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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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8일 09: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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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아저씨 잘 가세요. 가셔서는 죽어도 굴레의 페달 같은 것은 밟지 마세요. 별과 바람과 눈물과 땅과 나무와 풀과 같은 벗들하고만 사세요. 푸르름을 못 따라오는 이념 같은 것들과도 사시지 마세요. 세상을 변혁하지도 못하는 운동가들과도 사시지 마세요.

    인간의 대지에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다
    큰 별도 영광된 별도 아니다
    아주 작고 평범한 별이다
    못 배운 별
    살아평생 곁방살이 셋방살이였던 가난한 별
    십 수 년 택시 페달을 밟으며
    자본의 굴레 속에서 늙어만 가던 초라한 노동자의 별
    너무도 평범해 집회에 나와도
    보이지 않던 초췌한 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작은 별들이 모여
    세상의 씨앗이 되고 밀알이 되고 모래가 되고
    하나의 기계가 완성되고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고
    별무리 진 아름다운 저녁이 된다는 것을
    진실을 향해 쏘아진 하나의 빛나는 화살촉이 되고
    불의에 저항하는 총탄이 되고 포탄이 되고
    저 멀리 그리운 등대 불빛이 되고
    내 앞의 눈물방울이 되고
    영롱한 촛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 별들을 사살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안다
    그들은 역사 이래로 수많은 별들을
    짓밟고 능욕하고 땅에 파묻고 철창에 가두었다
    항거할 힘이 없는
    어린별도 병든 별도 가리지 않았다
    어떤 때는 광폭하게
    어떤 때는 부드럽게 너희는 별들의
    삶을 목숨을 빼앗아갔다
    당신은 그것을 알았다

    물론, 우리는 안다
    허세욱, 당신을 죽인 것은 부패한 저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당신을 죽였다
    진정한 민중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면서도
    무능한 우리의 운동이 당신을 죽였고
    한 사람이 거리에서 피워 올린 작은 불꽃을
    수만 개 수십만 개 수백만 개
    분노의 불꽃으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가난함이 당신을 죽였다
    그 아픔과 설움을 우리도 안다.

    가장 작은 별이
    가장 낮은 별들이
    가장 천대받던 별들이 이끌어 온
    희생의 역사 사랑의 역사
    변혁의 역사를 안다
    당신이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외로운 불꽃으로
    가난한 불꽃으로
    속이 꺼멓게 타들어가는 절규로
    이 땅은 갈아엎어져야 하는 죽음의 땅임을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그 길로 먼저 가신
    허세욱 동지여
    잘 가시라
    허세욱 아저씨 잘 가시라
    걱정마시고 잘 가시라
    지상의 찌든 때 모두 벗고
    오욕도 미움도 증오도 모두 벗고
    별나라로 가는 택시요금은 얼마인지
    물어 보시며,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때때론 기쁘고 행복했던 우리들의 시간을 기억하며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이
    통일로 자주로 평등으로 평화로
    그대 잘, 잘 가시라

    송경동(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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