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 후보 본선 경쟁력은 얼마?
    By
        2007년 04월 28일 11:0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1. 4.26 재보선 결과가 민주노동당 대선에 주는 의미

    선거의 승패보다 선거 이후가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끌어온 4.25 재보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재보선의 투표율은 27.9%로, 지난해 10·25 재·보선때의 34.2%에 크게 못 미쳤다. 선거결과는 기초의원까지 포함해 무소속 당선자는 23명으로,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당선자를 낸 한나라당의 22명보다 많으며, 민주당은 7명, 국민중심당은 3명, 열린우리당은 1명, 민주노동당 당선자는 없다.

    2007년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치러진 이번 재보선의 결과에 대한 평가와 함의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우리의 선거가 대의제에 의한 정당정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사상 이례적인 ‘무소속’의 약진은 제도정당의 패배이며, 이것은 유권자들이 느끼는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제도정당정치의 패배는 핵심적으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패배이다. 즉, 이것은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중요한 영향력이 되지 못하는 조건하에서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이 50% 정도를 줄곧 유지하고, 이명박-박근혜 대선후보 지지율의 합이 70%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조건하에서, 이번 한나라당의 결과치는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의 등장은 반한나라당-비열린우리당이라는 조건 하에서 전근대적인 ‘지역주의적 투표행태’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계량적 수치로만 보면, 민주노동당은 당선자는 1명도 없는 조건하에서, 당의 후보들은 당 지지율을 훨씬 웃도는 평균(출마지역만의 중간 값) 16.58%의 득표율을 보였다는 점에서 분명한 선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당 정체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소극적 지지의 의미인 집권여당과 제1야당에 대한 저항적 투표행태의 반사이득인지 아니면, 후보자들에 대한 개인적 정체성에 대한 반영의 결과물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번 결과가 다가오는 대선을 긍정적으로 전망해주는 ‘추세적 지표’인지 아니면 ‘예외적인 지표’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제도정치권의 패배, 즉 보수양당의 패배가 곧바로 다가오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또는 진보후보의 선전과 약진 그리고 그것의 본선경쟁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2. 본선경쟁력의 관건은 유권자들과의 소통, 신뢰, 공감 등 상호주관성문제

    문제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그리고 잠재적인 다른 진보 후보의 대선 본선경쟁력인데, 현재까지 이들이 보여주는 대선에서의 본선경쟁력은 후보지지율 기준으로 보면 후하게 3%내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후보의 본선경쟁력은 얼마나 될 것인가? 본선경쟁력 확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참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이 비전을 내세울 수 있는가 여부 혹은 어떻게 선전할 것인가 여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러한 것들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며, 이것이 어떻게 투표행태로 이어질 것 인가하는 후보-유권자간의 상호작용, 상호주관성, 인식, 이미지, 소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대선에서 진보의 본선 경쟁력의 관건은 진보-보수라는 도그마적인 이념성과 정파성의 구분이라기보다는 높은 이념과 정파성의 제단으로부터 내려와 보통 사람들의 생활 현장으로 얼마만큼 다가가 호흡하며 공감하며 신뢰받으며, 소통할 것인가 여부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간 민주화와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평화의 이름으로 거창한 구호와 주장이 숨가쁘게 쏟아져 나왔지만, 이런 이념과 구호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인간답게 가꾸는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하는 레토릭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의 이념과 구호가 저 높은 곳에서 울려 퍼질 뿐 시민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내려오지 않아 생활세계에 뿌리내리지 못했으며, 시민들이 ‘생활 속의 진보’를 표현하고 드러내게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가지 이유인데, ‘좋은 이념’의 강조가 ‘좋은 정치’를 자연스럽게 가져올 수 있다는 지나친 낙관, 그리고 특정한 이념과 독트린이 시민들을 이끌고 사회를 지도할 수 있다는 ‘계몽적 접근방식’이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말과 행위를 통해 드러내면서 형성되는 ‘생활세계의 진보’를 압살하였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드러나면서 교차되고 공감되는 가운데 형성되는 ‘생활세계’를 하나의 진리만을 강조하는 ‘이념세계’로 대체하려는 진리의 전제정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시대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주의는 대다수 평범한 중간층 유권자들에게 그리고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한나라당 등 기존 보수정당의 고정적인 지지층이었던 저학력, 저소득의 노동자 민중들에게 우리 사회의 경제적 격차, 교육격차, 정치적 자유의 격차, 그리고 희망의 격차를 메울 수 있는지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3. 왜 저학력 저소득의 노동자 민중은 보수정당을 지지해왔는가?

    결국 다가오는 대선은 진보 10년, 민주화 20년을 이어받는 ‘이념의 과잉’에 빠져있는 사이비 진보주의(?)세력 그리고 이념이 부실한 보수세력 사이의 팽팽한 경쟁전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념전과 정파전의 틈바구니속에서 민주노동당 정치의 초점이 얼마나 ‘생활세계’로 옮겨올 수 있는가가 사활적 관건이 될 것이다. 생활세계에 다가가는 이러한 ‘생활정치만’이 진흙탕속에서도 새롭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진보의 본선경쟁력을 차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과 후보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내의 NL과 PD를 잘 섞어 ‘자주’와 ‘평등’으로 잘 포장할 것인가 여부보다는 선거캠페인 때나 일상적으로 항상 본능적으로 전력투구하는 노동자-민중주의에도 불구하고, 당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야 하는 저소득, 저학력 빈곤층의 노동자 민중들이 왜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을 지지해왔는가를 적실성이 있게 해명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하나의 가설은 항상 ‘마음의 고향을 찾는’ 주대환이 김정훈의 글을 인용하면서 밝힌바 있다.

    “민주노동당의 정치 전략은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적이다. 대중에게 진리를 설득한다면 대중은 진리를 지지할 것이라는 엘리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민주노동당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서민의 당이 아니라 엘리트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진리를 전파하는 똑똑한 엘리트들에게 저소득, 저학력 노동자 민중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좋은 점수를 주고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증오하고 미워할 것인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