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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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26일 08: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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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거 먹고 너나 오래 살아라"

친구들을 만나 식사나 술자리를 같이 하다보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이것저것 음식에 들어있는 ‘나쁜 면’을 수다로 풀다가 종종 듣는 소리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딩크족(Double Incom, No Kids.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거나 혹은 자취생인 친구들은 대체로 외식이나 편리한 가공식품으로 거의 일년을 산다. 

"너나 좋은 거 먹고 오래 살아라"

아침은 안 먹고, 점심 저녁은 대체로 회사 근처 식당에서 때운다. 가끔 저녁이나 주말엔 배달시켜 먹거나 라면으로 때운다. 좀더 호사를 부리면 간편한 삼분요리나 가공식품을 이용한 간단 요리가 주다.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이라 자부하는 지인들의 식단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필자 역시 일이 많거나 혹은 귀찮거나 할 경우 대충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면은 나쁜 것들 투성이야, 사탕엔 적색2호 타르계 색소가 들어있단다, 커피향을 만드는데 몇가지 화학첨가물이 들어가게? 소돼지 키우는데서 항생제 사용이 얼마나 되는줄 알아? 햄소세지? 아이고 그건 방부제 덩어리지! 광어회? 항생제 왕창! 새우야 말로 수은의 보고이지.”

이런 잔소리들은 내가 들어도 짜증이 날법하다. 결국 친구들은 내게 소리를 지른다 "너나 좋은 거 먹고 오래 살아라!", "먹을 게 없잖아!"

맞다. 먹을 게 없다. 어느 시인은 가족들과 둘러 앉아 먹는 ‘따뜻한 저녁 밥상’을 노래했다지만 우리는 ‘안전한 저녁 밥상’을 노래해야 할 지경이다. 혹시 아시는가. 산지에서 이송되는 과정에서 시들어 쪼그라들고 볼품없는 채소는 다 버릴까? 아니다. 강산과 강염기에 한번씩 목욕하고 나오면 마치 밭에서 갓 따온 것처럼 탱탱해진다.

위에 나열한 예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 많은 위험들이 밥상 위에서 춤을 춘다. 농약과 화학비료 범벅으로 키운 쌀은 우리의 주식이다.

GMO 콩으로 만든 두부가 들어간 찌게, 역시 그 콩으로 만들어진 된장, 간장, 콩나물. 식당 입맛에 길들여진 탓에 조미료가 안들어가면 밍숭맹숭하다는 식구들 음식 타박에 소심하게 넣은 다시다 반스푼. 간만에 김치찌개에 넣은 참치캔이나 꽁치 통조림. 항생제 주사 잔뜩 맞아가며 비좁은 축사에서 벽만 보고 살다 죽은 돼지고기 한점도 찌게에 들어가야 제 맛일테고…

나의 잔소리를 듣던 친구들의 짜증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그들은 바쁘다. 야근에다 주말에 회사로 불려나가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서울의 노동자이며(새벽엔 영어학원도 다녀야 하며, 회사에서 회식자리도 종종 참가해야 하니 시간이 나면 무조건 잠을 자야 한다), 남들도 다 먹고 살고 있는 음식인데다,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것은 비싸기 짝이 없어 강남 아줌마의 사치일 뿐이며, 웰빙 열풍에 부응해서 살아봤자 몇 년이나 더 살겠냐라는 비아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더불어 마치 유기농 제품을 안 먹이는 엄마나 아내는 ‘무책임한 가정주부’로 몰아세우는 반여성적인 분위기도 맘에 안 든다는 것이다. 아 정녕. ‘안전한 밥상’은 유토피아인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의 하소연(?)은 좀더 현실적이다. 아토피다 뭐다 음식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가 나쁘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작 어려운 화학용어들로 가득찬 ‘표기’들을 보면 무엇이 위험한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L-글루타민산나트륨’과 ‘미원’이 같은 것이라고 하면 웃는다.

우리가 먹고 있는 ‘위험’들

자. 그럼 알아보자. 우리는 어떤 ‘위험’들을 ‘먹고’ 있는가

우리는 가까운 가게에서 음식물을 쉽게 구입하기 때문에 정작 그 생산과 유통 과정은 ‘잊고’ 지내기 일쑤다. 잊고 지내던 먹거리의 ‘생산’ 단계부터 우리에게 제공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위험’들을 찾아내보자.

일단 푸성귀를 키울 때 사용되는 농약과 화학비료이다. 또한 이 생산량과 출하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한해 24만 톤 가량의 농약이 먹거리 생산을 위해서 뿌려지고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1조원을 넘는다(2005년도 기준). 농약과 화학비료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식탁을 위협하는 것 중에 잘 주목받지 못한 것이 바로 소나 돼지에 과다하게 처방되는 ‘항생제’이다. 시골 넓은 초원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누렁소가 일생 언덕배기에서 놀다가 도살되어 우리 식탁으로 올라올까? 천만의 말씀! 소, 돼지, 닭 등에 엄청난 양의 항생제가 사용된다.

2005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14,730톤의 항생제가 주사 혹은 사료 속에 섞은 상태로 사용되고 있다. 육류 1톤을 생산하는데 항생제 0.82kg이 사용되고 있는데, 공장형 축산으로 악명높은 미국(0.26kg)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광우병 때문에 미국산 소고기를 문제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실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일평생을 좁은 콘크리트 우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먹고 싸고만 반복하다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소나 돼지들은 유전자 조작 사료나 항생제 범벅이 된 사료를 먹고, 평생 항생제 주사를 맞다가 도축된다. 항생제의 문제는 내성률에 있다.

주요 항생제의 내성률은 이미 90%에 달한다. 유기농으로 기른 가축이라고 할지라도 도축장에서 도축과정에서 내성균에 감염되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내성률을 줄이기 위해서 무슨 조치를 좀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수퍼박테리아가 계속 회식자리 삼겹살과 꽃등심 속에 존재하도록 둘 셈인가.

   
 
 

괜찮은 음식은 없다

아, 기억하시라. 육류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식되는 어류와 어패류도 그리 ‘괜찮은’ 음식은 아니다. 말라카이트그린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우리는 모두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산지에서 생산된 ‘원재료’들은 식탁에 오기까지 몇 번의 과정을 다시 거친다. 예쁘게 먹기 좋게 손질해서 포장될뿐이라고? 그저 박스에 담겨져 오기만 한다고? 위에서 언급하였듯 신선한 채소도 더 이쁘게 보이기 위해 과정을 거치는 마당에 푸성귀가 아닌 것들은 어떨까. 그럼 가공/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들을 살펴보자.

일단 도살된 가축이 다양한 부위별로 가공되는 도축장의 위생과 내성균관리는 잘될까? 말했듯이 유기농으로 기른 소라 할지라도 도축장에서 도축되는 순간 이미 내성균에 감염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요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수입농산물들은? 사람도 장거리 여행할때는 멀미약을 먹는데, 탈나지 않게 그 먼 곳에서 오려면 무언가 과정을 거치지 않겠는가.

장거리를 여행하면서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수확후 농약(Post Harvest)’이 있고(미국은 수확한 작물이 보관/저장/수송 과정에서 변질되지 않도록 농약을 뿌리는 것을 합법화하고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암이나 기형아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방부/보전 처리나 방사능 처리 등이 있을 것이다.

수입과 수출이 늘어나면서 식품은 ‘장거리 여행’을 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유해성분들이 뿌려진다. 유통과정에서의 위험들은 배가된다. 식품의 이동거리(Food Mile)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가공/유통 과정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식품 내 ‘화학첨가물’ 문제이다. 다양한 원재료를 이리저리 가공하고 무엇을 섞어서 만들어내는, 우리 식탁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가공식품’들이 가진 유해성 말이다. 언론에 근래 자주 등장하여 이것이 ‘아토피’의 주범이냐 아니냐를 두고 공방이 많다.

화학첨가물은 썩는 것을 막기 위한 보존료, 색을 예쁘게 만드는 착색체/발색제, 맛을 좋게 만드는 조미료/감미료/산미료. 커피향, 복숭아향 등을 만드는 다양한 향료를 비롯하여 가공식품의 색이나 맛을 향상시키거나, 변질을 막기 위해 사용된다.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는 것들도 속해있다.

4백가지 화학물질과 1,800가지 향료

우리는 423가지의 화학물질과 1,834가지의 향료를 합법적으로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먹는지 혹은 이 성분이 몸에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이름만으로는 알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다양한 화학첨가물들의 인체 유해성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정부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 화학첨가물이 인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한 연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매우 소량으로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환경호르몬으로 작동하는지, 혹은 아이들의 행동장애를 일으키는지, 암을 유발하는지에 관한 연구나 정책적 노력은 왜 이리 없는가.

이러한 다양한 첨가물 외에도 얼마 전 모 음료의 사례에서 잘 알려진 대로 화학첨가물끼리 식품 내부에서 일으키는 ‘새로운’ 유해물질의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통조림이나 합성수지로 포장된 포장재에서의 유해물질에 대한 우려도 놓을 수 없다.

화학첨가물의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위생상으로 인한 위험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한번 몸이 망가지면 비가역적이거나 회복하기 어려우며, 특히 아이들의 경우 성인이 되었을 경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좀더 달콤하고 매혹적인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그럼 우리 식탁에 올라오기 직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나? 학교급식 집단 중독 사고에서 보여지듯 과정에서의 ‘위생’은 여전히 큰 문제이다. 불량한 원재료, 대량조리 과정에서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TV에서 종종 보도되는 식당/부페의 불결함이란! 뿐인가. 고온의 기름에서 감자 등이 튀겨지는 동안 발생하는 유해한 트랜스지방산이나 아크릴아마이드 등도 있다.

자 아는게 병이다. 이제 알고 나니 더욱 먹을 것이 없다. 우리집 텃밭에서 난 상추도 못믿을 판이다.

누가 위험한 먹거리를 생산하는가

“과거의 위험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서 인지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문명사회에서의 위험은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울리히 벡, 『위험사회』, 1986)

전세계 식품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초국적농식품 복합체들이다. 식품산업 역시 세계화(globalized), 산업화(industrialized), 독점화(monopolized)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농식품 체제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농민에서 소비자까지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국가를 넘어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초국적기업들은 생산에서 유통은 물론 가공, 낙농제품, 통조림, 음료농축액 등 음식료의 거의 전부분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종자와 비료, 농약까지도 진출했다. 대표적인 예로 대표적 초국적 농식품 복합기업인 ‘카길’사는 세계 제1의 식음료 사기업이면서 지구에서 나는 모든 것을 구매하여 생산, 가공, 선적, 판매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선물시장에서의 중개업도 담당하고 있다.

카길, 몬산토와 같은 세계10대 기업은 세계 농약시장의 80%, 생명공학시장의 54%, 종자시장의 1/3을 지배하고 있다.(ETC Group 2003)

종자를 만들고 그 종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 회사에서 나온 농약을 사용해야만 하고,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그 회사는 또 전 세계로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람들의 식탁에 올린다. 식탁까지 오는 기나긴 여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예쁜 ‘화장’은 또 어떤가.

왜 지구 반대편에서 실려오는 음식을 먹어야 되나

근거리에서 나는 음식을 먹는다면 굳이 농약과 각종 이상야릇한 처리를 통해 몇 단계와 오래 시간을 거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더욱 신선하고 – 신선하게 보이기 위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될테고 – 괜찮은 음식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을텐데(유통과정에서 소비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다가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을 두고도 거대기업이 지구 반대편에서 실어 나르는 음식을 사먹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일까. 그것도 위험한 것을!

이러한 거대한 구조 속에서 위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구조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아마도 ‘신비의 묘약’ 쯤으로 취급받았을 식품첨가물은 지금 우리에겐 ‘유해물질’이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편리한 삶과 ‘맛있는’ 음식을 선사해줄지 모르나 오히려 우리의 삶의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거대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너무 많은 위험들을 ‘먹고’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거대한 ‘매트릭스’에 갇혀 그들에 의해 ― 위험한 것들이 예쁘게 포장된 상태로 ― ‘먹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장식 축산업이라 불리우는 가축사육방식, 카길이나 타이슨푸드와 같은 초국적 기업에 의한 생산과 장거리 운송, 그들에 의한 유전자 조작식품과 종다양성의 붕괴(세계 인구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90%가 불과 30종의 작물에 의존하고 있다!), 이름도 인체에 대한 영향도 모르는 화학첨가물들. 절대다수의 인류가 안전한 먹거리를 먹지 못하는 재앙과 같은 현실은 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류가 생긴 이래로 가장 큰 화두였다.(인류의 역사는 기아투쟁의 역사이다) 여전히 그 화두는 유효하지 않은가! 이제는 기아가 아닌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싸우는 역사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쟁취하는 과정을 국가는 끊임없이 개인에게 부가해왔다. 위험을 생산하는 것은 초국적 농산물 독점기업이며, 첨가물 생산회사이며, 공장형 축산을 종용하는 이 사회다. 피해를 입는 자는 우리 모두이다. 그런데 왜 그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그들만의 ‘웰빙’에 따라가지 못해 안달나야 하는 것일까.

위험에서 개인이 자유롭기는 매우 어려우며, 어린이나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진보’는 우리 삶의 ‘안전’을 보다 정의롭게 쟁취하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 피해대중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 주름진 할머니들의 바구니에서 봄을 사자.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두려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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