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든 해제든 피해는 서민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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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9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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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권후보가 최근 ‘규제개혁 추진구상’을 발표했다. 3대원칙과 7대 분야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내용을 압축하자면, 스스로도 언급했듯 ‘규제 제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 타당성을 따져보기 전에, 각종 규제의 본산이 유신정권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이다. 박정희식 규제와 외형적으로 상반되는 박근혜식 규제 완화를 보면서도 여전히 박정희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 생전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에서 규제는 ‘억압’과 ‘통제’의 기제였다. 요즘도 ‘그때 그 시절’ 류의 프로그램에 간간히 등장하는 통행금지와 두발단속, 복장규제는 사회 통제의 웃지 못 할 표상이었다. 산업과 경제에 대한 규제 또한 국가주도 경제개발의 강한 추진력 동원을 위한 방편이었다.

    박정희식 규제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치소비품의 규제나 지나친 임금격차의 억제, 농지 이용에 대한 규제와 같이 더러는 지금도 사회통합 차원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들도 있었다. 그 시대 수많은 규제들은 개별적 공과를 떠나, 무한한 권력을 정점으로 사회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 동원된 수단이었다.

    어느 사회에서든 규제가 억압적, 통제적 속성을 한편의 유산으로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속성이 더욱 도드라진 것은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적 유산이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독재자인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그 딸이 상반된 이름으로 극복한다니 박수라도 쳐야할까? 그런데 정작 칼을 겨눈 대상은 권위주의의 유산인 불필요한 통제들이 아니라, 사회의 공정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정의 장치들이다. 도시용지를 지금보다 두 배로 늘리기 위해 그린벨트 등 토지이용 규제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이미 부작용이 나타날 만큼 나타난 무분별한 개발과 투기를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확대하는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도시 과밀과 주거, 환경, 교통, 교육의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도 명확하다.

    출총제를 폐지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대물림식 소유 지배구조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사라진다. 재벌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그 특권을 공고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국내 사회경제 질서를 훼손하고 혼란을 가져오는 경제자유구역 및 특구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이 같은 규제완화는 시장만능주의를 부추겨 재벌과 일부의 특권층에게 부를 편중시키고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공공성의 해체를 가져올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규제의 유산을 남겼다. 대권 가도에 나선 그의 딸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그 유산을 극복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스란히 민중들이다. 재밌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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