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잡종인 나는 항거한다
    2007년 05월 01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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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대 학살 사건은 한국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특히 국내 거주 외국인이나 혼혈인 문제에 대해 여러 진단과 제안이 있었다. <세계일보>는 「버지니아 비극 타산지석 삼아야(4. 21)」라는 기사와 「‘다민족 사회’, 코리아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했다. <오마이뉴스>는 「조승희 그 후」라는 시리즈의 취지를 “우리 안의 인종주의와 이주민과 함께 살기 위한 정책 대안”을 다루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버지니아대 학살 사건이 터질 즈음 한국 대법원은, 작년 결혼한 여덟 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이고, 3년 후면 ‘코시안’ 학생이 1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4월 16일자 <문화일보> 사설은 이렇게 말한다.

“헌법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국민’을 규정하고 있고, 제11조만 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 그 대의를 강조하면서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금하고 있는 것부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판례와 해석을 통해 인종간 차별을 금하고 있지만 적어도 헌법 명문이 좁은 시각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한국민의 인식 차원이 앞으로 더 세계화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 우리 시각이다.” – 「다인종시대의 가정문화를 생각한다」

이처럼 교훈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 ‘외국 사람과 더불어 살기’를 싫든 좋든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지표는 적지 않다. 아래 설문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렵지만, 매우 놀라운 지표임은 분명하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피부색이 다른 국내 태생’을 ‘한국인’으로 생각하는 반면, 97%나 되는 사람들이 ‘한국어 못하는 동포’를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이른바 민족 관념이라는 것이 국적 속인주의, 즉 혈연적 민족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 표.「국내도 외국인 100만 명 시대 ‘순혈주의’ 의식 바뀌고 있다」, <세계일보>, 4. 24  
 

그런데 1년 전인 2006년 4월 27일자 <로동신문>에는 남한 사회의 이런 현상을 준엄히 꾸짖는 논평이 실렸다. 길게 인용해 보겠다.

“최근 남조선에서 우리 민족의 본질적 특성을 거세하고 ‘다민족, 다인종사회’화를 추구하는 괴이한 놀음이 벌어지고 있다. 이 소동의 연출자들은 …‘폐쇄적인 민족주의 극복’이니, 미국과 같은 ‘다민족국가의 포용성과 개방성’이니 하는 황당한 설을 들고 나오고 있다.

…민족적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하는 말그대로의 망동이 아닐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남조선의 친미사대매국세력이 운운하는 ‘다민족, 다인종사회’론은 민족의 단일성을 부정하고 남조선을 이민족화, 잡탕화, 미국화하려는 용납 못할 민족말살론이다.

…‘다민족, 다인종사회’론을 제창해나서는 남조선의 친미매국세력은 민족관과 사회력사발전에 대한 초보적인 리해조차 없는 것은 물론 한쪼박의 민족의 넋도 없는 얼간망둥이들이다. 단일성은 세상 어느 민족에게도 없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민족의 영원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위한 투쟁에서 필수적인 단합의 정신적 원천으로 된다.

…온 겨레가 힘을 합쳐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고 단일민족의 존엄과 위용을 높이 떨치자고 하는 때에 남조선에서 민족부정론, 민족말살론이 나왔다는데 보다 엄중한 문제가 있다. 지금은 북과 남이 60여 년 간의 분렬을 끝장내고 민족의 구조적인 단일성을 확립해가는 자주통일시대이며 이 시대의 대세는 ‘우리 민족끼리’이다.

‘다민족, 다인종사회’론은 이 시대의 기본리념을 거세하는 독소이고 반통일론리이다. 남조선에서 겨레의 지향에 배치되는 반민족론이 제창되는 것은 명백히 북과 남을 혈통이 서로 다른 지대로 만들고 6.15통일시대를 가로막으며 민족을 영구분렬시키려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족속들의 범죄적인 기도와 미국의 배후조종의 결과이다.

남조선에서 제기되는 혼혈인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남조선에 대한 군사적 강점의 산물이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을 끝장내기 위해 미군철수의 기치를 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것을 사회화하려 하고 있으니 얼마나 쓸개 빠진 자들인가.

   
  ▲ 북한의 아리랑 축전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저버린 나머지 우리 민족의 혈통마저 흐리게 하고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는 사대매국세력의 반민족적 책동을 단호히 배격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민족을 지키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애국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 – 최문일, 「‘다민족, 다인종사회’론은 민족말살론」, <로동신문>, 2006. 4. 27

물론 북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와 다르다. 김정일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내세우는 민족제일주의는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습니다. 민족의 우렬을 생물학적인 인종적 특징에 따라 규정하는 것은 반동적인 부르죠아 인종론입니다(「조선민족제일주의를 높이 발양시키자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 대상 연설」, 1989년 12월 28일).

하지만, 이런 공식 입장과는 달리 북한 정권이 외국인과 국제결혼 문제에 대해 대단히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작년 5월 17일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북측 김영철 단장은 국제결혼이 빈번한 남한 농촌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우리 나라는 하나의 혈통을 중시해왔는데 민족의 단일성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잉크 한 방울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깨끗하지 못하면 좋지 않다. 혼탁하게 살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북한 정권식 순혈주의는 남한에도 적지 않게 퍼져 있다. 6.15청년학생연대의 「우리민족제일주의 학습교재(2004. 12)」는 “조선의 시조 단군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하나의 핏줄로 이어진 단일민족 …민족의 징표, 핏줄의 공통성”이라고 웅변한다.

국내 최대 산업노조 위원장이 노예제 지배 왕조의 문장(紋章)이었다는 삼족오를 상징 마크로 쓰고, 남북노동자통일대회가 국제노동절을 대체하고, 그 행사에 “우리민족 최고” 구호가 내걸리는 이 때에 북방계 몽골로이드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쌍꺼풀이 있는 잡종으로서, 나는 항거한다.

   
  ▲ ‘태양민족’이니 ‘FTA강국’ 따위의 지배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혼혈은 미제 강점 때문인가? 한 마디로 미친 소리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국계 혼혈인은 약 5,000명으로 아시아계 혼혈인보다 훨씬 적다. 주한미군은 3만 여 명이고, 국내 거주 외국인은 100만 명에 육박한다. 세상은 미군과 ‘조선 민족’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다민족, 다인종 사회론은 미국과 한나라당의 음모인가? 두 말할 필요 없이 미친 소리다. 한국으로 이주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이 CIA 간첩인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하여 동남아와 중앙아시아의 노동자들을 받아들인 정부가 한나라당 정권인가? “이주민과 함께 살자”고 주장하는 <오마이뉴스>는 ‘반통일 친미매국세력’인가?

한국에서 외국인의 유입과 거주, 정주(定住)와 혼혈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첫째, 결혼 적령기 남녀 성비 불균형, 둘째, 3D 저임금 노동시장, 셋째, 국제교류 증가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 성비가 균형을 되찾고, 저임금 업종의 임금을 높이더라도 외국인 유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오고가는 것을 막을 방책 같은 게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거주민은 한 혈통인가? 한반도 거주민의 유전적 형질 동질성이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신화를 증명하기 위해 믿을만한 조사가 있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다수의 북방계와 소수의 남방계, 중국계 귀화 혈통이 한반도에 공존한다는 연구 보고가 훨씬 많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시집 온 허황옥은 후손을 남기지 않았을까? 고려 가요 「쌍화점」에 나올 정도로 염문을 뿌렸던 아랍 상인들이 한반도에 아무런 유전적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줌마 파마 한 것도 아닐진대, 김정일 위원장의 곱슬머리는 대체 어디서 온 피란 말인가?

아랍에서 유래한 소주를 민속주 삼고, 몽고군의 군견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만리타향에서 건너온 고추 없이는 못사는 사람들이 순혈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컬럼부스가 스페인으로 돌아온 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매독이 전파되는 데는 불과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2만 km를 면면히 이은 인간 교류의 대장정, 위대하지 않은가? 어떤 문물의 전파 속도보다도 빠른 그 속도, 놀랍지 않은가? 사람은 애초에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종자고, 문화든 언어든, 유전자든 섞이면서 발전한다는 것이 인류사의 진실이다.

혈연적 순결성을 고수하는 것이 한반도 민족국가의 건설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도 허무맹랑하다. 베트남, 예멘, 독일이 혈연적 순결성을 고수하여 통일되었다는 따위 학설은 농담으로도 들어본 적 없다.

북한과 남한의 전투적 민족주의자들은 “애국심이란 단지 여기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는 신념”이라고 갈파한 버나드 쇼의 가르침을 경청해야 한다.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정의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어 전적으로 정당하다.

조선 왕조의 궁궐을 불태운 것은 침략한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 인민이었다. 한반도 거주민 사회의 평화적 통합은 ‘태양민족’이나 ‘FTA강국’ 따위 해괴한 지배이데올로기를 극복할 때만 가능하다.

조지 부시는 앵글로색슨이나 아일랜드계이기보다는 인류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민족 순혈주의나 우리민족 제일주의는 선모충, 회충 같은 원시 선형동물과 인류가 공유하고 있다는 40%의 유전자로부터 기원한다.

나는, 민족 순혈주의나 우리민족 제일주의 같은 봉건 중국식 소중화주의가 한반도에서 꽃피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 나는, 나나 내 이웃이 개 돼지처럼 품종 개량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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