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노동, 그 철학적 투쟁에서 승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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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9일 02: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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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희완에게 부당한 박해를 가하고 난 다음날, 난 어김없이 생리를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생리통이 내게는 아주 희미한 것이어서 물리적 고통은 거의 없지만, 시작을 전후해서 온몸에 휘감기는 느낌은 마치 수세기 전 내가 잊고 있던 물컹한 기억의 심연 속에 발목이 잠겨 허우적대는 것 같은, 불가해한 육체적, 심리적 경험이다.

    미세한 전파가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듯도 하고, 악마의 손가락이 내 몸을 피아노 삼아 두드리며 음울한 곡을 연주하는 듯도 하다. 비오는 날이면 이 모든 느낌은 한층 배가 되어, 예민한 고양이의 쭈뼛 선 털처럼 신경이 한 올 한 올 그 가느다란 촉수를 떨군다.

    마술. 어쩌면 이 말은 딱 들어맞는지. 핏덩어리들이 한 웅큼 씩 몸 안에서 떨어져 나올 준비를 하는 이 시기, 수세기에 걸친 마녀사냥과 그에 준하는 핍박으로 완전히 잊혀졌던 우리 안의 여신의 존재는 이 때, 희미한 교신을 시도한다.

    겉으로 아무런 표시도 내지 않고 남몰래 이 기막힌 행위를 매달 치러야 했던 지상의 모든 여성들을 대신하여(?), 난 불가해한 전파가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동안, 내 옆의 남성을 모질게 대하는 것이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희완은 여기에 저항하지 않는다. 모든 부당한 것, 모든 정의롭지 않은 것에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는 그가 신기하게도 이 시기의 박해는 용케 견딘다. 하루 이틀 뒤 내가 생리증후군으로 그랬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의 과도했을 생트집들을 사과하면 희완은 "또 저런다" 하는 표정으로 입을 비죽 내밀며 안경 너머로 잠시 날 쳐다본다.

       
      ▲ 배를 담던 플라스틱 케이스를 유영하는 물고기 한마리
     

    그 : 그녀들은 밀린 빚을 갚는 중

    반복되는 이 일상의 한 장면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본 일은 없다. 그러나 이는 희완이 여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풀기 힘들었던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서 얻은 해답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부계사회가 존속해온 이후, 여성들이 받아왔던 수천 톤의 박해를 여성해방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지금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되갚아 주려는 경향이 있고, 보복이 때로는 도를 지나쳐, 또 다른 불평등과 부당함으로 치닫기도 한다고 희완은 진단한다.

    따라서 이 시대의 남성이 때로 부당하게 여성으로부터의 공격의 피해자가 된다 해도 가해자인 그녀들은 수천년 동안 밀려왔던 계산을 대신해서 치르는 중이므로, 역사적 필연 속에서 어느 정도 감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는 자신에게 부당한 공격을 가했던 여성들과 원수로 남지 않고, 그들의 개인적 행위를 사회적 테두리에서 이해하기 위해 애쓴 결과 이 같은 답을 찾아냈다. 이러한 해답으로 상황을 객관화 한 후, 그는 원수지간이 될 수 있었을 몇몇 여성들과의 관계를 친구관계로 풀어내고, 서로의 인생에 조언을 건네는 관계로까지 진전시키기도 했다.

    나 : 남성들의 권위주의 정중히 사절

    반면 나는 여전히 부당한 권위를 슬쩍 몸에 걸치고, 가부장제에 슬쩍 기대어 무임승차하려는 모든 남자들을 냉정하게 단죄하고 응징하려는 태도를 지녀왔다.

    99년 한국을 떠날 무렵, 한국 사회에 대한 염증과 이 사회의 남성들에 대한 나의 혐오는 극에 달해있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개인의 불행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불행중독증에 빠져있던 한 남자와의 관계 속에 머무는 동안, 내가 발 딛는 모든 땅 아래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영혼을 잠식해가는 불안을 경험했었고, 힘겹게 그 관계에서 벋어났을 때, 내가 겪은 불행이 개인적인 불행이기만 한가? 하는 자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로 염치와 위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본 앞에 무릎꿇는 이 사회에서 경제적 권위에 기대어 군림해왔던 남성들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눈앞에 들어왔다. 자본의 독재를 점점 더 크게 허락해 왔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권위적 지도자들에게 군림 당해오는 동안 사회전체가 행복을 스스로 거부하는 불행중독증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앉은 두 사내 사이에 앉게 되었다. 하나는 오락기기에 머리를 쳐 박고 있고, 또 하나는 이어폰을 꼽고 토익문제를 푸느라 여념이 없다. 그 익숙한 풍경의 한 가운데서, 난 문득, 더 이상 이유없이 군림하는 남자들,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털끝만큼도 인정해 줄 수 없다고 결심한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나뿐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이혼율은 참아왔던 삶을 더 이상 참지 않고, 자신의 삶을 두 손으로 움켜쥐기 시작한 여성들이 주도한 현상이었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혁명은 여전히 일어나주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혁명은 찬란하게 진행 중이었다.

    1세계의 남자와 2.5세계의 여자

       
      ▲ 냉장고 박스로 만든 칼리의 집
     

    1세계의 남자와 2.5세계의 여자. 전자는 한없이 너그럽고, 후자는 한없이 신랄하고 전투적인 속에서 불안한 조화는 만들어졌다. 이 관계 속에서 남자는 고단수의 페미니스트로서, 양성평등을 거스르는 모든 행위를 단죄하는 심판자로서의 룰을 준수한다.

    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총을 가지고 놀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는 절대적으로 아이가 여자이기를 희망하였고, 어린 시절, 남자 아이들이 짐승의 세계에서처럼 육체적인 싸움을 통해 서로간의 순위를 정하는 것을 보고 의식적으로 근육을 키우는 것을 거부해 왔을 만큼, 그는 여성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 희완이 설정된 게임의 룰을 벗어날 경우 그야 말로 어마어마한 평지풍파가 일어나는 데, 남녀의 분쟁에 있어서 고전적 테마인 가사노동은 우리에게도 만만찮은 질문을 남기며 제법 굴곡있는 갈등의 역사를 제공하였다.

    비껴가지 못한 고전적 갈등의 테마 : 가사노동

    희완도 나도 가사노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사노동을 좋아하지 않는 습관과 이를 남에게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입장 사이에서 아주 낮은 수준의 위생의 척도를 취하는 것으로 타협은 찾아진다. 여기까진 둘 다 비슷하다. 그런데, 희완은 종종 파출부를 부르는 것으로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삶에서 제거하려 한다는 점에서 납득해 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오래 혼자 살아왔던 그는 식사준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2주 마다 한번씩 오는 가사도우미에게 맡겨왔다. 그 사람만이 청소도구가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를 알 정도로… 당장 이중인격자라는 모독이 그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꽂혔다. 그리고 희완에게 꽂힌 그 치욕스런 화살이 제거되기 까지 긴 박해와 저항의 시간이 있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가사노동은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위한 시간을 잡아먹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시간이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이 시간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시간을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선택한 일에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

    티끌 하나 없이 말끔히 정돈된 부자집의 이미지, 그 뒤에 얼마나 많은 과잉의 노동이 요구되는가. 적당히 삶의 때가 묻은 집에서 살 필요가 있다. 또한 하루 종일 할 일을 단 두시간만에 해치우는 프로페셔널 가사노동자의 존재는 얼마나 위대한가.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일자리가 창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달랐다. 가사노동의 시간을 줄이는 것. 티끌하나 없는 집안 따위 필요 없다는 것까지는 찬성. 그러나 내가 생활하는 데서 발생하는 최소한의 일상의 노동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부끄러운 짓이다. 그러면 그 직업을 행하는 사람은 가사 노동에서 평생 헤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가족 성원 모두가 조금씩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내가 육아와 식사 준비를 하니 나머지는 당신이 다 해라.

    이러한 역할분담 속에서 희완이 가장 억울해 했던 점은 자신은 집에 있지만, 하루종일 쉼없이 일하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의 아뜰리에가 일반 직장처럼 다른 곳에 있고, 그가 종일 그 곳에서 일하고 밤에 집에 오는 상황이었다면, 내가 달리 태도를 취했을 거라는 것이다.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의 일이라는 것은 조각조각으로 보면, 놀이라 부르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때로는 무위처럼 보이는 어떤 단계도 작품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조각이었지만, 타자에 의해 쉽게 무시되기 적합한 위험을 안고 있었다.

       
      ▲ 부엌 벽의 얼룩을 감추다가 탄생한 벽화
     

    그러나 이 분업의 실행에 있어서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공간과 희완이 20년 넘게 맺어온 유기적 관계에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서 가장 이질적인 물건은 오히려 침대일 만큼, 그곳은 작업을 위해 철저히 기능하는 공간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쓰레기 더미에서 유리조각, 널빤지, 골판지, 조화 따위와 눈이 마주치면 주워 와 작업실의 이곳저곳에 늘어놓고, 며칠 뒤 그들은 본래의 모습을 잊은 채, 낯선 조형물로 탄생해 있곤 했다. 음악을 듣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튀어 올라온 모든 영감들을 한데 모아 작품으로 엮어내도록 하는데 그 공간은 충실한 조력자로서의 임무만을 주인과 함께 충실히 이행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수십년 서로를 길들여온 공간과 공간의 주인과의 관계에 쓸고 닦고 빨래를 널고 개고 정리정돈을 하는 실용적 행동들을 새로운 임무로 요구했던 것이 어쩌면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바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처음 한다.

    당시는 서로 포기하지 못하는 몰이해의 평행선 속에서 언제 점화될지 모르는 갈등의 불씨를 조심스럽게 안고 지내야 했다.

    한편으론 넘실대던 감정의 격랑이 낮고 잔잔한 물결로 사랑스럽게 일렁이며, 이제는 우리의 2세의 평화로운 얼굴을 함께 들여다보며 눈 맞추는, 일생의 가장 찬란한 기쁨을 누리던 이 시기를 일상의 잔인함으로 산산조각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갈등의 불씨는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함께 파리에서 살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희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낸 건 다섯 번도 채 되지 않는다. 온갖 이유가 동원되며 예외적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 때마다 유능하고 친절하며 진정한 프로페셔널처럼 반짝였던 우리의 가사 도우미 ‘와파’가 등장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고민을 두세 시간 만에 쓱싹 해결해 주고 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난 표면적으로 입장을 수정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녀가 지닌 직업적 전문성에 놀라고 와파에게 좀 더 자주 일거리를 제공하지 못함을 미안해 하는 마음까지 일고 있었다.

    한국 착륙, 갈등 종결, 여자의 완승

    한국으로 생활공간이 이동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희완은 자신의 임무를 대행해줄 어떤 도우미의 전화번호도 갖고 있지 못했다. 물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의 변화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희완이 20년 넘게 길들여온 아틀리에가 아닌 완전한 가정집이다. 가장 넓은 방을 그의 작업실로 할애하였지만, 나머지 공간에 깃들어 있는 정신은 아이를 중심으로 한 생활공간이지 창작공간이 아니었다.

       
      ▲ 하늘을 나는 스웨터
     

    면적 면에선 현저히 줄어들어 그의 작업의 장르도 완전히 협소해지긴 하였으나, 그의 작업실은 빠른 시간 내에 바스티유에서와 매우 비슷한 산만함과 무질서로 작업실의 운치를 더해갔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최전방에 서서 세상의 모든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고 실천하는 듯한 한국 주류사회와 이를 놀랍도록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선한 이웃들의 기막힌 대비가 빚어내는 이 생경한 환경과 시대정신은 그에게 날것 그대로의 창작동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희완은 그가 평생 해 온 양을 훨씬 넘어서는 가사노동을 한국에 사는 1년 동안 다 해버렸다. 이틀에 한 번 씩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널고 차곡차곡 갠다.

    심지어는 내가 돌아왔을 때, 은근히 깨끗해진 집안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자신의 노고를 치하해 주기를 바라며, 그러지 않으면 고요히 삐져있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요즘은 가사노동에서 자신이 발견해낸 자잘한 테크닉들을 과시하고, 나의 가사노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탓하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에의 집중은 그의 작품세계에 집안과 가사라고 하는 미니멀한 세계의 지평을 열어주기도 했다. 전혀 그의 작업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물들이 그의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 빨래통에서 막 나온 나의 스웨터가 널려있는 모습 따위. 그리고 그 스웨터 사진을 보며 그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물론, 그의 주장과 반대로 그의 가사노동과 창작활동은 병행 가능했다. 세상 모든 여성 창작자들이 그래왔듯이. 그리고 뼈저리게 한 가지 깨닫는 사실. 공간은 얼마나 지독하게 사람을 지배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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