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데모에 대한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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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21일 08: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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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칠현(竹林七賢)! 죽림칠현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역사상식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껴 세상을 등진 일곱 명의 선비들이라는 사실 정도다.

죽림칠현과 비슷한 말은 고고한 선비정신, 불복종, 초탈…, 연상되는 말은 생육신, 사육신…. 죽림칠현, 참으로 멋있고 가슴 벅차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이 다름아닌 ‘빼어난 속물’이다? 과연 ‘죽림칠현’과 ‘빼어난 속물’-사실 이 ‘빼어난 속물’이라는 표현은 한국어 번역본을 내면서 출판사 쪽에서 덧붙인 제목이다-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우선, 죽림칠현 일곱 명의 이름은 밝혀두자. 혜강(嵇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상수(向秀) 완함(阮咸) 유령(劉怜) 왕융(王戎). 저자 짜오지엔민은 “어떤 이들은 죽림칠현을 탈속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속된 구석이 많았으며, 또한 각기 서로 다른 속물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저자 서문 중에서)라고 말한다.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아주 당연한 말이겠지만, 학문적으로는 역사상의 현(賢)을 인간적인 속(俗)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다소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저자는 이어 말한다. “이들이 남긴 가장 귀중한 유산은 스스로 속됨을 멸시하고, 속됨을 깨뜨리고, 속됨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정말 슬픈 구석은 속됨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실패하자 낙망해 길을 헤맸지만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속됨과 다시 어울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죽림칠현은 정치와 현실에서 초탈해 살고자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정치와 현실에 몸담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보니 초심과 다르게 살 수밖에 없게 되었고, 또 결코 초심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좀 더 줄여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죽림칠현의 정신은 스무 살 무렵의 데모와도 같은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죽림칠현에 그어졌던 밑줄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앞질러 말한다면,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은 스무 살 무렵의 데모에 대한 정치사회학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정치사회학의 본론은 다름아닌 죽림칠현의 상징과도 같은 은둔(隱遁)에 대한 정의. “은둔이란 벼슬에 나서는 것에 상대적인 말로, 벼슬을 거절하는 행위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그 뜻을 체현할 수 있다.(p.147) 또 있다. "은자는 혼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홀로 은자로 지내면 아무런 영향력도 가질 수 없게 되며 원래의 뜻과는 달리 평생을 은둔하게 된다. 일군의 무리와 짝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은둔을 세상에 알릴 수 있고 규모를 갖출 수 있으며 등급을 갖추게 된다.“(p.266)

은둔의 반대말이 벼슬길이라는 것, 아니 벼슬로 나아가기 위한 “가야할 길 중 가장 적합한 것이 은자가 되는 길이었다”라는 사실! 서양 철학의 어법으로 말한다면, “나는 욕망한다. 고로 은둔한다” 혹은 “나는 출세한다. 고로 은둔한다” 정도가 되리라.

반면 은둔하여 은자가 되는 것이 왼쪽 손바닥이라면 그와 마주칠 오른쪽 손바닥은 당연히 권력을 쥔 자의 손바닥이다.

“명사를 기용할 때는 그들의 특성에 유의해야 한다. 명사들은 의논하기와 자신의 견식을 자랑하기 좋아한다. 이외에도 성질이 오만해 불만족스러우면 쉽게 소란을 피운다. 의논하기를 좋아하든, 소란을 피우든 그것은 정권을 잡고 있는 자에 대한 평론이 되기 쉽다. 이러한 평론은 대부분이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명사를 기용해 정권을 장식하려면 세밀한 부분까지 장악해야 하며, 시대적 분위기도 고려해야 한다.”(p.209)

이른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권의 시녀, 본문의 표현으로는 “권력의 꽃병”이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은 그렇게 일곱 번의 손바닥 소리를 들려준다. 죽림칠현은 같은 이상으로 모여 한때를 풍미했지만, 곧 우리는 스무 살 무렵에 데모를 했지만, 그것은 각기 자신들의 욕망을 에둘러 표현한 일종의 상징적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어떤 이는 그 데모의 정신으로 기꺼이 죽음을 맞고, 또 어떤 이는 두 번 다시 은자가 될 수 없을지언정 평생의 삶의 원칙으로 유지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유력하고도 강력한 이력상의 알리바이로 활용하기도 했다. 주인 잃은 빈 대나무 숲에는 다만 바람만이 오랫동안 머물 뿐이었다.

기우삼아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저자가 죽림칠현 각자의 모든 것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의 삶의 경로를 기존의 시각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복원해내고자 할 따름이다.

어떤 의미에서 원제에 덧붙여진 ‘빼어난 속물’이라는 표현과 이들을 13억 중국인의 자화상이라고 평하는 옮긴이의 말은 조금은 선정적이기도 하다. 오히려 당대 특유의 지식인적 속성을 당대의 상황 속에서 포착한 것이며, 그 결과로 드러나는 지식인의 속성은 그때와 지금, 여기와 저기 모두의 얼굴로 봐야 마땅하지 않을까?

독후감을 여기까지 쓰고 나니, 무언가가 몹시 아쉽다. 짧았던 역사상식이 분해서이기도 하지만, 책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빈곤이 나를 짓누른다. 그래서 끄집어낸 질문 하나. 역사에서 은자 혹은 아웃사이더 선비정신이 왜 유독 강조되고 있는 것일까? 역사는 정치하는 자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 중에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곧 시공간을 넘나들며 정치에 초탈한 인물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정치라는 아주 중요한 인간적 행위를 보다 저급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오히려 정치를 특별한 영역으로 울타리 치려는 고도의 정치적 사기(詐欺 혹은 史記)가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구경하라. 고로 존재하리라.” 이것이 은자와 선비들이 여러 겹으로 기록된, 역사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또 하나의 모랄(Moral)이지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개운치 못하다. 책으로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역사를 몸으로 살고자 하는 것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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