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라노 프로젝트 TK 토호세력이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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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20일 07: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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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007년 4월 11일, 팔공산 해발 850미터 갓바위를 찾았다.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는 부처님에게 나는 지난 30년,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 모두 적당한 물질적 풍족과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잘 살게 해주시기를 빌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절실한 소원은 나와 인연 있는 사람 모두 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갓바위를 찾아가는 길에서 내 심정을 대변해주는 문구를 발견했다. 어느 절에서 펼침막 내걸기를 “보림사와 인연하신 분 부자 되세요!” 이보다 더 소박한 축원이 있겠는가? 30년 전의 나는 틀림없이 인류 구제의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문구라 여겨 혀를 찼겠지만 오늘의 내 마음에는 달리 다가온다.

    감옥가고 해고되었던 동지들, 젊은 시절을 노동운동으로 보낸 동지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 받을 때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나 스스로도 뼈 속까지 가난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작은 후원이라도 해준 사람은 잊지 못하고, 보리밥 한 덩어리를 준 표모(漂母)의 은혜도 갚았다는 한신에게 공감했다.

       
     ▲ 갓바위 가는 길가 어느 절에서 내건 펼침막
     

    “보림사와 인연하신 분 부자 되세요!”

    정도전처럼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원대한 꿈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미웠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낯설고 불편했다. 유럽 역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진보정당에 후원금을 내지 않는 한국의 부르주아지의 취미생활이 단순함에 대해 개탄하고, 당비를 잘 내지 않으려는 한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의 부족함을 한탄했다.

    그렇게 좌절하고 현실로 돌아오면, 나 자신과 동지들의 모습을 통해서 과연 ‘항산(恒産)이라야 항심(恒心)이라’는 말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인류 이전에 우선 우리가 잘 살기를 바라게 되었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을 갖추어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야 비로소 주위 사람들도 우리를 사랑할 것이다.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 후에 나도 부처가 되겠다던 대승 불교 보살의 정신이나, “이 세상 그 어느 구석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지 말라”고 죽기 직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던 체 게바라의 정신을 잊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도 잘 살기를 바란다”는 이 정신의 쪼그라듦에 대해서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 나는 중생과 보살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중생이고 그래서 중생이 배가 고프니 우리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경제 문제를 엘리트 지배계급이 경세제민(經世濟民)한다고 했던 그런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나의,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만인의 문제다

    박근혜는 ‘먹고 사는 문제’를 전매특허 낸 듯, 마치 자기만 그 문제를 생각한다는 투로 말한다. 그러나 진보든 보수든 모든 정치인은 경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가 생각이 다를 뿐이다. 예로부터 민생의 안정이 항상 정치의 당면 과제였다.

    대구는 박근혜의 텃밭이고 정치적 고향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박근혜의 지역구다. 물론 박근혜가 달성군과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있을 뿐이다. 박근혜는 대구 경북에서만큼은 실제로 공주님 대접을 받고 있다. 시골 할머니들은 박근혜가 나타나면 “우리 공주님!”을 연발한다.

    그렇다고 대구 지역 경제의 전망이 밝은 건 아니다. 대구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인 섬유산업부터 그렇다. 원래 대구에서는 합성섬유 직물을 주로 생산했지만 그건 이미 중국에 대하여 경쟁력을 잃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대구 섬유산업 진흥사업’ 즉 밀라노 프로젝트, 대구를 ‘아시아의 밀라노’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대구가 밀라노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밀라노 프로젝트 그 자체에 있다. 왜냐하면 밀라노 프로젝트는 토호화, 정치세력화한 대구의 섬유 자본가들 및 그들과 유착된 정치가들이 추진하는 것인데 그들이야말로 질적인 발전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밀라노를 만든 건 장인들의 창조적 노동이지 거대 자본의 지배가 아니었다.

    대구 섬유산업 발전의 걸림돌은 TK 토호들

    우리 세대에게 ‘인문학’을 가르친 선생님, 조동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색채와 디자인의 옷을 입는다는 사실을 관찰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이탈리아처럼 패션 산업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 바 있다. 더욱이 한미 FTA 타결로 수출 여건이 좋아졌다고 한다면 섬유산업은 전망이 밝아야 한다.

    그러나 중앙 정치인들과 유착된 지역 토호들이 정부의 정책 자금을 독식하는 구조로서는 오히려 산업 구조 개편을 지연할 뿐이다. <영남일보> 4월 13일자는 “1, 2 단계 밀라노 프로젝트는 사업 타당성 조사도 없이 진행되어 각종 문제점을 드러내며 당초 목적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사업 추진의 주체가 TK 토호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 산업정책이 나누어 먹는 식의 정치 논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구가 가지는 근본적인 제약 조건이란 문제도 있다. 그래서 대구를 아시아의 밀라노로, 패션 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KDI 보고서는 판단하고 있다.

    패션 산업은 유행 주기가 빠르고 소비자의 수요 변화에 민감한 분야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울 강남에 비해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션 산업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직물 생산과 염색 가공을 중심으로 하는 섬유산업을 저가 대량 생산 체제에서 중고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구조 개선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TK 토호 세력이 바라는 정권 교체는 국민의 재앙

    어릴 적에 듣기를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라고 했던가? 인천 출신이었던 조봉암의 표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라고도 했던가? 그러나 그건 역사의 수레바퀴가 한 바퀴 돌기 전의 까마득한 옛날 얘기고 오늘날 대구는 그야말로 수구꼴통의 본거지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대구에서 진보정당 하는 건 차라리 독립운동이다.

    물론 수구꼴통의 본거지라는 말이 서민들에게는 억울할 수도 있는 오명이다. 그럼에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30여 년 이른바 TK 정권들의 덕을 본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한번 ‘공주님’을 내세워서라도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쪽팔리는 짓’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대구에서 마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낙동강을 관찰한 것은 이명박이 경부운하를 만들겠다는 미친 소리를 하기 때문이었다. 낙동강의 홍수기 최대 유량과 갈수기 최소 유량의 차이는 700:1이다. 그만큼 운하는 많은 인위(人爲)를 필요로 한다.

    금호강 물이 까만 잉크처럼 낙동강 본류로 흘러들고 있었다. 금호강 물과 본류의 물은 한참 동안이나 섞이지 않았다. 물론 본류의 물도 그리 맑은 물은 아닌데 금호강물까지 섞이니 대구 이남 낙동강은 3급수가 된다. 이 물을 부산 경남 사람들이 식수로, 공업용수로 쓰고 있다. 배가 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4급수가 될 것이다.

       
      ▲ 갓바위 돌부처, 화강암의 질감이 편안하다.
     

    우리는 갓바위 돌부처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을까?

    팔공산 관봉 갓바위에는 소문 듣던 대로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진보정당은 갓바위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을까? 왜 험한 길을 올라가서 850미터 고지에 있는 갓바위 돌부처 앞에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이 찾아오고, 우리 진보정당은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 한참 동안을 관찰했다.

    그래서 갓바위 돌부처는 천년 동안이나 말없이 백성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애환과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래서 백성들은 갓바위를 찾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백성들에게 갓바위 돌부처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을까? 그저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 말이다.

    그러나 김정훈은 지적한다. “민주노동당의 정치 전략은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적이다. 대중에게 진리를 설득한다면 대중은 진리를 지지할 것이라는 엘리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민주노동당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민주주의 정치철학을 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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