부, 땀으로부터 마이크로 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다.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이 중공업 노동자들에 비해 치명적인 산업재해가 적다고 하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보고에 따르면 2001년 전체 생산직 분야의 노동력 완전 상실 수준의 산재 발생률이 6.3%이고 전자산업의 경우는 9.5%인데 비해 반도체 분야는 1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성 화학 물질에 노출됨으로써 암 발병 비율도 높을 뿐 만 아니라 핵심 노동력인 젊은 여성의 경우 유산 등 출생 장애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직업병 연구들이 진행되어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심각한 산업 재해 현실이 밝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노동 현실은 수출 주도산업, 첨단 클린 산업이라는 상징에 가려진 채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경쟁력 이데올로기로 국민건강 무시하는 지배엘리트 동맹

    마지막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 주요 정책 결정과정을 쥐락펴락하는 지배엘리트 세력의 강고한 동맹에 관한 것이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은 비록 그것이 국민의 건강 및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 관철에 장애가 된다면 ‘국가 경쟁력’,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같은 무기를 앞세워 거침없이 그 장애를 제거하려 한다.

    다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이들 거대 기업의 곁에는 항상 정부 내에서 가장 힘이 센 경제 관료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 수요자의 요구에 언제나 맞춤형으로 지식을 판매할 준비가 된 전문가, 그리고 국민 여론을 좌지우지 하는 언론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여론을 넘어서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이들 지배엘리트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과 저항 없이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더 전진할 수 없다는 관점을 이번 하이닉스 문제를 읽는 잣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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