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여성노동자 최후의 보루"
    고용노동부 자체 운영? 실효성 우려
        2023년 09월 25일 06:11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24년간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등 피해를 입은 여성 노동자를 지원해 온 ‘고용평등상담실’에 대해 내년부터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규모를 축소해 고용노동부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시민사회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모두 놓아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전국 19개 고용평등상담실)와 197개 시민사회단체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평등상담실은 노동현장에서 갖가지 고충을 겪는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며 이같이 밝혔다.

    사진=여성민우회

    서울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등에서 운영 중인 고용평등상담실은 지난 2000년 개소해 전국 19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등 피해를 본 여성 노동자들을이 이곳을 찾아 도움을 청한 횟수만 연평균 7640건에 달한다.

    노동부는 지난 24년간 운영돼온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을 내년부터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예산은 기존 12억1500만원에서 5억5100만원으로 54.7% 삭감했고, 상담실이 제공하던 상담·권리구제 서비스는 노동부가 8개 지청에서 1명씩 고용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는 “노동부는 인건비 지원이 아니라 운영비 지원 명목의 예산이라는 핑계로 그동안 상담원에게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만 지급할 수 있는 초저예산을 지급해왔고, 고용평등상담실을 운영해 온 단체들은 자부담을 투여해 가며 헌신적으로 활동해 왔다”며 “그럼에도 노동부는 2024년 예산을 하루아침에 삭감하고 운영 주체들에게 그 과정과 이유에 대한 일언반구 설명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고용평등상담실에서 해온 기준 업무들을 이어받아 자체 운영하겠다고 했으나 전문성과 실효성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 단체들은 “여성노동자들이 복잡한 문제를 안고서 고용부를 찾아가면 법 적용이 안 된다며 돌려보내기 일쑤고, 출산 전후 휴가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임신 노동자 고민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오라고 답변하는 게 고용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용평등상담실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내담자와 동행하고 있다”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2차 가해 문제를 고평법에 명문화한 것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한 것도 모두 고용평등상담실의 성과였다”고 강조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은 내담자들은 역시 상담실을 없애선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A씨는 “저처럼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으로 해고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게 돼도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하도,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도 막막해 쉽게 포기하게 된다”며 “법적 대응이 시작되면 회사는 노무사나 변호사까지 써서 대응하니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은 위축된다. 그럴 때 전화 한 통으로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고용평등상담실”이라고 말했다.

    A씨는 “피해자들은 개인 신상이 드러나는 곳은 쉼게 찾아 가지 못한다. 저 같아도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곳에선 상담 못할 것”이라며 “일하는 여성들이 살고있는 지역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고 여성노동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상담실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인 B씨는 “직장 내에서는 2차 피해까지 있는 상황에서 법률 자문이나 노무 상담 없이 방황하며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중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수십차례 상담하며 정신적 피해로 일상을 온전히 살아가지는 못하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B씨는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의 재기를 꿈꾸지 못했던 저는 고용평등상담실의 지속적인 상담과 정서적 지지에 용기를 얻어 일자리를 다시 구해 건강한 일상을 살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해의 상황과 비교하자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곡히 부탁드린다. 고용평등상담실의 사업 지원을 축소하거나 없애지 말아 달라”며 “생계를 책임지며 지금도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고용평등상담실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고용노동부는 8개 지청에서 한명씩 고용해 직접 상담을 하겠다고 하는데,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 문제를 전국 고작 8명의 상담원이 경청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인권단체, 상담창구의 예산삭감과 삭제 시도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모이고 싸우는 노동자들을 멈춰 세우는 것”이라며 “국회는 정부의 예산 감축안, 삭제안을 즉각 복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