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이 아니라 '옮음'이 기준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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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8일 07: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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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한 인터넷 매체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를 언급한 칼럼을 읽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광화문 철거 계획을 반대했던 야나기의 주장이 실린 잡지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야나기는 최근까지 그의 작품전이 한국에서 열릴 정도로 한국 문화계에서는 존경받는 존재”로만 설명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일반인도 아닌 역사전문가인 방 국장의 야나기에 대한 평은 한국 입장에서 좋은 점만을 선별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야나기 무네요시 평가의 일면성

       
      ▲ 야나기 무네요시
     

    그간 이방인의 시선으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박노자 교수는 한국 미(美)에 대한 야나기의 서술이 “‘개인이 없는 집단 위주의 사회’, ‘활동성과 기쁨이 결여된 미(美)’의 이미지는, 동양을 ‘단체주의적이며 피동적인’ 것으로 그려 ‘개인주의적이며 활동적인 유럽’과 대조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서 야나기는 “지배집단의 일원으로서는 식민지 민족을 동정 또는 공감할 수 있어도, 진정으로 동등한 역사의 주체로 대접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었고, 이미 국내학계에서도 야나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있었다.(『한국사특강』, 서울대출판부, 2005 ; 이인범,<교수신문> 2005.3.13기사참조)

    야나기가 한일간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필자는 야나기의 활동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데는 이러한 그의 비판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마땅히 언급되어야 그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한다고 본다.

    이러한 단점을 아우른 장점의 역사기술은 작금의 한일간 역사적 갈등의 매듭을 푸는데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일본의 양심적 지성으로 불리는 와다 하루키 교수가 말했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이러한 ‘매개체’들이 앞으로도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최근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한국도 책임이 있다” 발언이 언론의 일부 왜곡보도로 와전되어 심적 고통을 당했던 세종대 박유하 교수에 대한 몇 가지 변명을 하고자 이글을 쓴다.

    이번 발언 파문을 해명하기 위해서 <프레시안>에 실린 박 교수의 기고문이 실리자 곧바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홈페이지에 오랫동안 위안부 관련하여 일해 왔다는 한 일본인 운동가의 반론이 실리는 등 첨예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박 교수나 정대협 양측에 상호 비방보다는 본 졸고를 포함하여 근본적인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로 발전했으면 바람이다.

    지일파도 친일파로 싸잡아 버린다면

    그런데 박 교수의 해명에 누리꾼들의 댓글을 보면 박 교수를 마치 ‘직업형 친일파’인 김완섭, 오선화씨로 착각하여 “일장기를 가슴에 품고 있네”라는 등의 악성댓글이 달리면서 박 교수의 시각이 매몰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오해에 대한 자세한 해명은 박 교수 본인이 말하듯이 자신의 저작인 『화해를 위해서』(뿌리와이파리 펴냄)의 일독이 최선의 방안이겠지만 본고는 그 책과 이번 사태를 둘러싼 배경을 풀어나가는데 할애하고자 한다.

    간단히 요약해서 『화해를 위해서』는 새역사교과서, 독도문제, 위안부 문제 등의 뜨거운 한일간 쟁점에 대해서 그간 이분법적으로 재단된 양국의 막힌 의사통로를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세종대 박유하 교수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일본 좌파 지식인의 의견과도, 일본 정부와의 의견과도, 한국 정부의 의견과도, 또 한국 지식인의 의견과도 다른 이 책이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은 책을 쓰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저자의 고통은 한국, 일본 상호간의 역지사지적인 측면에서 맹점으로 남아있는 부분을 잘 드러내는데 기여했다.

    다만 본서의 일독을 적극 권장함에도 불구하고 재작년에 책을 읽고서 내내 찝찝했던 부분을 한 가지 지적하자면, 박 교수가 생각하는 역사기술은 긍정적인 역사는 물론이고 치욕적인 역사에 대한 서술도 함께 기술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본서의 37쪽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전도사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쌀 수탈’이란 ‘쌀의 수출’이었고 각종 경제지표를 보았을 때 일본의 지배가 근대화에 일정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라는, 우리 안의 냉철한 성찰”이란 말을 원용하면서 이를 “그 ‘실상’을 보기 위한 진지한 시도의 하나라 해야 할 것이다.”는 박 교수의 서술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화해를 위해서』가 발간 된 이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성향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낙성대 경제연구소는 그간 일제강점기 식민지 연구를 일본 재벌로부터 연구지원금을 받아왔었다.(<오마이뉴스> 2006. 12. 4. 기사참조) 이는 결코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없다.

    박 교수가 주장하는 자랑스런 역사와 치욕스런 역사가 나란히 공시성을 형성하려면 기존 교과서에 기술된 역사를 자학사관으로 규정하고 식민지 통치와 군부정권을 근대화 프로젝트의 찬란한 역사로만 기술하는 이들 뉴라이트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것이다.

    타자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 안을 들여다보자

    기지촌이라고 비판 받을 수 있겠지만 서구에서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이성의 이성’, ‘계몽의 계몽’인 즉 타자에 대한 비판 이전에 자신의 이성에 대한 비판양식이 아직까지 부족한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이는 일본에도 해당사항이지만) 그간 민족주의에만 기대어 성/계급을 못 본 우리 안의 역사/기억의 부재에 대해서 박 교수가 주장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여기서 잠깐 지난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저항했던 학생운동권을 예로 들어보자. 그 당시 학생운동 조직은 군부정권을 닮은 가부장적인 체제하에서 여학생에 대한 성차별은 묵인되고 있었다. 당시 민족민주, 사회구성체론 등의 거대담론에 눌려서 차마 성차별을 발설하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는 민주화가 되고서도 10여년이 지나서야 당시의 피해자였던 권인숙 교수의 연구를 시발점으로 ‘가부장제적 운동권’이라는 젠더적 시각이 고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권인숙의 작업에 대해서 비판보다는 수긍과 반성의 계기로 가는 여론, 학계의 분위기와 달리 왜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민족담론에서 성/계급문제로 추출하는 학문적 작업에 대해선 차분한 접근보다는 마타도어가 난무하게 된 걸까.

    이는 기존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에서는 박 교수와 비슷한 한양대 임지현 교수의 국사 교과서 해체와 대중독재론 주장에 대한 비판보다도 훨씬 강도가 높아서 난감했다. 임 교수의 국사 교과서 해체 주장이 해체 그 이후를 제시하지 못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관의 한계를 보이는 반면에 박 교수의 성/계급 관점은 도리어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실리성과 상대적으로 약하겠지만 명분도 추구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매도는 공평성을 잃었다.

    아직 학계에서도 몇 명의 친일파를 구분하지 못하는 과제가 남겨졌지만 널리 알려진 친일파 구분의 척도를 통해서 친일과 지일은 구분해서 비판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미국인보다 오히려 더 유려한 고급어휘를 구사했던 천재 윤치호조차도 한반도가 ‘열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시국에서 그 명석한 두뇌는 친일로 기울고 말았다. 그를 두고서 굳이 <조선일보>가 앞장섰던 뻔뻔한 친일행위는 아니었을 지라도 ‘소신형 친일파’였다는 공감대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또한가지 모순적이게도 한국의 계몽을 선도했던 <독립신문>의 창간을 이완용이 주도했었다는 사실은 어떠한가. 우리의 역사적 상식에 판단을 맡길 때 이들의 친일을 한일간 소통의 모티프가 될 수 있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지한과 동급으로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지일파와 친일파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지일파마저 친일파로 싸잡아 비판한다면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동북아 공동의 집은 기초공사조차도 시작하지 못한 채 요원한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이는 일본우익의 지한파 비판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받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낙성대 학파에 대한 체계적 비판이 필요하다

    민족이란 단어가 담지하고 있는 파토스만을 증폭시킨 비난은 사건해결과 상관없는 배설행위일 뿐이다. 정작 시급히 대응해야 할 부분은 윤치호와 이완용의 현대판 버전인 세련된 통계를 앞세운 서울대 이영훈 교수를 필두로 한 소위 ‘낙성대 학파’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다. 이번 박 교수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비판은 과녁을 잘못 골랐고, 여론과 운동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시켰다.

    필자의 변명도 다람쥐 쳇바퀴마냥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부언해야겠다. 이미 지난 2000년에 발간한 박 교수의 저서인 『누가 일본을 왜곡했는가』(사회평론 펴냄)에 대해서 이일환씨가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11월호에 박 교수의 주장이 일본 자유주의 사관과 흡사하다는 비판을 했다가 도리어 박 교수가 2001년 1월호 같은 잡지에 이일환씨의 주장을 반박했었는데 당시의 논쟁은 이일환씨가 박 교수의 책에 대한 오독으로 판명된 전과가 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은 매체를 통해서 나온 단순히 몇 마디를 인용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폐해라서 지난 2000년의 논쟁보다도 오해만 더욱 무성하고 영양가 없는 공론으로 끝나버렸다. 그래서 박 교수가 해명 글에서 <화해를 위해서>의 일독을 독자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러한 소모전보다는 소설가 복거일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으로 씌어진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알음 펴냄)에 대한 고종석처럼 조목조목 차분히 반론(『바리에떼』개마고원 펴냄)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재차 말하지만 야나기에 대한 민족입장에서의 일방적인 칭찬은 문제다.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을 숨기지 말고 솔직히 인정하는 공론장 위에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 교수의 도발적인 시각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는 목표에 다가가는 전술의 차이로서의 비판 받을 수 있을지언정 이로 인해 박 교수가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서 동분서주 했던 그간의 행로마저 평가절하 되어서는 곤란하다.

    한일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방법

    박 교수의 해명 글에서도 이러한 목적의식은 명징하게 드러나 있다. “같은 민족의 일이라면 무조건 덮어줘야 한다는 논리에 나는 더 이상은 동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코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지 아닌지일 터이다.”

    이는 현재 일본에 대한 독도 영유권, 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수두룩하게 일본과 결부되어 대치하고 있는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에도 한번쯤 고민해볼 가치가 있는 전술적 고민이겠다.

    박 교수와 더불어 세종대에 몸담고 있는 호사카 유지 교수는 대표적인 지한파로서 최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학술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강한 비판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지일파와 함께 지한파도 소중한 매개체다. 언제부턴가 지한파, 지일파라는 단어가 양국의 일부 극우성향 언론인, 지식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레테르로 오용하는 바람에 변질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칭한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민족주의자들이 진정 민족을 아낀다면, 그 상상의 빈 공간을 ‘지일파’ 박유하, ‘지한파’ 호사카 유지 교수가 하고 있는 한일간 화해 작업에 대한 응원과 합리적 비판으로 채워주는 것이야 말로 역설적이지만 진정 민족을 지키는 방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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