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맑스' 송태경의 당 침투 10년
        2007년 04월 26일 06: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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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국민승리21 마포 사무실을 찾아든 송태경의 몰골은 기괴했다. 그 비쩍 마른 몸피하며, 노회찬에 견줄만한 숫자의 머리 터럭은 그나마 봐줄만 하였으나, 제주 출신인 송이 서울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갖추어 입었을 내복은 외투 소매 밖으로 삐져나와 때가 꼬질거렸다. 60년대나 70년대 골목길에서 마주쳤을 어린 사내아이들의 옷소매가 마른 콧물로 번들거렸던 것처럼 송의 내복 소매는 찌든 때로 번들거렸다.

    “누구예요?” 송태경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귓속말로 묻는다. “제주 맑스.” “아, 그 사람!” 국민승리21에 모인 ‘메이저 운동권’ 사람 중에 송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단지,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자본론 강의 광고로 그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좀 놀았다’는 중고등학교 시절과 제주 독립의 웅지를 품고 투쟁했던 대학 시절을 뒤로 하고 송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상경했다. 물론 그 가방에는 『자본』 한글판 다섯 권과 영어판 세 권이 들어 있었다. 편도 비행기표와 함께.

    『자본』의 김수행 교수를 만나고,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의 이론가들을 만나고, 몇 년 후 경제민주화운동본부를 함께 만들 이선근을 만났다. 그런 경력의 ‘제주 맑스’가 국민승리21에 찾아든 것은 그 조직의 미래가 예의 운동권 조직과는 다를 것임을 시사하는 좌표였다. 국민승리21은 망하지 않고, 민주노동당으로 ‘발전적 해체’를 했다.

       
      ▲ 사진=민주노동당
     

    “97년 대선국면에서 정부가 IMF 차관 요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흘러나왔을 때 당시 국민승리21 뿐 아니라 진보진영 대부분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우리 입장을 발표해야 하는데 막상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논평을 쓰기 위해 그에게 찾아 갔을 때 그는 단번에 “나라 망하자는 것이죠, 노동자 다 죽어나갈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그 대답을 들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그에게서 IMF의 본질, 내부 구성과 정책, 다른 나라의 사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그의 강의를 꼼짝없이 들어야 했다.

    겨우 일어서면서 나는 확인하듯 물어야 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이거죠?” 논평은 8줄 짜리로 나갔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이재영 국장에게서 ‘송태경의 강의를 끊고 일어서는 방법’에 대해 별도 강의를 들어야 했고 그것은 그 뒤 많은 도움이 됐다.” – 박용진, 「쓰여질 당사와 만들어갈 미래를 위하여」, 2002

    이런 글을 쓰려면 송태경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의 글을 찾아 읽어 사실 확인도 해야 마땅하겠지만, 박용진에게 ‘송태경의 강의를 끊고 일어서는 방법’을 전수했던 나는 결코 송태경을 만나는 고난을 감수하지 않는다.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은 학생운동 출신들이 당에 들어와 기고만장해 하면 고참들은 송태경 옆 자리를 배정하여 장거리 출장을 보내곤 했다. 약효직방, 말도 적어지고, 고분고분 시키는 일도 잘 하게 된다. 어쨌거나 내가, 당기위원회에 제소되거나 징계받은 것도 아니니, 송태경을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송태경과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똥고집’이다. 민주노동당에 있으되, 민주노동당의 공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1997년 권영길 후보의 공약이 ‘재벌체제 해체’로 발표된 것은 전적으로 송태경 덕분이다.

    당시의 정책위원회에서 ‘재벌 해체’를 의결하였지만, 단 한 명의 반대자였던 송태경은 기자회견 발표 몇 분 전 내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기자회견문 파일에 ‘체제’를 집어넣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권영길 후보가 인쇄된 그대로 ‘재벌체제 해체’라고 읽은 것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이었던 황광우와의 사회주의 논쟁, 정책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 부유세 논쟁, 부동산 문제,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에서 송태경은 증세나 공공화,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듯이 비춰지는 입장을 취했다. 송은 반칙도 잘 쓴다. 대개의 민주노동당 정책 간부들은 송이 다수결에 따를 것이라거나 하루 이틀 뒤까지 합의를 지키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를 믿지 않지만 욕하지도 않는다. 비판하지만, 인간적으로 능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다수결 불복과 합의 번복이 단지 그의 이론적 소신 때문이지, 민주노동당 정파나 정치인들처럼 ‘뒷구멍으로 뭔가 챙기려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자유인들의 연합체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으므로, ‘사회주의자’들은 송태경을 일컬어 ‘신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라 칭한다. 제주 침탈의 본거지인 육지에 상륙한 송은 민주노동당에 침투해 10년을 지내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을 계도하며.

       
      ▲ 사진=민주노동당
     

    그 ‘똥고집’ 덕분에 민주노동당이 성장했다. 중앙당이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처럼 화끈한 정치 공세를 펴는 동안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들은 임대차 보호나 학교급식 개선 같은 지역 정책 사업을 펼치며 동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갔다.

    상가임대차 보호, 주택 임대차 보호, 대형마트 규제, 노동자 소유경영 참가, 이자제한법, 신용회복 지원 같이 ‘장사 되는’ 일거리의 아이디어, 정책 연구, 사업 기획, 사업 집행은 모두 이선근, 송태경, 임동현 등 경제민주화운동본부 활동가들의 작품이다.

    이런 조류의 사업이 민주노동당에 정착하는 데는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똥고집’과 사업 실적을 경험으로 확인한 지역조직들의 찬성만이 작용했다. 이런 사업이 최초로 제안됐을 때 ‘좌파’들은 ‘노동 중심성’과 ‘변혁 원칙’을 내세우며 반대 목청을 높였었다.

    단지 ‘개량주의’였던 정책위원회만이 경제민주화운동본부를 소극적으로 엄호해주었을 뿐이다. 실제에 있어 민주노동당은 경제민주화운동본부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저 방임했을 뿐이다.

    유럽 부자 나라 대사관의 임대차 상담까지 한 송태경은 정작 자신의 셋집이 쫓겨나는 것은 막지 못했다. 송이 점심 시간에 과자를 먹으면 어린 당직자들은 “송 실장님은 과자를 좋아하나 봐?”라고 저희들끼리 쑥덕였다. 그가 과자를 끊은 것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들인 집의 융자금이 어지간히 줄었을 때였다.

    나는 가끔 “당원도 아닌 사람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주는 당에서 이선근 같은 이들이 국회의원이 못 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정의를 보여 준다”고 말한다. 이 자리에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국책연구소라면 몇 억쯤 들여 두어 달쯤 걸리는 일을 사나흘 만에 끝내라 주문하고, 송태경의 철야 작업에 쓰였을 과자 두 봉지, 담배 한 갑 영수증을 처리해주지 않는 민주노동당은 딱 그만큼에서 멈출 것이다.

    좌파냐 우파냐, 진보냐 보수냐를 가르는 최고의 기준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나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 안팎의 여러 좌파들은 ‘빨간 생각’을 가지고 ‘빨간 말’을 내뱉되, 인민 생활을 단 한 치라도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당이나 조직 키우는 데도 별 한 일이 없다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의 ‘정통 좌파(情報通信 坐派)’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19세기 유럽 ‘까페 좌파’의 순혈한 적통이다.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송태경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좌파라 할 수 있다. 송태경이 어울리지도 않는 ‘실천 좌파’의 멍에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적 공산주의’를 설계하든,『자본 4』를 집필하든 원래 제 할 일을 하게 될 때 민주노동당이나 한국 사회주의 운동은 반 발짝 정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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