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도 동지라 부르지 못한 '아저씨'를 보내며
        2007년 04월 18일 08: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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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세욱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동지라 부릅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도 당신을 동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부르지 못합니다. 차라리 착하디 착한 이웃, 허세욱 아저씨라 부릅니다.

    허세욱 아저씨, 저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선가 당신이 “저 여기 있습니다.” 하며 손을 번쩍 들고 나타나실 것만 같은데, 지금 이 자리에 차가운 관속에서, 한 줌 재로 계시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지난 금요일, 병원에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당신이 깨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일어나시면 일그러진 얼굴이라도 웃으며 눈 맞추어 주고, 손가락 없는 당신의 손이라도 굳게 잡아주자고 사람들과 약속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날, 당신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그렇게 좋아하시던 인남이와 송경용 신부님이 보내신 편지를 들고 갔습니다. 당신이 깨어나서 읽으시면 힘내시고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아직 그 편지 전해드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 원 안쪽은 생전의 허세욱 열사
     

    삶의 자리를 빼앗긴 철거민 앞에서 징을 치시던 당신

    허세욱 아저씨, 그 편지 속에 봉천동 가파른 달동네를 오르내리며 철거민으로 살아야 했던 당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불침번을 서기 위해 돌아오던 구부정한 어깨의 당신, 투쟁가를 잘 몰라 어물거리다가도 마지막에 ‘단결투쟁’만은 또렷하게 외치셨다던 당신, 삶의 자리를 빼앗긴 철거민들 앞에서 고운 민복을 입고 징을 치시는 당신, 철거민들과 함께 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보며 "얼마나 가겠어" 하시던 당신이 시간이 지나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지요. “철거싸움이 나를 인간답게 살게 만들었다. 봉천6동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투쟁을 통해 단련되어 가던,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웃던 당신이 이제 여기 이렇게 누워 계십니다.  

    당신이 돌아가셨다는 황망한 소식을 듣고 달려간 병원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흰 천도 덮지 못한 작은 책상, 하늘을 쳐다보며 살짝 웃고 있는 작은 영정사진 하나, 아직은 찬바람 몰아치는 싸늘한 거리.

    살아서도 집을 빼앗기도 죽어서도 거리에 나앉은 당신

    그렇게 당신의 빈소가 차려지는 것을 보며 마지막 가는 길에 따스한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빈소를 차린 당신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습니다. 살아서도 집을 빼앗기는 철거의 아픔을 겪더니 죽어서까지 거리로 나앉은 당신이 어찌 그리 맑게 웃고 계신지…. 

    허세욱 아저씨, 제가 기억하는 당신은 어린아이같은 천진한 모습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당신의 어눌한 말씨,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눈꼬리를 내리며 수줍게 웃던 당신의 미소, 당신이 기대한 만큼 되지 않았을 때 약간 삐져서 뿌루퉁해지던 당신의 목소리, 힘주어 꼭 잡던 당신의 따스한 두 손. 그때는 무심히 넘겼던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지금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착한 아저씨,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아저씨, 따스한 가슴을 가진 아저씨, 그런 당신이 왜 여기 이렇게 차갑게 누워 계십니까?

    무엇이 당신을 스스로의 몸을 사르는 그런 선택으로 몰아갔던 것인지, 활활 타는 뜨거운 불꽃 속에서 당신이 외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 어느 한 자락조차 가늠하지 못하면서 당신의 유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닿아보고자…

    당신은 유서에 이렇게 적으셨더군요 “나는 이 나라의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나는 절대로 위에 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입니다.

       
      ▲ 추도사를 낭독하는 이명애 관악구짐연대 사무처장(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우리들은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밟히고 마는 냉혹한 경쟁과 남 위에 서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민중의 삶을 구하고자 한 당신의 선택이 결코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살리는 길이었다고 당신은 이야기하십니다.  

    그런 당신의 선택 앞에 우리는 부끄럽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할만큼 부끄럽습니다. 아저씨가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며 항상 ‘선생님’이라 불렀던 우리들은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아니,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살아계실 때도 우리를 항상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택시운전을 하는 틈틈이 사무실에 들러 선전물이며, 포스터를 가져다 주시고 딱지 뗄지도 모른다며 차한잔 마실 겨를 없이 급히 나가시던 당신의 열정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회며, 교육이며 빠지지 않고 나가시던 당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죄송하게 했었습니다.

    당신이 ‘투쟁’을 외치며 거리를 달려나갈 때 함께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어깨걸고 나아가지 못한 것이 이렇게 큰 마음의 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이 참혹한 성찰을 주시려고 그렇게 뜨거운 불꽃 속으로 걸어가셨나 봅니다.

    참혹한 성찰을 주려고 뜨거운 불꽃 속으로 가셨나요

    허세욱 아저씨, 지금 보고 계시나요? 당신으로 인해 우리 이렇게 손잡고 함께 모여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당신이 살아서 다하지 못한, 그렇게 보고싶어 하던 사람다운 세상 만드는 그 길에 우리 다시 서려하는 것이 보이십니까? 아직은 당신의 반도, 아니 그 반에 반도 따라가지 못할 안일하고 나태한 우리들이지만, 당신이 지켜주신다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딛고, 그 슬픔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허름한 판자집마저 헐리는 철거민이었던 당신, 고단한 몸 누일 자기 방 하나 갖지 못한 세입자였던 당신, 온갖 배달의 기수였다가 사람을 배달하는 택시노동자가 되었다던 당신, 하루 12시간을 꼬박 택시를 달리고도 고작 100만원 남짓의 헛헛한 월급봉투를 받아들어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당신 – 당신의 이름은 노동자, 민중! 우리는 그렇게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땅에 가장 가난한 민중으로 와서 가장 치열한 투쟁의 삶을 살다간 노동자 허세욱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엄혹한 겨울을 이기고 꽃피는 4월이면 그 꽃처럼 환하게 그렇게 다시 우리 가슴속에 살아오십시오.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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