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하게 태어나, 치열하게 살다가
    뜨겁게 간 당신 "아저씨 잘 가세요"
        2007년 04월 18일 04: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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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 가장 가난한 민중으로 와서 가장 치열한 투쟁의 삶을 살다간 노동자 허세욱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엄혹한 겨울을 이기고 꽃피는 4월이면 그 꽃처럼 환하게 그렇게 다시 우리 가슴속에 살아오십시오." (이명애)

    18일 열린 고 허세욱 열사 장례식은 자신의 온 몸을 불살라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글이 아닌 삶으로 보여준 ‘진짜노동자’ 허세욱을 떠나보내는, 부끄러운 ‘산 자’들의 가슴이 뜨거운 눈물로 뒤덮인 날이었다.

       
     
     

    아침 7시 한강성심병원 – 살아나길 간절히 바랬는데

    18일 아침 7시. 허세욱 열사가 살아나 같이 투쟁하기를 간절히 바랬던 노동자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영정과 만장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홍근수 목사는 "당신은 27년 전 전태일 열사의 뒤를 이어 새시대의 요구를 온 몸으로 밝혀준 투쟁하는 우리 민중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운구행렬의 맨 앞에는 그가 1991년부터 17년을 끌었던 한독운수의 택시가 섰고, 그의 유서내용인 ‘한미FTA 폐기’와 ‘노무현정권 퇴진’이 씌여진 20여개의 만장이 그 뒤를 이었다. 현수막을 맨 앞에 달고, 검은 깃발을 휘날리는 한독운수 택시 10여대가 이날 운행을 중단하고 장례행렬을 이끌었다.

    "미군기지도 눈물도 없는 평화로운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No Tears in Heaven, No US Base in Heaven)라고 씌여진 현수막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한강성심병원을 출발한 운구는 민주노총 앞에서 첫 번째 추모식을 가졌다.

    그는 “저 멀리 가서도 민주노총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민주노총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노동자

       
     

    ·민중의 희망으로 서지 못한 민주노총은 그의 유언 앞에 그저 부끄럽고 죄스러울 따름이었다. 민주노총 양태조 조직실장이 그의 유서를 읽어나가자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오전 9시 한독운수 – 그의 숨소리와 체취가 배어나다

    민주노총 앞에서 약식 노제를 지낸 운구 행렬은 그가 17년을 몸담았던 한독운수로 향했다. 관악구 봉천동 한독운수 입구와 회사 담벼락에는 그의 ‘참 삶’을 증언하는 사진들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조합원들과 집회에 참석한 사진,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의 김장을 나누는 사진, 녹색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진들이 민중을 향한 그의 사랑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한 적도 없고, 위에 있고 싶지 않아 조용히, 말없이 오직 행동과 실천으로 ‘진짜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그의 숨소리와 체취가 한독운수 곳곳에서 오롯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500여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은 그가 70만원의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가장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살아왔던 그의 일터에서 눈물로 그를 다시 보내야 했다. 그의 영혼을 태운 차량과 운구가 들어오자 사람들의 눈에서는 또 다시 눈물을 쏟아져 내렸다.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처장이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자 사람들의 흐느낌은 더욱 커져갔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따스한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빈소를 차린 당신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며 "살아서도 집을 빼앗기는 철거의 아픔을 겪더니 죽어서까지 거리로 나앉은 당신이 어찌 그리 맑게 웃고 계신지…"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신이 ‘투쟁’을 외치며 거리를 달려나갈 때 함께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어깨 걸고 나아가지 못한 것이 이렇게 큰 마음의 짐이 될 줄은 몰랐다"며 "당신은 우리에게 이 참혹한 성찰을 주시려고 그렇게 뜨거운 불꽃 속으로 걸어가셨나요"라고 흐느꼈다.

    10시 20분 하얏트호텔 앞 – 흔적도 없는 분신 장소

    17일 전인 4월 1일. 그가 온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당겼던 회나무길 119 그 아스팔트에는 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무심한 차량들이 그가 분신한 자리를 말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전기환 총장은 "경찰에 에워싸여 기자회견장 조차도 오지 못하고 그는 이곳에서 항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상열 목사는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라며 울부짖었다. 그는 “님은 죽어 우리를 살리고 역사를 살리셨으니, 님의 뜻을 받들며 정성을 다하여 실천할 것”이라며 “바로 참민중이신 님을 따라 민중안에서 민중과 함께 민중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분신한 그 자리에서 ‘길닦음춤’이 벌어졌다. “해방세상 가세, 해방세상 가세”라는 노랫소리와 함께 흰 광목천이 찢어지더니 분신한 자리에서 불타올랐다. 40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은 큰 함성을 지르며 허세욱 동지를 가슴에 묻었다.

       
     

    11시 10분 용산 미군기지 – 유골을 뿌리다

    하얏트를 출발한 장례행렬은 용산 미군기지로 향했다. 허세욱 열사가 자신의 유골을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달라고 했던 유언이 두려웠을까? 경찰은 삼각지 국방부 앞에서부터 미군기지 5번 게이트까지 양쪽으로 경찰버스 50대를 동원해 막았고, 수천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했다.

    국방부는 우체국와 은행이 있는 민원실까지 폐쇄했다. 한 할머니가 군에서 퇴직한 남편의 못받은 퇴직금을 돌려받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이 모 중령은 “시위 때문에 오늘 오전에는 민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기자가 확인하자, 조금 후 그 할머니를 안으로 안내했다.

    수도권에 있는 노동자들이 장례행렬에 참가하면서 미군기지 5번 게이트 앞에는 1천명으로 늘어났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의장은 “우리들이 동지를 기억하며 민중속에서 투쟁하는 제2의, 제3의 허세욱 동지가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변연식 공동대표는 “이곳은 당신의 깊은 한이 서린 미군기지 앞이고 효순이 미선이 깔아 죽인 미군 우두머리가 있는 곳”이라며 “전국의 미군기지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유언을 가슴에 새겨 우리가 저들에게 수천 수만의 허세욱이 되어 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11시 45분.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에 있는 미군기지에 뿌려서 밤새도록 미국놈들 괴롭히게 해주십시요. 효순미선 한을 갚고”라고 썼던 그의 유언에 따라 성남 화장장에서 수습해 온 그의 유골이 미군기지 담벼락에 뿌려졌다.

    장례행렬은 1천500여명으로 불어났다. 용산미군기지를 출발한 장례차량과 노동자, 시민들은 미군기지를 돌아 남영역까지 행진했다.

    오후 1시 서울 시청광장 – "6월항쟁 만들겠다"

       
     
     

    멀리 부산과 전남 광양까지 전국에서 올라온 노동자, 시민 3천여명이 시청 광장에 모여들었다. ‘한미FTA 무효 고 허세욱 동지 민족민주노동열사장’이 시작됐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오종렬 공동대표는 "동지는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규범이자 범국민운동본부의 준엄한 강령"이라며 "한미FTA를 폐기하고 전쟁기지를 물리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당신의 49재가 있는 6월을 한미정상회담이라는 굴욕으로 더럽히지 않고 수십만의 동지가 일어서 항쟁으로 당신에게 꽃길을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와 참여연대 임종대 공동대표도 추도사를 통해 허세욱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도 당신을 죽였습니다"

    절정의 순간은 송경동 시인의 추도시였다. 그는 "아저씨 잘 가세요. 가셔서는 죽어도 페달 같은 건 밟지 마세요. 별과 바람과 하늘과 땅과 나무와 풀과 같은 벗들하고만 사세요.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운동가들과도 사시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추도시에서 "인간의 대지에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다. 큰 별도 영광된 별도 아니다. 아주 작고 평범한 별이다. 못 배운 별, 살아 평생 곁방살이, 셋방살이였던 가난한 별. 십 수년 택시노동자의 별. 너무도 평범해 집회에 나와도 보이지 않던 초췌한 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을 죽인 것은 부패한 저들만이 아니다. 우리도 당신을 죽였다. 한 사람이 거리에서 피워 올린 작은 불꽃을 수십 수백만개 불꽃으로 피워올리지 못한 우리들이 당신을 죽였다"고 고백해 3천여 참가자들이 고개를 떨구게 만들었다.

    "살아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울고 있지만은 않겠습니다." 추모식이 끝나고 장례위원들을 비롯해 노동자와 시민들은 그의 영전에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하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시청 광장을 떠난 그의 한 줌의 유골과 아름다운 영혼은 마석 모란공원 전태열 열사 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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