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보내는 날의 사진 기록
        2007년 04월 19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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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청 앞 추모제 무대 영정
     

     어제(18일) 고 허세욱씨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한미FTA 무효 故 허세욱 동지 민족민주노동 열사장’이다.

       
    ▲ 한독운수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출근길이 시작될 무렵인 아침 7시, 고인이 명을 달리한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발인을 하고, 이어 민주노총 앞,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앞, 한독운수, 하얏트호텔 앞,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노제를 치렀다.

    장례 행렬은 오전 내내 서울 곳곳을, 고 허세욱씨가 생의 자취를 남겼던 곳을 하나하나 짚었다. 고인이 몰던 택시가 행렬을 이끌었다.

     

       
    ▲ 추모제가 열린 시청 앞 잔디는 초록이었다
     

    오후에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시청 앞 잔디를 모두 감추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울분이 서울 한 복판에서 울렸다.

    노제에도 따라 나선 수십 대의 한독운수 택시들은 운구차와 객들을 태운 버스를 뒤따라 마석의 모란공원까지, 동료가 다시 가는 길에 함께 했다.

       
    ▲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촛불 문화제
     

    수백 명이 참석한 모란공원의 하관식, 그리고 제사. 해는 기울기 시작했고 하관식에 참석한 이들이 청계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촛불이 어두운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그 도시의 어둠 속에서.

    장례에서는 구수영 운수노조 민주택시본부장과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호상이 되었다. 고 허세욱씨를 다시 보내는, 가족들이 아닌 ‘동지들’이 보내는 이날은 슬픔과 결연함에 가득한 날이었다.

       
    ▲ 장례식장 참석한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오열을 없었다. 가족이 치르지 않는 장례란 그런 것인가 보다. 어찌 감히 비통함을 함부로 드러내랴.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찾을 없는 건 오열만이 아니었다. 환호와 박수도 없었다. 무대에 오른 가수들의 공연조차도 박수를 받을 수 없었다. 구호를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가 아니면 무대가 아닌 곳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고인의 ‘동지들’은 그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고인은 한미FTA를 반대했고 미국의 행패에 분노했다. 장례 행렬의 만장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뜻을 담았다. 장례위원장들의 조사와 추모사에서도 고인의 뜻은 확인되고 또 확인되었다.

    고 허세욱씨와 친밀하게 지냈던 이들은 그의 평소의 삶을 소개했다. 겸손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의 궤적은, 보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슬픔에 잠기게 하였다.

    어찌 자신이 ‘동지’에게 존대하지 않을 수 있으며 배움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신념이 부르는 곳, 청와대 앞이건 평택이건 달려가길 마다하지 않았다. 고인은 사람을 실어 나를 때에도 한미FTA반대 홍보물을 건네는 건 일상이었다.

     

       
    ▲ 고 허세옥시의 유해가 미군기지 담벼락에 뿌려지고 있다
     

    고인의 유언은 소중했다. 그의 유해 일부가 미군기지 담장에 뿌려졌다. 가족들이 치른 화장장에서 소중하게 모셔온 유해였다. ‘동지들’은 고인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장례가 있던 어제 그의 신념과 그 신념을 행하던 삶은 아름답게 꾸며졌다. 그 아름다움에 기여하고자 장례위원으로만 657명이 구성되었다. 저 멀리 지방에서도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왔다. 수천이 함께한 장례였다.

       
    ▲ 하얏트호텔 앞 길닦음춤과 진혼굿
     

    하지만 그의 고독함은 쉽게 씻기지 않을 것 같다. 어느 누구와도, 아무리 진한 신망으로 엮인 동지와도 나눌 수 없었던 죽음의 결행. 그 결심이 서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혼자서 보냈을까. 그래서 하얏트호텔 앞에서, 시청 앞에서 길닦음춤과 진혼굿이 있었나 보다.

     

       
    ▲ 하얏트호텔 앞 고 허세욱씨의 영정
     

    장례에 참석한 이들은 고 허세욱씨를 ‘열사’로 추앙하고 삶의 모범을 보인 위대한 자취를 남긴 이로 그를 높였지만,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른 고뇌, 지독히도 외로웠을 그 시간들을 겪어야 했던 한 인간, 허세욱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장례를 함께 치른 이들의 표정을 보라. 슬픔과 결연함, 그 이상을 품고 있다.

    고인이 이번 생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들은 고독했겠지만, 진정 떠나는 그 순간은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뜻과 함께한 ‘동지들’이 여전히 그 뜻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니까.

       
    ▲ 고 허세욱씨가 안치된 모란공원. 하관식이 거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영혼이 지나쳐간 곳마다 꽃들은 울긋불긋 피어 있었고 초록빛은 짙어지고 있었다. 시청 앞에서 추모시를 낭독한 송경동 시인의 말처럼, 이제 영혼은 “별과 바람과 눈물과 땅과 나무와 풀과 같은 벗들”과 살아야 한다.

    이제 이념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죽음을 외면할 만큼 냉정한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투쟁하고 바꾸어야 하는 이들은 살아남은 자들이다. 고 허세욱씨는 편안하게 놓아주고 그가 살아있다면 꿋꿋하게 해낼 일들은 몸으로 행하는 게 남은 ‘동지들’이 할 일이다.

    고인의 뜻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자”가 아니고 “한미FTA를 폐기하라”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도록 슬픔과 울분과 비통함을 쏟아내었으니 이제는 냉엄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아마도 ‘동지들’에게는 할 일이 많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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