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에서 왜 오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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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25일 11: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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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지방선거 전까지 서울에서 유일한 민주노동당 소속 구의원이었던 홍준호 의원이 한 말이 있다.

    “동네소식을 너무 몰라요. 동사무소 방문도 좀 하고, 관계도 좀 맺어봐. 민주노동당이 알아야 할 얘기들이 많을 수도 있어요.” 지역정당의 역할 중 하나가 행정기관에 대한 개입과 감시인데, 그 부분이 너무 취약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 한번 그래볼까. 하지만 선뜻 동사무소를 방문하기가 좀 꺼려진다. 그쪽에서 만나줄까, 괜히 본전도 못찾는 거 아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나중에 생각하자. 그래서 미루고 또 미뤘다.

    지방자치 최전선을 가다

       
      ▲ 정경섭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 위원장
     

    그러다 올해 3월. 마포구위원회 대의원대회에서는 현장정치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업계획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우리의 진보정치가 단순히 현장만 방문했다고 끝나는 건 아닐 것이다. 실제 지역 현장에서 대중을 만나고,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이 처한 조건상 우리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동사무소를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지방자치의 최전선이면서 관변단체 회원들에게 장악당한 그 곳을. 부위원장, 사무국장이 전화를 걸어 동장과의 면담 날짜를 잡는다. 반응은 물론 가지각색.

    "민주노동당에서 왜 오시는 거죠"라는 같은 반응에도 두 가지 다른 의미가 내포됐다. 공격적인 반응과 정말로 의아해서 물어보는 반응. 의아한 반응 중에는 우리가 뭘 잘못했나, 뭘 지적하려고 하는가, 라는 뜻이 묻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자료를 준비 할까요”라는 반응도 있는데, 중요한 건 지역 정당의 동사무소 방문이 전례가 없었다는 것.

    함께 상근을 하는 부위원장, 사무국장과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동장과 마주앉을 때도 두 가지 광경이 있다. 하나는 상석에 앉지 않고 마주보고 앉는 동장과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는 동장. 상석에 앉지 않는 동장은 의자에 등을 기대지도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최대한 예를 갖춘다. 브리핑 자료를 준비한 동사무소는 확실히 친절하면서도 진지하다.

    동장과 마주 않는 두 가지 풍경

    “지방자치 제도는 발전하고 있는데, 그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주민참여는 아직도 먼 것 같아요. 이 동네에 당원도 많이 살고 있고, 당 지지자도 많은데 앞으로는 자주 소통을 해서 저희가 주민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동장도 있다. “맞습니다. 지금 다 단체회원들만 있어요. 젊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야 진짜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좀 많이 참여해 주세요. 저희는 주민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행정인력 가지고는 동네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이렇게 정당에서 동사무소를 방문하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저희한테 무슨 지적하실 일이 있는지 알았어요.”

    나도 웃으며 얘기한다. “전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 같아요. 지역정당이라면 동장님도 수시로 뵙고, 현안 얘기도 하고, 함께 해결방안도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

    민주노동당이 다니는 지역현장은 주로 빈곤계층이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 중에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기초생활수급권자에 탈락한 사례도 있다. 공부방에 다니는 어린이는 수술비가 없어서 얼굴에 난 혹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법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방치할 수는 없다.

    동장 얘기 들으며 낯이 뜨거워지기도

    이런 건 민주노동당이 해결할 수 없다. 행정기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런 주민을 행정기관에 소개하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고, 만약 뜻대로 안된다면 그것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사실 그래서 기획된 동사무소 방문이다.

    “저희도 방문행정을 강화하고 있지만, 위원장님이나 민주노동당에서 지역을 다니면서 저희가 놓친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이건, 우호적인 동장이건, 비우호적인 동장이건 공통된 반응이다.

    당 활동을 하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쓰린 것은,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계층에서 지지율이 낮게 나올 때가 아닐까 한다. 동사무소를 방문하고 나서, 그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기 때문에 참고 정도만 하면 좋겠다.

    요즘 동사무소는 사회복지팀 구성되어 있다. 이전까지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담당했던 동의 복지 업무를 팀이 구성돼 맡고 있다. 사회복지팀은 매일 현장을 방문하며 지역 내 저소득층을 접촉하고 있었다. 지역 관변단체 회원들은 이들과 촘촘하게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미약하나마 도움을 주고 있다.

    “지역에서 일하는 단체(관변단체라고 불리는 바로 그곳) 회원들과 저소득층 한 40여명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요. 생일 때마다 케익을 들고 가죠. 요즘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하고 함께 가요. 그분들이 아이들이 오면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아이들도 배우는 게 많구요.”

    동장의 말을 듣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거야 말로 민주노동당의 분회와 분회당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또 다른 동장의 말.

    “우리 동은 민하고 관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했어요. 기업들도 참여를 하죠. 저소득층을 위해서 일정 기금을 기업이 내놓고, 관에서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지역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고는 있는데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죠.”

    구청장이 기분나쁠지 몰라도

    역시 가슴이 뜨끔하다. 이건 지역위원회와 노동조합, 그리고 지역 시민단체들이 함께 네트워크를 꾸려서 했어야 하는 일이지 않는가. 당이 반드시 지지를 받아야 할 계급, 계층에 대한 행정기관의 전 방위적 접근, 그리고 그 접근을 통해 형성된 정보와 그것을 바탕으로 연결되는 인맥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한계도 분명 존재하고 우리가 파고들어야 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그것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지역정치조직의 과제. 이 부분을 간과하지 말자.

    물론 우리도 할 말을 한다. 동사무소 업무 전반을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우호적 관계와 긴장감의 교차, 그것이 동장과의 면담에서 필요한 부분이니까.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가 진보구정감사를 진행했어요. 마포구청 업무 전반에 대해 저희 자체적으로 감사를 하고, 진보의 시각으로 대안을 내놓은 거죠. 사무국장이 총괄 담당으로 했는데 자료집을 보내 드릴 테니까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심각한 부분이 꽤 많습니다.” 자랑만 하던 동장이 대번 옆에 앉아 있는 사무국장에게 눈길을 주며. “아이구, 이거 사무국장님한테 잘 보여야겠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제 마포구 20개 동사무소 중에서 겨우 절반에 해당하는 동사무소를 방문했다. 어찌보면 구청장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 일 것이다. 도대체 지가 뭔데 동사소를 순회하면서 동장을 만나나. 뭐,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지 않나.

    동사무소 순회가 끝나면, 현장정치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그곳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동사무소에 전해서 해결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정당의 정치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것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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